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복
냇물 가장자리 빈터에 새끼 오리 네댓 마리 엄마 따라 나와 놀고 있었는데, 덤불숲 뒤에서 까치라는 놈 새끼들 낚아채려 달려드니, 어미는 날개를 펼쳐 품속으로 거두었다 멋쩍은 듯 머뭇거리던 까치가 물러나고, 엄마 품 빠져나온 새끼들은 주억거리며 또 장난질이었다 그것도 잠시, 초록 줄무늬 독사가 가는 혀 날름거리며 나타나니, 어미는 절름발이 시늉하며 둔덕 아래로 뒷걸음질쳤다 어미 속내를 알 리 없는 새끼들은 멍하니 바라만 보고, 그때 덤불숲 뒤 까치가 다짜고짜 새끼 한 마리 모가지를 비틀어 물고 갔다 그러고는 돌아와 차례차례 가냘픈 모가지를 비틀어 물고 갈 때마다, 남은 오리 새끼들은 정말 푸들, 푸들, 떨고 있었다 아, 얼마나 무서웠을까? 돌아온 어미가 새끼들을 부를 때, 덤불숲 까치는 제 새끼들 입속에 피묻은 살점을 뜯어 넣어주고 있었다 아, 저 엄마는 어떻게 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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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사실 대자연의 얼굴이다. 먹고 먹히는 먹이사슬과 생존의 비정한 법칙들이 존재하는 자연의 순환고리. 이 참혹한 비극에서 잠시 호흡을 멈춘다. 새끼들을 모두 잃고 망연자실한 어미의 막다른 골목에서, 캄캄하게 닫힌 절망의 암전(暗轉). '아, 정말 얼마나 무서웠을까' 희망을 잃은 어미의 공포 그리고 이 자연에서의, 목숨의 역사를 다시금 그려보게 한다.
이성복 시인은 경북 상주에서 출생. 1977년 《문학과 지성》으로 등단, 시집『뒹구는 돌은 언제 잠깨는가』『남해 금산』『그 여름의 끝』『호랑가시나무의 기억』『아, 입이 없는 것들』『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 등이 있다. 김수영문학상, 소월시문학상, 대산문학상, 현대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