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사랑 57번 이은 시집 {불쥐}
이은 시인은 강원도 동해에서 태어났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을 졸업했다. 2006년 {시와 시학}으로 등단했으며, 2009년 ‘문화예술위원회 창작지원금’을 받았다. {불쥐]는 이은 시인의 첫 번째 시집이며,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우리 인간들의 몸에 대한 현상학적인 성찰을 보여준다. 몸은 인간의 삶의 기록이자 그 욕망과 절망, 건강과 쇠약, 행복과 불행이 상호투쟁하는 구체적인 장소가 된다. ‘불쥐’는 나이면서도 너이고, 너이면서도 내 안의 또다른 타자가 되는 상징적인 동물이지만, 그러나 그는 어떠한 삶의 탈출구도 찾지 못한 화형장의 죄인이 된다. 시의 순교, 삶의 순교----. {불쥐}의 비명은 그만큼 처절하고, 그 울림이 크다.
그래도 불은 두려움이라는 통로를 통해 화자의 몸으로 들어와 잠속에서 타오른다. 이 불은 화자와 함께 이 불도 함께 자라면서 타오를 것이다. 폭력의 상처에 기생하면서 화자의 욕망과 불안을 연료 삼아 타오를 것이다. 가지가 하늘로 높이 뻗어갈수록 폭력의 상처도 화력이 커질 것이다. 몸과 기억에 끈질기게 달라붙어 내면을 괴롭히는 불의 트라우마는 「불쥐」에서 더욱 강렬하고 그로테스크하게 나타나 있다.
----김기택 시인
그는 또 말한다. 그곳은 불붙은 지하철 안에서 온 몸이 불붙은 채 미친 듯 달리는 불쥐들의 세상이라고. 귀와 귀가 부딪쳐 찢어지고 눈과 눈이 부딪쳐 모두 눈이 먼 세상이라고. 그는 묻는다. 우리 모두 서로의 보혈을 핥으며 사랑하면 안 되겠느냐고. 어차피 우리 모두는 건너편에서 훔쳐보는 정체모를 그림자에게 거리 케스팅 당한 존재들 아니냐고.
----이경림 시인
불타는 머리털을 움켜쥐고 그녀가 달려갑니다 지하도 바깥까지 머리를 흔들어대는 불꽃들 온몸에 불씨를 매달고 달려갑니다 구멍 뚫린 하늘로 검은 연기가 치솟아 오릅니다 소방관이 머리 위로 물을 뿜어댑니다 경찰차가 사이렌을 울리며 거리를 봉쇄합니다 그녀는 불에 잡히지 않기 위해 골목으로 도망갑니다 불에 잡힌 쥐들은 숯검뎅이가 되어 지하도에서 나옵니다 불구덩 속에 죽은 쥐들을 눕힙니다
십년 째 불붙은 전동차 안에 갇힌 그녀가 한 손에 연탄집게를 들었습니다 이 골목 저 골목 불덩이의 살해자를 찾아 나섭니다 남의 집 대문간에 몰래 번개탄을 갖다놓기도 합니다 그녀의 방은 사방이 불꽃 천지입니다 형광등이 지글지글 살타는 냄새를 풍기며 빛납니다 꽃무늬 벽지에 불이 옮겨 붙을까봐 손톱으로 꽃을 긁어댑니다 그녀는 방바닥을 뜯어내고 몸을 숨깁니다 꼭꼭 숨어라 머리카락 보일라 지하로 지하로 달아나도 불의 길은 끝나지 않습니다 불붙은 머리털을 헤집고 쥐 한 마리가 들어옵니다 그을린 쥐는 더 깊은 불구덩이 속으로 도망갑니다
그녀는 종일 머리털을 꼿꼿이 세우고 화염 속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불붙은 그녀를 싣고 전동차는 멈추지 않고 굴러갑니다
---[불쥐] 전문
지혜사랑 57번, 이은 시집 {불쥐}, 도서출판 지혜, 4X6 양장본 값 10.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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