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피엔딩- 한창옥 시집 (포엠포엠)
책소개
한창옥 시인은 어지러운 시간의 여울 속에서도 마음의 천진성을 유지하려고 애쓴다. 그는 어린이처럼 맑은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과거로부터 미래로 이어지는 인간사의 곡절을 구김 없이 맑은 시선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한다. 더 나아가 천진성이 사라진 시대에 맑은 세계를 복원하려는 의지를 실천한다.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신생의 창조를 할 수 있는 의지를 내면에 새긴다. 이 창조의 동력과 인식은 폭발적이다. 낭만주의자는 늘 미래를 꿈꾼다. 낭만주의자에게는 봄꽃이 시고 인간에게는 언어로 된 시가 있다. 생명이 위태로울 때 시를 품어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다. 생의 아픔과 시련을 만났을 때 진정한 시가 탄생한다. 한창옥 시인은 자신이 취할 수 있는 가장 맑고 깨끗한 상태에서 과거의 사연을 반추하고 현재의 국면을 조명했다. 어둠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는 낭만주의 세계관으로 변화를 꿈꾸고 해피엔드를 소망했다. 그가 이룩한 희망의 지평은 코로나 시대의 암울함을 걷어낼 만하다. 그것은 인간의 나른함 잠을 깨우는 봄의 전령이다. 이 희망찬 봄소식에 우리의 감각을 새롭게 하고 온 힘을 기울여 신생의 소리에 귀 기울여야 할 것이다. - 이숭원(李崇源, 문학평론가.서울여대 명예교수)
한창옥 시인의 몸은 작지만 단단해서 세상을 다 보듬고 세상의 어둠 다 밝히며 문학의 먼 길을 한발자국씩 걸어오며 칠 년 만에 네 번째로 간행된 시집 <해피엔딩>은 더욱 더 영광스럽고 가는 길이 환하게 빛날 것입니다. -나태주(시인.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해설에서 일부
예술가적 존재의 자각 아래 천진성에 대한 향수를 지니고 순수의 세계를 지향한다 해도 현실의 황폐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순수한 의식을 가질수록 황폐한 현실은 추한 모습을 더 드러낸다. 「풍요와 빈곤」은 나이지리아의 라고스를 무대로 하여 빈민의 참상과 폐기물 쓰레기가 불러오는 오염의 문제를 고발한 비판적 작품이다.
폐기된 세상이 500개의 컨테이너에 실린다
고장 난 텔레비전. 오디오 장비들이 산더미처럼
수출이라는 이름으로 지구의 반대 나이지리아로 향한다
주파수가 달라서 쓸모없는 것들은
지구 위 중력 없는 물체가 되어
구리를 찾아내기 위해 태워지는 불더미가 된다
생계로 굶주린 라고스의 아이들은
전자제품이 쓰레기 더미에서 독하게 반항하는
수은, 납, 카드뮴의 검은 연기에 파묻혀
시커멓게 끄스른 얼굴에 어린 이빨이 하염없이 희다
장갑 없는 상처투성이의 작은 손은
구리, 알루미늄, 쇠붙이를 골라내는 보물상자다
세계인들은 편하게 쓰레기를 처리하고
재활용에 빈곤한 우리의 환경 쇼윈도를 본다
수명을 다한 매립지는 쥐들의 왕국이 되어
밤낮 전염병을 되돌려 주는 신나는 놀이터
그렇게 수억 년의 푸른 물을 검게 덮쳐가고 있다
「풍요와 빈곤」 전문
라고스는 세계에서 인구밀도가 가장 높은 지역이고 빈민이 가장 많이 몰려 사는 지역이다. 거리는 차와 사람으로 넘치고 빈민들은 물 위에 판자를 올려 수상생활을 하고 있다. 이곳은 전 세계의 값싼 중고 전자제품이 몰려드는 곳이다. 넘쳐나는 폐기물을 처리하기 위해 아이들에게 학비를 받는 대신 플라스틱 폐기물을 받고 있다. 한창옥 시인은 라고스를 배경으로 해서 현실의 황폐한 참상을 폭로했다. 폐기물을 실어 나르는 컨테이너가 500개나 늘어서 있고 고장 난 중고 제품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빈민들에게 헐값으로 팔기 위해 각국의 고장 난 전자제품들이 해안에 산적해 있다. 팔 수 없는 폐기물은 이용할 수 있는 부품만 추려낸 다음 불더미에 던져진다. 해안에는 폐기물을 태우는 매연이 시커멓게 치솟는다. 굶주린 아이들은 폐기물 쓰레기 더미를 뒤져 돈이 될 것을 찾는다. 그곳에는 수은, 납, 카드뮴 등 온갖 유해 물질이 농축되어 있다. 공해나 오염의 개념조차 모르는 주민들은 그저 하루의 생존을 위해 병든 몸을 움직일 뿐이다.
