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휴 마지막 날 삼십대 후반의 노처녀가 찾아왔다. 어서 결혼해서 남들처럼 패밀리를 만들고 싶은데 마땅한 상대가 없다. 여자는 외견상 하자가 없다. 인물도 나무랄 데 없고 체격도 날씬하고 일자리도 탄탄하다. 열심히 저축해서 집도 한 채 마련해 놓았다. 미국에 혼자 와서 정신없이 공부하고 직장 다니느라고 나이만 먹었을 뿐이다.
우선, 여자의 사주를 살펴본다. 기토(己土) 일주가 겨울에 태어나서 신약을 면할 수는 없지만 운로가 남쪽 마을을 치닫고 있어서 다행이다. 나이 들수록 운이 좋다는 말이다. 몸은 좀 약하지만 똑똑하고 재물도 있다. 다만 아쉬운 것은 일월(日月)이 상충하면서 남편 자리가 약해진 점이다. 그게 가장 큰 흠이다.
어쨌거나 외국에 온 것은 백번 잘했지만, 여태 시집을 못간 것은 어찌 보면 잘된 일일수도 있겠다 싶다. 삼십 전에 결혼을 하였다면 이별수가 보이기 때문이다. 보이는 대로 술술 말을 하니까 흡족한 표정을 짓는다. 여러 곳을 다녔지만 나처럼 말하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한다. 연대가 맞았을 뿐이라고 하니까, 남자 네 명의 생년월일이 적힌 종이를 꺼내 놓는다.
작년에 실연을 하고 충격이 너무 컸다. 결혼을 약속했던 남자가 갑자기 다른 여자와 결혼을 하는 바람에 제 정신이 아니었다. 남자 팔자가 마마보이라서 엄마의 강권을 못 이기고 배반을 때렸던 것이다. 그래서 아픔을 달래느라고 여기저기 선이 닿는 대로 소개를 받다보니 본의 아니게 여러 사람을 알게 되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판단이 서지 않는다면서 필자의 도움을 청한다.
남자들의 사주를 세워놓고 찬찬히 살펴보니 결론은 쉽게 난다. 세 번째 남자는 궁합이 상극에다 살까지 끼었으니 더 볼 필요가 없다. 네 번째는 사주에 재물이 없고 운이 들어오려면 앞으로 십년은 걸릴텐데 어떡하겠냐고 물었더니, 안 그래도 이 사람이 공부가 덜 끝나서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고 대답한다.
첫 번째 남자가 사주도 괜찮고 궁합도 좋은 편인데 문제는 두 사람이 합칠 인연이 약하다고 하였더니, 이 남자는 시애틀에 살고 있어서 서로 만나기가 힘들다고 한다. 그래서 주로 이메일을 주고받는데 그냥 덤덤하기만 할뿐이지 끌어당기는 맛이 없단다.
두 번째 남자는 태어난 시간에 따라 크게 달라질 운명이다. 밤 9시에서 10시 사이에 태어났다고 한다. 만약 9시 반 이전에 태어났다면 두 번 이상 장가를 가는 팔자라고 하니까, 결혼에 한번 실패했다고 한다. 그러면 술시에 태어난 게 틀림없다. 사주에 재물도 많고 운도 따르니 부자로 살 것은 따 놓은 당상이다.
그러나 돈이라면 무슨 짓이라도 하고, 여자라면 환장을 하는 바람둥이 팔자이다. 이 자리는 권하고 싶지 않다고 말했더니, 남자가 나이가 들면 괜찮지 않겠냐고 묻는다. 글쎄, 타고난 천성을 바꾸기가 그리 쉽다면 누군들 바꾸지 않을까. 두 사람의 인연을 점쳐보니, 웬걸 합치는 인연이 아닌가. 이대로 가면 올 겨울에 살림이라도 차릴 점괘가 나온다.
리쿼 스토어를 하는 이 남자는 처음에 전혀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주말마다 찾아와서 물량공세를 펴니까 이제는 점점 끌려가는 형세가 되었다. 돈 빼면 볼 게 없는 사람인줄 빤히 아는데도 그 돈이 싫지 않은 것은 인지상정이다. 내년 정월에 좋은 배필이 생길테니 이 사람은 그만두라고 말은 해주었지만 결정은 본인이 하는 법이다. 하회를 기대하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