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입력일자:2024-10-14>
[문화] 제5회 선경문학상 김륭 시인 수상
▶제5회 선경문학상 수상자 김륭시인
제5회 선경문학상 수상자는 「식물복지」 외 53편을 응모한 김륭 시인이다. 심사평 중에서 “김륭 시인의 작품들을 읽어나가는 동안 시 한 편 한 편의 제목에서부터 긴장감을 몰아가는 시들이 많았다. 시들은 낭창하고 자유로우며 재미졌다. 김륭 시인 특유의 음악성 또한 느껴졌는데 시인이 시를 쓸 때의 ‘심적 유희’를 건네받는 기분이기도 했다.
비록 개인의 취향일 수 있겠으나 아무리 냉정하게 심사를 하려 해도 좋은 시 앞에서 마음이 감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고기, 닭, 새, 개, 토끼, 고양이, 돼지 등등의 동물을 유기적으로 등장시켜 일상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쌓아올리는 기법들은 현재 김륭 시인의 매혹적인 시세계라 단언할 수 있겠다”는 심사 배경을 밝혔다.
수상작은 2024년 『상상인』 겨울호(제10호)에 특집 게재될 예정이며 이번 선경문학상 수상자인 김륭 시인은 2007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2007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동시 당선으로 작품활동을 하고 있으며 여러 작품집이 있고, 선경문학상 수상시집으로 『새를 키우고 싶은 개가 있을 겁니다』가 발간된다.
▷심사위원 _ 이병률 시인 이성혁 문학평론가
상금은 일천만 원이며 상금 등 부대비용은 선경산업에서 지원한다. 선경문학상은 『상상인』과 선경문학상 운영위원회가 주관하고 선경산업이 주최한다.
■ 시상식 2024년 12월 7일(오후 3시)
■ 장 소 선경산업 강당(인천광역시 계양구 서운산단로3길 1(서운동)
수상소감
그녀는 비가 막 돌아다닌다고
울고
지난해 많이 아팠다. 달과 비를 다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나는 당황했다. 불쑥, 내가 사는 아파트 베란다 화분에서 죽은 식물이 찾아올 것 같은 나날이었다. 생지처럼 흰색을 드러내기 시작한 그림자를 발견한 듯. 침대 위에 놓여있던 베개는 또 나를 떠날 궁리를 하는 게 틀림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내게 많이 미안해서 사는 것 같았다. 나는 나로 인해 시작된 사람이지만 나로 끝나는 사람이 아니었다. 몸은 아파도 마음이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시가 그런 거고 사랑이 그런 거라면 이런 말을 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같이 살까? 아프기 전에도 그랬지만 아팠을 때도 아프고 난 후에도 한결같은 마음으로 지켜주는 사람이 있었다. 멀리 두면 혼날 것 같은, 울음이 그런 거라면 한마음에게 가는 한마음의 형식이 그런 거라면 가끔씩은 달을 식혀서 가져와도 그리 나쁘진 않겠다, 싶었다. 이를테면 그 사람을 생각하며 쓴 이런 구절처럼―“그녀가 병원에 간 동안 나는 살기 위해/바쁘다. 목을 가슴에 푹 쑤셔 넣고/지하수에 빠져 죽은 사람도/되어보고,”―나는 또 당황한다. 이쯤에서 나는 내게 그리고 그 사람에게 많이 미안해서 눈곱만큼이라도 아름다워졌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부족한 작품을 다독여 주신 이병률 시인님과 이성혁 평론가님 그리고 이승예 선경문학상 운영위원장님께 감사드린다.
/김륭
심사평
시인은 받아 적고 사랑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올해 제5회 선경문학상의 주인공은 「식물복지」 외 53편을 응모한 김륭 시인이다. 철저히 이름을 가리고 한 심사에서 익히 읽어왔던 시인의 이름을 만나는 것은 크나큰 기쁨이다.
시집 한 권을 분량의 시들을 읽어나가는 동안 시 한 편 한 편의 제목에서부터 긴장감을 몰아가는 시들이 많았다. 시들은 낭창하고 자유로우며 재미졌다. 김륭 시인 특유의 음악성 또한 느껴졌는데 시인이 시를 쓸 때의 ‘심적 유희’를 건네받는 기분이기도 했다.