그래도 검은 피부의 아이들이 웃음을 지을 때 “시커멓게 끄스른 얼굴에 어린 이빨이 하염없이 희다”고 했다. 여기에는 한창옥 시인의 마음이 투영되어 있다. 어린이의 손은 상처투성이인데 그 상처 난 손으로 전자제품 폐기물을 뒤져 돈이 될 만한 것을 골라낸다. 그러니 오염물질로 가득한 폐기물 더미가 어린이에게는 “보물상자”다. 유복한 나라들은 이 폐기물을 처리해 주는 가난한 나라에 고마워하지 않는다.
앞날을 모르고 하얀 이를 내밀고 웃는 아이들이 가련할 뿐이다. 웃는 아이들 앞에는 검게 변한 죽음의 땅과 물이 있을 뿐이다. 풍요와 극빈은 인간의 삶을 이렇게 둘로 나눈다. 풍요의 처지에 있는 사람들은 극빈의 괴로움을 모르고, 극빈의 사람들은 풍요가 어떻게 재생산되는지 알지 못한다. 풍요와 빈곤 사이에는 넘지 못할 높은 장벽이 있다.
제어되지 않은 말들이 바람을 타고 진화한다
빗장을 걸어 잠근 자존심의 관절마다 아프다 말 못하고
쓰러진 지상의 뼈들은 애써 몸 낮추고 있다
꼿꼿한 코로나 담장을 휘어 감고
꽃의 덩굴은 비틀대며 오르기 시작하는데
폐쇄된 봄날의 입구는
목청껏 터트리지 못하고 입김만 내뿜고 있다
기척도 없이 기약 없는 침묵은
여전히 고립되어 일탈하려던 발끝에 힘만 주고
그럼에도 봄꽃은 거침없이 제 할 일을 다 하고 있다
가려진 미소로 옷깃을 부딪치는
멀고도 가까운 사람들
오래된 무성영화 향수에 빠져
막과 막 사이로 빨려가듯 무작정 들어간다
「 무성영화처럼 목청껏 터트리지 못하고」 전문
이 시의 첫 행 “제어되지 않은 말들이 바람을 타고 진화한다”라는 구절은 의미심장하다. 발 없는 말이 천 리 간다고 말에는 제동 장치가 없다. 말은 바람 따라 어디로든 흘러가고 어디로든 진화해 간다. 코로나가 퍼져 누가 얼마나 아팠는지 몇 사람이 고초를 겪었는지 떠도는 말들이 무성하다. 제어되지 않은 말들의 어느 정도가 진실인지 알 수 있는 장치는 없다. 자존심 때문에 아프다는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쓰러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한 지상의 뼈들은 아무 말이 없다. 일부러 몸을 낮추고 오히려 말의 빗장을 걸어 잠그고 침묵으로 들어갈지 모른다. 이러한 코로나 시대에도 꼿꼿한 담장을 휘어 감고 꽃의 덩굴은 위로 전진한다.
목차시인의 말 · 9추천글 - 나태주(시인.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 · 101부팝콘 · 13무성영화처럼 목청껏 터트리지 못하고 · 14수묵화 · 16관계들 - Corona Blues · 17리코딩Recording · 18그냥 수다 · 19그 시절 · 20어머니의 젖꼭지 · 21식탁 풍경 · 22바람의 춤 · 24물오징어 · 26숨바꼭질 · 272부철없는 비행 · 31심방세동 - 다시, 스타트라인 · 32슬픈 클래식 공연, 1989년 · 34거리의 풍각쟁이 · 36불티 - 평창 전영록 기념관, 노기하우스 · 38윌슨 · 40그 자리에 아무도 없다 · 41패션, 아이코닉 · 42캔버스 Canvas · 44대장간, 포스 · 46풍요와 빈곤 · 48황야의 무법자 · 50기억, 코로나택시 · 52낯선 방향 · 543부황홀한 순간 · 57쓰윽 베이다 · 58내려놓기 · 60가벼움의 위치 · 62못다 부른 노래 · 63환상통 - 길고양이 · 64시장풍경 뽑기 · 65철없는 이별 · 66립스틱 짙게 바르고 · 68배회 · 69아지랑이 피어오르는 · 70젊은 날의 초상 · 71어린 염탐꾼 · 724부빙점 · 75홍역 · 76한유성길에서 · 78잠실역 · 81당신의 하늘은 무슨 빛이기에 - 윤동주 시인 · 82신호등 따라 · 84과녁 · 85삼각관계 · 86이론적 해석 · 88겨울폭풍, 그리고 봄 · 89손님들 · 90봄비 · 91해피엔딩 · 92해피엔딩 2 · 94작품해설: 천진한 마음으로 빚은 신생의 예지 - 이숭원(李崇源, 문학평론가. 서울여자대학교 명예교수) · 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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