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중부양은 중력의 법칙과는 반대로 아무런 물질적 매개체 없이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현상으로 높은 단계의 정신수련중에 무의식적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사람이 새처럼 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는 예로부터 지금까지 많은사람들의 화젯거리였다. 서양사람들은 이 문제를 기계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비행기를 발명했지만 동양인들은 인간 자체의 능력중에서 그힘을 개발키 위해 무수한 인고의 나날을 보내왔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휴거나 도교에서의 우화등선을 논외로 치더라도 기공계에는 공중을 나는 사람을 보았다거나 또는 스스로가 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상당수 있다.
이처럼 사람이 허공을 날아다니는 기술을 무술과 기공에서는 `경공'이라고부른다.`경공'은 지면을 축소시켜서 그 위를 재빨리 움직인다고 하는 전설상의 축지법과는 메카니즘이 다르다.
초월명상(TM)에서 보이는 호핑(Hopping ; 통통 튀는 것) 같은 것은 공중부양 이라고 볼 수는 없다. 상당기간 공중에 몸이 떠있어야만 공중부양 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요가를 수행하여 공중부양을 실행했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는 사실 공중에 떠오른다기 보다는 차라리 개구리 뛰기 같은 토기뜀에 지나지 않는 것이많다.
얼마전 일본에서 물의를 빚은 모 사이비교의 교주가 사람들을 사람들을 상대로 사기극을 벌인 것도 공중부양이 아닌 단순히 공중뛰기였다.
무협영화나 소설에서 흔히 볼 수 있듯이 담벽을 날아넘는 `비첨주벽'이나 눈을 밟아도 발자국이 남지 않는 `답설무흔' 그리고 물 위를 걸어가는 `능파도수' 등이 바로 대표적인 공중부양의 원리를 이용한 '경공'이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가 바다 위를 걸었다는 마태복음의 기록이나 달마대사가 갈대 잎을 밟은 채 강물을 건넜다는 `일위도강'의 종교적 기록도 있다.
17세기의 유명한 과학자 뉴턴은 사과가 떨어지는 현상을 보고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다.지구상의 모든 물체가 지구의 중력작용을 받는다는건 누구도 부인하지 못하는 진리다.그렇다면 소위 `공중부양'이라고 하는 것은 만유인력의 법칙에서 분명 어긋나 있다.
공중부양이 믿기지 않는 것은 중력의 법칙을 벗어나는 명백한 反과학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다른 어떤 능력보다도 사람들의 주의를 끈다. 선도(仙道) 수행자들이 현상의 최대목표로 보는 우화등선(羽化登仙: 신선이 되어 산채로 올라감)은 공중부양의 연장선에 있다.
공중부양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은 것은 단지 정신수련과정, 특히 명상도중 경험하는 특수현상이어서 주위에서 확인받기 어려울 때가 많은 점도 있지만, 이런 능력에 집착하지 않고 다음 단계로 넘어가기 때문이라는 것이 주된 이유이다.
실제로 공중부양 그 자체에는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공중부양을 하는 당사자는 공중부양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공중부양의 상태로 이끄는 정신적 카타르시스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서양에서는 다니엘 더글러스 홈이라는 특능자가 가장 유명하고, 페루의 도미니크 교회의 수도사 마르틴 드 포레스가 있고, 예언자로 유명한 에드가케이시도 공중부양을 한 일이 있었다고 전한다.
가톨릭에서 몸이 공중에 뜬 분명한 기록은 카르멜수도회의 성 테레사수녀(~1582)의 얘기가 있다. 테레사수녀의 친구이자 자서전 집필자인 디에고 레예페스주교에 따르면 공중부양의 목격자중 한 사람이 아빌라의 알바로데 멘도사주교이다.
그는 교회성가대 벽에 만들어진 구멍을 통해 성찬식을 진행하던 도중 테레사수녀가 공중으로 떠오른 장면을 봤다. 1565년 완성된 자서전에서 그녀는 그때의 일을 묘사했다.
