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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의 詩』
섣달 그믐날
김남조
새해 와서 앉으라고
의자를 비워주고 떠나는
허리 아픈 섣달 그믐날을
당신이라 부르련다
제야의 고갯마루에서
당신이 가물가물 사라져가는 걸
뚫어서 구멍 내는 눈짓으로
나는 바라봐야겠어
세상은
새해맞이 흥분으로 출렁이는데
당신은 눈 침침, 귀도 멍멍하니
나와 잘 어울리는
내 사랑 어찌 아니겠는가
마지막이란
심오한 사상이다
누구라도 그의 생의
섣달 그믐날을 향해 달려가거늘
이야말로
평등의 완성이다
조금 남은 시간을
사금처럼 귀하게 나누어 주고
여윈 몸 훠이훠이 가고 있는 당신은
가장 정직한 청빈이다
하여 나는
가난한 예배를 바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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섣달 그믐날이다. 한 해의 끝에서 그대는 무슨 생각을 하는가. 처연히 흘러가는 이 시간은 그대를 어디로 견인하는가. 내 인생에 대해, 나의 귀중한 오늘에 대해, 내가 가진 것들에 대해, 겸허히 감사해본 적 있는가. 동일한 시간대위에서 한 호흡을 나누며 달려가는 우리 모두 "평등의 완성"이라 한다. 이 가난한 기도가 가는 해를 한번 더 뒤돌아보게 하며 조용히 자성케 한다. 우리의 상처받은 가슴과 영혼을 따뜻이 쓰다듬어준다.
김남조 시인은 경북 대구출생. 1949년 연합신문, 서울대학신문 등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등단. 서울사대 국어교육과 졸업, 시집으로 <나아드의 향유><나무와바람><정념의 기><빛과 고요><귀중한 오늘>등, 총16권의 시집이 있으며,삼일문화상,국민훈장모란장,대한민국문화예술상,은관문화훈장,시인협회상,만해대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
뉴욕코리아 입력일자.2010.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