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 없는 날
이사를 하려는데 손 없는 날이 언제냐고 묻는 전화를 자주 받는다. 웬만큼 나이 드신 분들에게는 무척 귀에 익은 말인데 정확한 뜻을 아는 사람은 적은고로 손 없는 날의 정체를 살펴보기로 한다.
손은 즉 태백살(太白殺)을 말하며 날수에 따라 동서남북 4방위로 옮겨 다니면서 손해를 끼치고 사람에게 해코지를 하는 귀신을 의미한다. 예컨대 음력으로 따져서 1일 11일 21일에는 태백살이 동쪽에 있고, 2일 12일 22일에는 동남, 3일 13일 23일에는 남쪽, 4일 14일 24일에는 서남, 5일 15일 25일에는 서쪽, 6일 16일 26일에는 서북, 7일 17일 27일에는 북쪽, 8일 18일 28일에는 동북방향에 손이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나 음력 9일 10일 19일 20일 29일 30일에는 상천방에 태백살이 있으므로 손 없는 날이 된다.
따라서 악귀와 악신이 움직이지 않는 날이 되므로 예로부터 민속에서 각종 택일의 기준으로 삼았던 것이다. 가령 이사를 하거나 혼인을 하거나 장을 담거나 여행을 할 때 손 없는 날을 택했으며 하다못해 못을 칠 때도 날을 가려서 하였다.
최첨단 과학시대를 살면서 무슨 귀신이야기를 하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건 몰라서 하는 말이다. 보이지 않는 세계를 추구하는 필자로서는 당연한 일이며, 눈에 보이는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에 종속되어 있다고 믿는다는 말이다.
한편 역학적으로는 이사 택일의 과정이 복잡하다. 천지운행의 법칙을 살펴서 길일과 흉일을 구분하는데, 집안 대주 즉 큰 어른의 사주에 따른 생기복덕일 중에서 용신을 생부하는 날을 우선하며, 천우신조와 합하는 날이면 금상첨화로 여긴다. 물론 꺼리는 날이 있다. 가구주의 본명일을 피한다. 이를테면 무자년 출생이면 무자일을 피한다는 말이다. 또한 대주의 사주를 형(刑),충(冲),파(破),해(害)하는 날을 피한다.
위의 과정을 제대로 하자면 전문가들이나 가능하지 일반대중에게는 매우 힘들다. 그래서 손쉬운 방법을 찾게 되었고 그 중의 하나가 손 없는 날로서 오늘날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고 있다. 손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말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중요한 날이 생기게 마련이다. 결혼이나 이사는 물론이고 비즈니스를 개업할 때나 집을 계약할 때 또는 먼 길을 떠날 때 아무 날에 하지 않고 길일을 골라서 행하는 모습에서 옛 분들의 높은 정신문화를 엿볼 수 있다. 매사를 조심하고 정성을 들이는 노력에 고개가 숙여지고 감사할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