유리창에 몸 베인 햇빛이
피 한 방울 없이 소파에 앉아 있다
고통은 바람인가 소리인가
숨을 끊고도 저리 오래 버티다니
창문을 열어 바람을 들이자
햇빛은 비로소 신음을 뱉으며 출렁인다
고통은 칼날이 지나간 다음에 찾아오는 법
회는 칼날의 맛이 아니던가
깨끗하게 베인 과일의 단면은 칼날의 기술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풍경의 살을 떠내는
저 유리의 기술
머리를 처박으며 붕붕거리는 파리에게
유리는 불가해한 장막일 터
환히 보이는 저곳에 갈 수 없다니!
이쪽과 저쪽 소리와 적막 그 사이에
통증 없는 유리의 칼날이 지나간다
문을 열지 않고도 안으로 들이는 단칼의 기술
바람과 소리가 없다면 고통도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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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유리창 한 장이 있다. 그리고 가만히 지켜보면 실로 마술같은, 놀라운 풍경이 펼쳐진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풍경의 살을 떠내는' 유리의 기술이 있음을 시인은 묘파한다.
이 시의 앵글은 유리창의 정확한 각도 속에 맞추어져 있고 더 경이로운 것은 유리의 칼날에 베인 채 소파에 상처도 없이 앉아있는 햇빛이나 풍경이다.
기존의 우리 눈에 식별이 가능한 것들에만 편향된 시선을 모아왔던 지극히 편파적인 기존의 인습을 이 시는 단번에 불식시킨다. 아무도 이야기할 수 없는 풍경과 그것을 배후 주도한 유리, 그 관계와 찰나의 과정을 누가 이처럼 논할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시간과는 무관하게 진행되는 유리의 서늘한 칼날이라니! 실로 고정된 사물들이 부동하다는 인식은 그 얼마나 안이한 인식이란 말인가. 사물의 존재에 대하여 뼈를 발리고 살을 떠내는 숙련된 솜씨의 유리가 있는 한, 사고의 파격은 언제까지나 유효하다.
이 시엔 풍경을 피 한 방울 흘리지도 않고 떠내는 유리의 기술이 들어있고 무엇보다도 그 유리를 떠내는 시인의 날카롭고 숙련된 칼날의 무공이 들어있다. <신지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