'이런 일이 나에게 자주 발생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이번은 성가대에서 여러사람이 있는데서 일어난 것이다. 나는 성찬을 받는 자리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런 자리에서 일어난 일이라 몹시 걱정이 되었다.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릴 것이 두려웠다. 그래서 나는 그 자리에 함께 있던 수녀들에게 이 사실을 입밖에 내지말라고 엄명했다. 이 일이 있기전에 나는 수녀원장이 되었었다.....'
테레사수녀는 황홀감 상태가 되면 이런 현상을 겪는다고 고백하고 있다. 또다른 경험에서 그녀는 '나는 정신을 잃지는 않았기에 내몸이 들려지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체중이 없어져 버린 것같이 몸이 뜨기 때문에 황홀상태가 끝나고 몸이 땅에 닿아도 그것을 알 수 없을 정도였다'고 적고 있다.
테레사수녀가 죽은지 13년뒤 안네라는 수녀도 목격사실을 증언했다. '오후 1,2시사이에 테레사원장이 들어와 무릎을 꿇은 뒤 7분쯤 흘렀다. 그때 원장을 쳐다보니 몸이 마룻바닥에서 45cm정도 들린 채 공중에 떠있었다.
나는 무서운기분이 들었다. 원장에게로 가서 떠있는 몸아래 공간에 내손을 디밀어 보았다. ... 30분쯤 계속되는 동안 나는 울고 있었다....'
예페스주교는 '그녀가 겸손했다' 고 적고 있다. 성찬직후 엄습해오는 황홀감에 저항하려고 테레사수녀는 성찬이 주어지는 쇠창살을 힘껏 잡고 몸이 떠오르지 못하게 하려했다.
그래도 몸이 뜨자 그녀는 '보잘 것 없는 제게서 커다란 은총을 거두소서. 이 죄많은 인간을 성녀(聖女)로 보이지 않게 하소서....'하고 기도했다.마치 정신수련자들이 현상에 집착하지 않으려는 노력과 흡사하다.
아시시의 성프란체스코(1182~1226)도 1224년 알베르나산에서 성흔(聖痕,손바닥 이마에 나타나는 예수의 수난 흔적 등 하느님의 표적이 몸에 나타나는 현상)을 받은 얼마뒤 공중부양한 사실이 레오수도사 등에 의해 기록으로 남아있다.
레오수도사는 '한번은 밤나무 높이까지 그의 몸이 떠는 것을 봤다. 어느날인가는 성프란체스코의 몸이 너무 높이 떠올라 광채에 휩싸이는 바람에 그의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고 증언했다.
국내에선 범어사의 양익스님(70)이 공중부양 능력자로 알려져 있다. 지금은 일반인 접견을 금하고 있지만, 한때 그에게서 단전호흡법 등을 배운 인사들이 적지 않았다.
양익스님의 초능력은 그러나 엄밀히 따져 선무도(禪武道)라는 무술기공 쪽이다. 그에게서 수행법을 전수한 경주시 양북면 함월산 자락의 骨屈寺주지 薛寂雲스님은 양익이 고려시대까지 전수되다가 중국선종의 유입으로 맥이 끊긴 즉신성불(卽身成佛, 현재의 몸이 그대로 부처가 됨)의 밀교(密敎) 수행을 되살려 집대성했다고 평가했다.
1989년 4월 중국에서 발행되는 전문잡지인 `중화기공'의 만윤룡,계웅신두 기자는 반신반의하면서 항주 식물원의 잔디밭으로 기사 취재를 하러 나갔다.
그 자리에는 당시 38세의 기공사인 포웅도가 일단의 인파에 둘러싸인 채발공을 준비하고 있었다.사람들은 순간적으로 숨을 멈추며 포웅도를 주시했다.
