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장(移葬)
아버지 산소를 옮길 때의 일이다. 오십대 초반의 한창 나이에 돌아가신 부친은 의정부 근교에 소재한 공동묘지에 안장되셨다. 당시는 경황도 없고 나이도 어린 탓에 뭐가 뭔지도 몰랐는데 세월이 흘러 역학을 공부하고 풍수에도 눈을 뜨게 되니 묏자리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집안에 우환이 끊이지 않고 되는 일도 없던 차에 혹시 산소에 문제가 있는지 몰라 풍수사 몇 분을 모시고 의견을 들어본즉 봉분이 물구덩이 속에 있으니 망자가 편안치 못하고 지형이 경사져 있으니 언젠가는 붕괴돨 것이라는 게 아닌가.
산소가 무너지면 집안이 망한다는데 이럴 수가 있나 싶었다. 잔디도 새파랗게 잘 자라서 외양상으로는 멀쩡한데 땅속으로 물줄기가 지나간다니 기가 찰 노릇이었다. 모르면 몰랐지 알고서야 어찌 가만히 있을 수 있겠는가.
서둘러 옮길 자리를 찾기 시작했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았다. 공원묘지를 가보면 태반이 매립지라서 마땅찮고, 어디에 길지가 있다고 해서 가보면 자리는 마음에 드는데 산 전체를 모두 구입하자니 돈이 모자라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면서 몇 년이 흘렀다.
2004년 한식에 성묘를 가보니 봉분이 왼쪽으로 기운 게 확연히 눈에 보였다. 잠이 오지 않았다. 일도 손에 잡히지 않는다. 고민으로 밤을 새는데 마침 중학동창이 부친상을 당하는 바람에 문상을 가게 되었다. 거기서 지관인 한선생을 만났다. 예전에 동문수학하던 사이라 내 처지를 말하고 도움을 청하니 예전에 충주 근처에서 좋은 자리를 봤었는데 여태 있을는지 모르겠다고 한다.
다음날로 현장에 가보니 담배밭 속에 쓸만한 혈 자리가 보였다. 반듯한 주산에서 용맥이 구불구불 내려오고 좌청룡 우백호도 기세 좋게 뻗어있고 야트막한 안산이 저수지와 아울러 혈을 감싸고 있으니 대명당은 몰라도 소명당은 된다는 한선생의 설명이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 길로 땅 임자를 수소문하니 동네 이장이 도와주겠다고 나선다.
마침내 밭주인과 만나기로 하였는데 어머니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지난 밤 꿈에 아버지가 오셨는데 아무 말 없이 설거지를 한참 하시다가 그릇이 담긴 광주리를 옆에 끼고는 급히 가셨다고 하면서 이게 무슨 꿈이냐고 물으신다.
이사 가는 꿈이다. 하늘의 뜻이었다. 이장을 할 때 선몽을 한다고 들었는데 어머니 꿈에 알려준 것이었다. 땅 임자는 팔순 노인이셨는데 내 사정을 듣고는 흔쾌히 매각에 동의하셨다.
산소를 옮길 날짜를 뽑으니 공교롭게도 어버이날인 5월 8일 이었다. 새벽에 술을 따르고 공양을 올리면서 산소를 옮기겠다고 아버님께 말씀드렸다. 이윽고 무덤을 헐었는데 바닥이 온통 물 천지였다. 스무 해가 넘었는데 관도 그대로이고 시신도 그대로였다. 일꾼들은 놀라서 뒤로 물러섰고 나는 주저앉아 통곡하였다.
차가운 물속에서 이십년이 넘게 계셨는데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살았다니 이 죄를 어찌할까 싶었다. 의정부 시내에 가서 수의와 관을 구입하여 새로 갈아 드린 후에 충주로 출발하였다. 가는 도중에 타이어가 터져서 혼이 났는데 겨우겨우 하관시각에 맞출 수 있었다.
새로 쓸 자리를 파보니 옥토가 나와서 모두들 무릎을 쳤고 고인이 덕을 많이 쌓으신 덕분이라고 구경 온 동네 어른들이 한마디씩 거들었다. 하늘의 보살핌으로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늦게나마 아버지 산소를 옮겨서 자식 된 도리를 하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쁘고 주위의 도와주신 분들에게 이 자리를 빌려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