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입춘이 오면 필자는 바빠진다. 아침에 입춘대길(立春大吉)을 대문에 붙이고는 곧바로 부적을 쓰기 시작한다. 한 해를 잘 보내라는 의미로 아는 분들에게 선물하기 위함이다. 작년에는 팔십 여장을 썼는데 올해는 얼마나 써야 될지 모르겠다. 부지런히 써도 한 밤중이 되어야 끝날 것이다. 힘이 좀 들기는 하지만 신령스런 마음이 다문 한 조각이라도 담긴 부적으로 주위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는 기쁨이 모든 것을 우선한다.
부적이라는 말을 꺼내면 사람들은 일단 거부 반응부터 보인다. 미신의 표상으로 못을 박는다. 필자도 예전에는 그랬었다. 역학을 처음 배울 때 선생님께서 그러셨다. 나중에 간판을 걸고 사주를 보더라도 부적 장사를 해서는 안 된다고 기회 있을 때마다 당부하셨다. 참 된 역학인의 자세가 아니라는 말씀이셨다.
역학계의 태두이신 도계 박재완 선생님이나 자강 이석영 선생님도 부적을 쓰지 않으셨단다.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이 부적을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시켜서 사회적인 폐해가 컸었기 때문이다. 나도 속으로 그러마고 다짐을 하였고 후일 사무실을 열고나서도 그렇게 하였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상담한 사람의 숫자가 만 명을 넘고 이만 명을 넘어 가면서 마음의 변화가 오기 시작하였다. 각계각층의 별의별 사람들을 만나고,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사연들을 듣고, 무슨 방법이 없겠냐고 통사정하는 불쌍한 사람들의 호소 앞에, 풍파로 얼룩진 사주나 풀어주고 앞날이 흉할 것이라고 점괘나 뽑아주는 나는 그야말로 아무 것도 아니었다.
세상사를 해결하기 위해서 역학이 존재하는 것이지, 사람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허울 좋은 고담준론에 불과하지 않은가. 미래를 예측하는 소극적인 방법이 아니라 나락에 빠진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방법을 찾게 되었다. 그래서 부적을 공부하기 시작하였다.
부적은 동양 오술의 하나인 부주술(符咒術)의 일종으로서 종이에 글씨,그림,기호 등을 그려서 재앙을 막거나 복을 비는 주술적인 도구를 말한다. 부적의 기원은 원시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인류가 동굴에 해,달,짐승 등 주술적인 암벽화를 그린 것에서 찾을 수 있다.
부적은 대개 기묘한 선과 원으로 이루어져 있다. 우주 에너지인 기(氣)의 흐름을 상징한다는 말이다. 신(神)의 문자 또는 기호인 것이다. 이를 통하여 신과 대화하여 정해진 운명을 바꿔보려는 염원과 의지를 담고 있다. 부적을 통해 화를 피하고 복을 얻으려는 간절한 소망과 믿음 그리고 부적을 쓰는 사람의 영력(靈力)과 정성에 따라 부적의 영험이 생긴다.
부적은 단지 심리적인 위안일 뿐이라고 폄하하는 사람도 있다. 부적을 소지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마음의 안정을 얻는 사람들을 보면 일리 있는 말이다. 그렇지만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절망의 상태에서 부적을 쓰고 나서 모든 일이 뜻대로 풀렸다면 이를 우연의 일치라고만 할 수 있을까. 뭔가 무형의 존재가 발휘되었을 수도 있다.
부적의 효험은 있다고 장담할 수도 없고 증명하기도 어렵다. 단지 확실한 것은 진실로 믿는 사람에게는 효험이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지만, 믿지 않는 사람에게는 전혀 효험이 없다는 사실이다. 심리적인 이유에서든 신령의 힘이든 인간을 구원하기만 한다면 그만이지 싶다. 가만히 앉아서 죽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운수좋은 집.김동윤의 역학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