비록 개인의 취향일 수 있겠으나 아무리 냉정하게 심사를 하려 해도 좋은 시 앞에서 마음이 감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물고기, 닭, 새, 개, 토끼, 고양이, 돼지 등등의 동물을 유기적으로 등장시켜 일상의 이미지를 입체적으로 쌓아 올리는 기법들은 현재 김륭 시인의 매혹적인 시세계라 단언할 수 있겠다. 동시에 그 부분은 ‘한 권’이라는 시집의 형태를 만드는 데 있어 적극적인 컨셉트로도 읽혔다.
이성혁 평론가와 함께 본선에 오른 작품집을 읽는 일은 즐거웠다. 그만큼 이 상의 권위와 자리가 굳어져 가고 있다는 느낌이 절 정도로 상당한 수준의 작품들도 많이 눈에 띄었다.
다른 투고작들을 살펴보자(대표작만 명기하기로 한다). 『철길 위의 하모니카』는 시적인 몰두가 돋보였다. 시 전체를 압도하는 육중한 세계관과 특히 산문시 방식으로 촘촘한 얼개를 펼치는 기법들은 이 시인의 특장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겨울을 잃고 나는』을 보내온 시인의 독특한 상상력에 박수를 보낸다. 일상의 잔잔함을 모조리 지우는 시 쓰기 방식이라든가 우렁찬 목소리로 종횡무진하는 상상력은 또 다른 서정의 감도를 발견하게 해 주었다.
다음은 『관흉국』이다. ‘단점이 없다는 것이 장점일 수 있을까’라는 고민으로 오래 즐거웠다. 그리고 쉬운 시, 잘 읽히는 시가 갖는 착함에 대해서도 오래 고민했다. 그만큼 이 시인의 시는 소통 가능한 시를 쓰고 있으며 어떤 시든 이해가 쉽다는 미덕이 있었으나 그래도 시에는 ‘뒤란’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고민도 동시에 가능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응모작 『환대의 식탁에서 시작된 서사』는 모호한 몇몇의 시와 이야기들로 인해 전체 시들을 읽는 동안 집중하지 못하게 했다. 여러 다채로운 맛을 맛보게 해준 시들로도 행복했지만 다정한 시인으로서의 장점을 더 많은 시에 녹이거나 이어 나가면 어떨까 싶었다.
선경문학상 위원회는 높은 수준을 자랑하는 투고작들을 책상 위에 쌓아 놓고 행복한 고민을 했다. 투고작들의 열기만으로도 자리를 잡아가는 문학상으로서 충분히 성과를 이룬 ‘제5회 선경문학상’이라 봐도 무방할 것이다. 열기라는 말을 꺼내서 하는 말이지만 삶을 열렬히 사랑하는 행위 자체가 시라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시인은 그 사랑을 받아 적는 일을 하는 사람일 것이다. 산처럼 솟아오르는 사랑, 불타는 모험으로의 사랑, 진눈깨비 흩날리는 벌판 같은 사랑……
시인은 받아 적고 사랑은 끊임없이 말을 한다.
심사위원 : 시인 이병률(글), 문학평론가 이성혁
제5회 선경문학상 수상작품 중에서
식물복지
개가 산책을 할 때 새는 기도를 한다.
그녀가 말했고 나는 웃었다.
식물처럼
새는 왜 새가 되었는지 개는 왜 개가 되었는지 잘 모르겠지만 새와 개는 마음이 잘 통할 것 같다. 그렇다면 나는 새와 개 사이에 놓인 커다란 구멍, 누가 돌로 구멍을 막아놓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말을 잘 듣지 않는 커다란 돌처럼 고개를 들어 올리면서
새를 본다. 새는, 개와 잘 놀아줄 것 같다. 이런 생각은 가능하면 하지 않는 게 좋다는 말은 나보다 늙은 배롱나무에게 들었다.
내가 있어도 외로워?
외롭다는 말은 마음이 식물처럼 걷는다는 말!
배롱나무는 너무 자주 머리를 긁는다.
