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상이란 사람의 안면과 골격,수족 등의 형상은 물론이고 음성과 신체동작에 이르기까지의 특징을 보고 한 사람의 운명과 길흉화복을 판단하는 일종의 점법을 말한다. 관상을 보고 사람의 됨됨이나 장래의 일을 파악하기란 말이 쉽지 정말로 어려운 일이다. 모양을 보기야 수월하지만 이치를 살펴서 올바로 판단하기란 실로 힘들다는 말이다.
과학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세상이 급속하게 변하여도 세상일이란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것이고 대인관계가 전부라고 한다면 관상의 중요성은 불문가지이다. 그래서 삼성그룹의 창업자인 이병철 회장은 당대의 관상가를 모시고 신입사원 채용에 임했던 것이다. 회장실 면접에서 관상가인 백운학 선생이 반대하면 시험성적이 아무리 좋아도 낙방을 면할 수 없었다고 한다. 조직을 배신하거나 해를 끼칠 수 있는 싹을 초장에 도려냈던 것이다. 이 전통이 후대 회장체제에도 계속되었다면 법무팀의 아무개 변호사가 벌인 고발사건으로 회장이 물러나는 불상사는 없었을 텐데 아쉽기 그지없다.
모름지기 관상은 마음의 상(相)을 보는 것이다. 마음이 사람 모양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마음의 선과 악이 얼굴과 행동에 나타날 것이니 관찰해 보면 길흉화복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관상은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변하게 된다. 지금 관상이 나쁘더라도 선행을 통하여 얼마든지 좋은 관상으로 바뀔 수 있고, 역으로 지금의 좋은 관상이 나빠질 수 있음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역사를 살펴보면 뛰어난 관상가가 많이 있다. 그 중에서 조선시대의 여성 관상가를 소개한다. 문곡 김수항의 부인 나씨는 평소 상서(相書)에 조예가 깊고 예감이 뛰어났는데, 어느 날 딸을 위하여 사윗감을 물색하던 중 셋째 아들을 시켜 민씨의 집에 가서 골라보라고 하였다. 이에 아들은 “민씨네 아이들은 성질이 급해서 못 쓴다”고 하였다. 나씨 부인은 그럴 리가 없는데 하면서 의아해 하였다. 그 후 아들은 이씨네 집에 가서 의동생을 삼아놓고 와서는“이번에 정말 좋은 신랑감을 찾았다”고 하였다.
아들의 말을 믿고 혼례를 올리던 날, 부인이 사위의 얼굴을 보고는 아들에게 “너는 눈은 있는데 눈동자가 없다”며 아들을 크게 나무랐다. 성질이 온순하지 않느냐고 반박하는 아들에게, 부인이 “온순하기는 하지만 수명이 삼십을 넘지 못할 상이다.” 그리고 딸을 유심히 바라보더니 “내 딸이 먼저 죽을 터이니 할 수 없구나.”하였다.
어느 날 민씨네 형제가 집에 찾아왔는데 부인이 문틈으로 이들을 살펴본 후 아들을 불러 책망하고 탄식하였다. “너는 정말 눈동자가 없는 사람이구나. 저 도령들은 큰 그릇이 될 것이야. 저렇게 좋은 혼처를 잃다니...” 그 후 부인의 말대로 이씨집 도령은 삼십을 지나 요절하였고 딸은 그보다 일 년 전에 먼저 죽었다. 그리고 민씨네 두 도령은 입신출세하였다.
부인은 일찍이 비단 세필을 짜서 한 필은 남편의 관복을 만들고 나머지 두 필은 깊숙이 보관하였다. 둘째 아들이 급제하였을 때도 내놓지 않다가 넷째 아들이 급제할 때 한 필을 꺼내어 관복을 지었다. 나머지 한 필은 손녀사위가 등제하였을 때 관복으로 만들었다. 이 관복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정승이 되었다. 부인은 그릇을 분별하였던 (운수좋은 집, 김동윤의 역학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