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해방 후 한국 제일의 갑부인 삼성의 창업주 이병철 회장을 독대한 P씨로부터 들었다. 70년대 당시에 다른 재벌회사의 회장을 모시고 있던 P씨는 어느 날 갑자기 이회장을 만나게 된다. 원래는 회장끼리 만날 약속이 있었는데 불가피한 일이 생기는 바람에 비서였던 P씨가 회장을 대신하여 동방빌딩을 방문했다고 한다.
정중한 사과와 아울러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고 돌아서려는데 이회장이 극구 말려서 차를 함께 나누게 된다. 말하자면 차 대접을 받게 된 것이다. 이회장이 상석에 앉지도 않고 마주 보고 앉는 바람에 당황 하였는데, 일개 비서에게 존칭을 쓰시니 몸둘바를 모른다.
제발 말씀을 편하게 하시라고 하니까, 회장님 대신으로 왔으니 회장님을 대하듯 하는 게 당연하다고 말씀 하신다. 고매한 인격에 고개가 저절로 숙여진다. 이런 기회가 또 있을까 싶어 결례를 무릅쓰고 묻는다. “회장님, 어떻게 이 많은 돈을 버셨습니까?” 당돌한 질문에 웃음으로 화답하면서 이 회장은 자신의 경험담을 털어 놓는다.
어느 추운 겨울날 퇴근을 하는데 눈이 많이 내렸다. 함박눈이다. 두 손으로 눈을 뭉쳐서 축구공만한 덩어리를 동방빌딩 앞에 놓고 집으로 향했다. 다음 날 아침 출근하면서 보니까 회사 앞에 커다란 눈사람이 서 있는 게 아닌가. 그 때 깨달았다고 한다.
무엇보다 타이밍이 중요하다. 퇴근할 때 눈이 내렸기에 망정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무슨 수로 눈을 뭉쳤겠는가. 그리고 다음으로 미루지 않고 그 자리에서 눈사람의 기초를 만든 것이 주효하였다. 계속해서 많은 눈이 내린 것은 물론 행운이다. 돈도 마찬가지이다. 돈을 버는 때는 따로 있음을 알게 되었다. 또한 시기가 맞아야 하늘도 돕는다는 것을 알았다.
더욱 중요한 것은 눈사람을 혼자서 만든 게 아니라는 것이다. 사실, 이 회장은 애초의 한덩어리를 만들었을 뿐이다. 그 다음에 길 가던 사람들이 하나 둘씩 눈을 붙이고 굴려서 커다란 눈사람을 만든 것이다. 다시 말해서 돈은 내가 버는 게 아니다. 돈은 남들이 벌어다 주는 것이다. 여기에서 삼성의 기업이념인 인재제일이 탄생하였다고 한다.
천하의 인재를 뽑으려는 이회장의 욕심은 신입사원 채용에서 뚜렷이 나타났다. 삼성의 동량이 될 공채사원을 선발할 때는 어김없이 당시 관상가로 유명한 백운학 선생을 초빙하였다. 시험점수가 아무리 좋아도 백 선생이 X표를 하면 그만이다. 백 선생이 타계하신 후에는 후임자를 두지 않고 이 회장 스스로가 관상을 보았다고 한다. 세월이 흐르면서 혜안이 열리셨던 모양이다.
필자도 비즈니스 점괘를 뽑을 때, 당장에 큰돈을 버는 것보다 아랫사람들이 움직여서 돈을 벌어다 주는 점괘를 위로 친다. 시간은 걸리지만 재물의 원천이 사람에 있는 만큼 결국에는 더 큰 돈을 벌게 마련이다.
회사의 규모가 크든 작든 결국에 돈을 버는 것은 아랫사람이 아닌가. 사장 혼자 아무리 뛰어봤자 소용이 없다. 탁월한 능력이 있더라도 원맨쇼는 오래가지 못한다. 내 돈을 벌어다 주는 사람이 다름 아닌 내가 부리는 직원들이라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가. 정말이지 아끼고 또 아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