그녀와 내가 개와 새처럼 걷다가 잠시 멈춰 서있을 때였다. 마음을 내려놓는 순간 죽을 수도 있다고 바람이 말했다. 나는 바람과 말이 잘 통한다. 빌어먹기 딱 좋은 이 말을 나는 그녀에게는 한 번도 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내가 했던 대부분의 연애가 실패로 돌아간 건 태어날 때부터 식물적인 감각이 없었기 때문. 나는 그녀 그림자 밑에 발을 넣고 걷다가 여우비를 떠올렸지만,
죽었지.
마음과 마음은 더 이상 마주치지 않을 거예요.
저만치 팔랑팔랑 앞서 걷는 노란 나비를 보고 개가 펄쩍 뛰어오르고
새는 또 기도를 하고, 나는 뒤를 보고 열심히 걸었다.
바람이 오기 전에 잎을 내려놓는
돼지와 비
우는 사랑을 잘 먹이고 잘 입히는 마음을 쓰려다가
죽었다고 말하면 거기, 당신은 웃겠지요.
따라 웃는 사람도 많겠지요. 참 다행한 일이에요.
여기가 아니라 거기여서
당신이 웃으면 쥐도 웃을 것 같아서
나는 조마조마
또 비에게 가요. 비는 기다리는 일이 아니어서
올 때 울었으니 갈 때도 울어야지 싶은
그런 마음일 거예요.
사람이 사람을 가만히 돌멩이처럼 울어주는 일, 그것은
단 하루 동안만이라도 우려먹고 싶은
일이어서
나는 가끔씩 돼지를 돌보는 바람 같다.
마음이 걷잡을 수 없이 커질 때마다 잡히지 않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런 내가 불길해질 때가 있어서
들켜서는 안 되는 잠, 요즘 들어 자주 비가 새지만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다. 그저 물끄러미
구경만 한다.
돼지도 돼지만큼 비를 올려다볼 수 있고 우산을 들고
하늘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은 하지만
돼지를 빼면 가죽만 남을 것 같은
밤, 당신과 내가 웃으면 쥐도 웃을 것 같아서
나는 몸 밖으로 나온 나의 돼지를 오래된 연인처럼
쓰다듬기 시작한다.
속옷만 한 고양이가 없다
속옷만 한 갯벌이 없다. 가끔씩 나는
파도의 얼굴을 가진다. 밥보다 밤이 필요한 날이 많아서
배가 들어오면 볼이 빨개지는 섬 아이처럼
해 질 무렵이면
나는 살금살금 내 바깥으로 나간다. 늙은 얼룩 고양이를 닮은 저녁이
담장 위로 모여든다. 이미 나를 포기한 비파나무와 너무 늦은
불빛을 가물거리는 고깃배와 함께
이러다간 전생까지 젖어버릴지 몰라요.
속옷처럼 살긴 싫어요.
가슴으로 숨어들지 못한 내가, 매일 밤 젖은 양말처럼 갈아 신어야 하는
내가 점점 미쳐 돌아가는 세상과 맞물릴 때마다
남도의 어느 작은 섬을 까맣게 뒤덮은 까마귀 떼 사이를
솟구쳐 올라 울곤 했다.
아무래도 속옷만 한 고양이가 없다.
젖은 그림자를 입고 수염 가득 공중도덕을 매달고 오는 고양이처럼 살거나
달포를 푹 삭힌 홍어처럼 살거나 아무렴 아무도 읽지 않는
무명 시인의 시집처럼
죽은 듯 살아남기. 속옷만 한 섬이라도 있으니까
세탁기 속에 던져 넣었던 팬티 다시 꺼내
입에 물고,
울음만 한 속옷이 없다.
나를 엿보던 얼룩 고양이가 스르륵
파도의 얼굴을 벗어던지고
있다.
눈사람의 목소리라고 생각할게요
어떤 말은 물을 닮았다. 흐르면서 시작되는
마음의 피부를 만지는 기분
난 왜 이 모양일까? 그녀가 말했을 때 나는 너무 당황한 나머지
밤이 된 줄도 몰랐다. 난 왜, 라는 그녀의 말속으로 들어가
빈 화분처럼 앉아있었다. 마음이 아파하는 소리가
눈송이처럼 잠시 모였다가 흩어졌다.
너무 먼 곳은 아닐 것이다. 눈사람의 일을 대신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 있어서 나는, 나보다 더 사랑을
살아보려 했을 것이다.
그녀의 입에서 나온 이 모양은 어떤 모양일까?
