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은 만남의 장소다. 가족, 친구, 애인, 손님 등 수많은 사람들이 공항에서 만난다. 그 중 나를 곤혹스럽게 하는 만남도 있다. 바로 영가와의 재회다. 뉴욕 케네디 공항에 도착해 게이트 문이 열리는 순간 반가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얼마 전 암으로 투병하다 눈을 감은 59세의 K씨였다. '어떻게 알고 왔습니까?' '귀신같이 알았죠.' 영가의 농담에 나는 큰 소리로 웃었다. 나를 마중하러 나온 뉴저지 후암정사의 김 거사는 내가 누구와 대화를 나누는지 몰라 당황하는 눈치였다. 생전에 K씨는 모 항공사의 뉴욕지사장으로 근무하면서 내가 뉴욕에 도착하면 직접 게이트까지 나와 그동안의 안부를 묻곤 했다. 나와 동갑인 그는 편한 친구 같았다. 그가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하루 빨리 한국에 나와 본격적인 항암치료를 받으라는 뜻에서 한 종합병원을 예약해 두었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말기라면서 편하게 여생을 정리하길 원했고, 채 육십을 넘기지 못한 59세의 나이로 눈을 감았다. '좌석은 마음에 드셨습니까?' 나는 웃으며 '어쩐지 이상하다 했습니다.'라고 맞받아쳤다. 뉴욕 행 비행기에 탄지 얼마 안 돼 스튜어디스가 조용히 오더니 좌석을 업그레이드시켜 주겠다고 했다. 뜻밖의 행운에 나는 기뻐하며 좌석을 옮겼는데, 그것이 K씨 영가의 배려였다니. 깔끔하게 정복을 입고 나온 K씨 영가는 '제 아내가 법사님을 많이 보고싶어 합니다. 한번 전화 주세요.'라고 말하곤 반듯하게 인사한 뒤 공항으로 들어갔다. 정말 귀신에 홀린 느낌이었다. K씨 영가와 헤어지고 오랜만에 차창 너머 미국 풍경에 젖어들 때 즈음, 그동안 나를 마중 나 온 사람들을 회상했다. 91년 모 신문사 초청으로 미국에 처음 왔을 때는 신문사 관계자가 픽업을 해주었고, 그 후로는 뉴저지 후암정사와 인연 있는 분들이 공항에 나왔다. K씨처럼 영가가 된 뒤에도 마중을 나오는 분도 있다. 공항 뿐 아니다. 뉴저지 후암정사 문을 열면 어김없이 나를 반겨주는 영가들이 있다. 그 중 고스톱의 여왕, 빨간 스포츠카의 주인공 H씨 영가는 언제 만나도 반갑다. 그녀는 내가 뉴저지에서 한국으로 떠날 때 손수 짐을 싸준 열혈 팬이었다. 그녀는 대단한 스피드광이었다. 다른 사람이 같이 타면 속도를 잘 지켰지만 혼자 타면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빨리 달렸다. 그 바람에 플로리다 한 도로에서 애완견과 함께 교통사고로 숨졌지만 영가가 된 뒤에도 내가 뉴저지 후암정사에 도착하면 어김없이 나를 맞아준다. '제 차로 모셨어야 하는데, 안타깝네요.' K씨 영가의 부탁대로 부인에게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다. '제가 법사님을 뵙고 싶어 한 걸 어떻게 아셨어요?' 부인은 남편의 죽음 전, 후의 일들에 대해 조용히 전했다. 그제야 K씨의 죽음이 현실로 다가왔다. 나는 차마 공항에서 K씨를 만났으며, 덕분에 좌석도 업그레이드 됐다고 말할 수 없었다. 아이들은 잘 지내냐는 안부 인사와 더불어 영계에서 잘 있을 거라는 위로의 말만 전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벌써 15년, 나를 마중 나왔던 분들이 속속 영계로 떠나고 있다. 죽은 사람의 마음은 한결같지만,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은 언제 변할지 모르는 일. 영가가 된 뒤에도 그들과 계속 만날 수 있음에 새삼 내 능력이 고마웠다. <차길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