포웅도는 잔디밭위에 결가부좌로 다리를 꼬아앉은채 정신을 집중하여 `기'를 단전에 모았다.그리고는 두 팔을 서서히 펼쳐서 마치 새가 날갯짓 하는듯한 동작을 2분가량 계속했다.주변의 관중들은 무엇 엔가에 홀린듯 아무 소리도 내지 못한 채 기적의 출현을 기대했다.
(과연 저 사람이 공중으로 날아오를 것인가? 어쩌면 단순한 허풍이 아닐까?)모든 사람들은 내심 이렇게 조바심하고 있었다.
'하앗!'
포웅도의 입에서 가벼운 기합 소리가 터져나왔다.순간 그의 몸은 마치 풍선처럼 풀밭 위로부터 서서히 떠오르기 시작했다.
'와아!'
구경꾼들의 입에서 일제히 터져나온 탄성이었다.수직으로 떠오른 포웅도의 몸은 이내 지면으로부터 40센티미터 가량의 높이에 도달하더니 한동안 호버링하는 헬리콥터처럼 제자리에 그대로 떠 있었다.다리는 여전히 가부좌의 상태였고 양손은 날개처럼 펼쳐진 그대로였다.
자세를 그렇게 유지한 채로 포웅도는 앞을 향해 수십 센티미터 이동해 갔다.그는 같은 형태의 수평비행을 네차례나 거듭한 다음 관중들 쪽을 향해 약2미터 가량 날아왔다.비행을 마친 포웅도는 원래의 위치에 살며시 착륙한 다음 가부좌를 풀고는 천천히 일어났다.육신 비행의 비행사에서 보통의 인간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지금 행한 이런 종류의 경공을 `반퇴등공'이라고 합니다'
그는 씨익 웃으며 멋적은듯 말했다.포웅도는 당시 절강대학 기공과에 연구원으로 초빙되어 강의와 교습을 도맡고 있었다.그가 오늘날 이처럼 `나는 사나이'가 된 것은 포웅도의 나이 23세이던 1974년 우연히 떠돌이 법사 스님 한분을 만나서 배우게 되었다고 한다.
많은 기공계 인사들이 그에게 시범을 요청했다.그러나 포웅도는 필요 이상의 잦은 시범을 단호히 사절했다. 최초의 '반퇴등공'에 성공한 이래 도합 네 차례의 공개 시범만이 그가 허용한 전부였다. 가부좌를 틀고 앉은 자세에서 그가 공중에 떠오른 가장 높은 기록은 지상 1m였다.
'물리학에서 아직도 풀리지 않는 의문중 하나는 중력(重力)이 어떻게 해 생겨나는가?' 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중력을 제어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이는 연구결과들이 잇따라 보고됐다.
1994년 10월 한국정신과학학회 1차학술대회 때 한국표준과학연구원 신소재 특성평가센터의 方建雄박사는 낸 '과학기술 패러다임의 전환' 이라는 논문에서는 공중부양의 원리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다루고 있다.
또한 영국의 존 서얼 교수는 회전자석을 이용해 원반형 물체를 공중에 띄우기도 하였고, 캐나다의 허치슨은 고전압 고주파전자장으로 똑같은 실험을 성공하기도 하였다.
허치슨의 연구내용은 미국의 맥도널 더글라스 항공사에 제출되었는데, 이연구의 내용은 중력보다 센 힘을 이용해 중력을 극복한다는 대결의 차원이 아니라, 중력을 제어하여 중력을 약화시키거나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이었다.
중력은 눈에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것은 모든 사람의 발을 족쇄처럼 묶어 지구쪽으로 끌어당기고 있다. 하지만 현대 정신과학은 더이상 공중부양의 존재를 더이상 신비의 장막 뒤에 가둬두지 않을 것이다.
인간이 자연법칙으로써 인간의 행동에 제약을 미치는 중력의 속박으로부터 해방되어 인체내에 본래부터 잠재되어 있는 능력을 발휘하는 공중부양의 원리가 해명되어, 인류가 중력제어에 성공한다면 바퀴가 발명된 이래 가장 혁명적인 수송수단의 변화가 일어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