막 끓기 시작한 라면 냄비 속에서 가만히
늙고 병든 바람이 무화과나무 잎사귀 만지는 소리를 건져 올리는
그런 밤이 있어서
그녀는 나를 떠나 눈사람이 되고 싶었는지 모른다.
눈과 사람 사이 어디쯤 지옥이 있겠지만 끝내 사랑을 지키는,
그래요. 마음에게도 시간을 좀 줘야 하니까요.
속옷을 빨아 드라이기로 말리듯 건너오는
그녀의 슬픔은 지나치게 겸손해서 마음이 죽어가는
소리도 다 들리는 것 같았다.
눈사람의 목소리라고 생각할게요.
물을 닮은 말은 식물처럼 걷는다. 몸보다 먼저
마음이 하는 일이다. 어디쯤 가고 있을까? 그녀가 했던 말을
오래된 눈송이처럼 다시 만져보는
그런 밤이 있다.
스위치
새를 키우고 싶은 개가 있을 겁니다.
목줄 묶인 개일수록 더 많은 새를 키울 겁니다.
새를 키운다고 개가 달라질 일은
없을 테지만,
개와 새 사이에 빈 화분처럼 앉아있습니다.
인근 주민들이 힐끗힐끗 쳐다봅니다.
특별히 잘못한 일도 없는데 얼굴 들고 살 수 없는 날이 있습니다.
식사는 하셨어요? 이런 말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또 다리를 떨었습니다.
마음이 조용히 무너져있습니다.
나는 아무래도 시 같은 걸 써서는 안 되는
사람입니다.
기다리던 자식 대신 치매가 찾아왔다던
옆집 할머니가 이사를 갑니다. 개를 데리고 갑니다.
개가 키우던 새는 두고 갑니다. 할머니가 이삿짐을 푸는 동안
개는 새로운 새를 키울 겁니다.
끝이 없는 줄 알고 시작하는 게 사랑이어서
가끔씩 나는 식물입니다. 뿌리를 내리고 살진 못했지만
모르는 것보다 새로운 것은 없습니다.
개를 키우고 싶은 새도 있을 겁니다. 더 이상 갈 데가 없는
나는 이제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입니다.
이쯤에서 그만 돌아가세요.
무너진 마음의 벽을 더듬는 순간
밤이 하는 말입니다.
잊음
그녀는 생선과 단둘이 남았다*
나는 이런 문장이 참 마음에 든다 사방이 쥐 죽은 듯
고요해지고 기다렸다는 듯 난간이 생긴다
나는 누워있고, 그녀는 생선과 함께 난간 끝에
위태롭게 서 있다
그러나 어떤 고요는 말이 아니라 살이어서 그녀는
생선과 모종의 이야기를 길게 나눌 수도 있다
나는 그녀의 몸에서 비릿하게 흘러나오는
고백의 냄새를 맡는다
그녀가 울고 있다 가라앉고 있다
그녀와 생선을 둘러싸고 있던 모든 사물들이
물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녀는 무사히
가라앉을 수 있을까
어쩌면 그녀는 자신이 생선을 낳았다고 생각하는지
모른다 나는 석쇠 위의 생선처럼 몸을 뒤틀며
마음을 일으켜 세운다
그녀가 메기나 미꾸라지처럼 좀 기분 나쁘게 생긴
어떤 남자가 아니라 생선과 단둘이 남았다는
이런 이야기가 나는 정말
마음에 든다
그러니까 한 마리 혹은
두 마리, 세 마리, 여러 마리 생선처럼
내 속 깊은 곳으로 들어와 살아서
잊힌 그런 연인이 내게도
분명 있었다
* 리디아 데이비스, 『불안의 변이』 P61 「생선」 중에서.
■ 시상식 2024년 12월7일(오후3시)
-미국최대한인포털 뉴욕코리아, 문화부 John Kim 기자
[ⓒ 뉴욕코리아(www.newyorkkorea.net ),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Contact Us : 고객문의센터, Tel: 대표 201-674-5611
E-mail: newyorkkorea77@gmail.com, newyorkkorea@naver.com, 빠른카톡상담ID : newyorkkorea
미국최대 대표포털 뉴욕코리아는 미국법률변호사고문 및 미국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컨텐츠 및 기사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c) New York Korea, INC. News Media Group in US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