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고민인 이유. 그것은 사랑의 대상이 내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도 나를 모르는데, 속을 알 수 없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기는 또 얼마나 어려운가. 그러니 누구나 사랑 때문에 숱한 밤을 뜬눈으로 지새우기 마련이다. 사랑에 상처받는 것은 인간 뿐만이 아니다. 영가도 사랑 때문에 괴로워한다. 살아서도 사랑, 죽어서도 사랑, 사랑은 생사를 불문하고 영원한 화두일수밖에 없다. 물론 사랑의 대상은 사연마다 다르다. 때론 애인일수도 자식일수도 재산일수도 있다. 그러나 이미 망자가 된 뒤에도 사랑을 떨쳐버리지 못한다면 이는 엄연한 집착이다. 집착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른 대상에게서 찾으려할 때 흔히 나타난다. 자신에게 불만이 많고 자신감이 없을 때 다른 대상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회복하려고 한다. 남을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는데 성공하면 막연한 행복감을 느끼는데, 이때 느끼는 행복에 중독되면 문제는 심각해진다. 술, 도박, 마약 등과 다를 게 없다. 그 대상과 자주 접촉하려고 하고, 애정을 확인받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하며, 더 나아가 24시간 자기 곁에 두려고 한다. 그렇지 못하면 극도의 불안감과 함께 히스테리 증상을 보이고 심할 경우 상대방을 의심하기 시작한다. 정신병적 징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이 죄인가요?' 얼마 전 나이 70이 넘은 노인이 어머니의 구명시식을 올리고 싶다고 찾아왔다. 그는 어머니가 아흔에 돌아가실 때까지 극진히 모신 것으로 유명했다. 그런데 구명시식에는 부인 없이 혼자 왔다. 효자로 유명한 분이 왜 혼자 왔을까 궁금했는데. 구명시식을 하자 의문은 쉽게 풀렸다. 둘의 사랑은 어머니와 자식의 정을 넘어설 정도로 애틋했다. 어머니 영가는 일흔의 아들에게 '부인은 잘 하고 있느냐'면서 마치 아들을 갓 장가보낸 어머니처럼 챙겼다. 며느리가 얼마나 고생했을지 눈에 선했다. 서로에게 집착하는 어머니와 아들에게 조용히 말했다. '이러면 좋은 곳으로 천도될 수 없습니다. 사랑도 과하면 병입니다. 아들 걱정은 말고 떠나십시오.' 그래도 어머니 영가는 발길을 쉽게 돌리지 못했다. 어떤 형태든 사랑이 지나친 집착으로 변질되면 자신 뿐 아니라 남에게도 큰 상처를 준다. 누누이 말하지만 사랑은 사람의 체온과 같은 36.5도를 유지해야 한다. 너무 뜨거워도 너무 차가워도 안 된다. 뜨거운 사랑은 쉽게 식는다. 이는 불변의 진리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뜨겁게 사랑할수록 불필요한 희생을 감행하는데, 이런 희생은 반드시 원망을 부르게 되어 있다. '내가 너를 얼마나 사랑했는데!'라고 말하는 사람치고 상대를 미워하지 않는 사람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차가우면 그 무심함에 돌아서버린다. 상대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표현하지 않는 사랑'은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늘 체온을 유지하는 은근한 사랑이야말로 진짜 하기 힘든 사랑이다. 사랑은 몰입하되 반복되지 말아야 하며, 물처럼 흘러야 한다. 사랑은 자신의 영혼을 성숙시키기 위한 과정이요, 미션이다. 사랑이 없다면, 용서와 인내, 아픔을 극복하는 용기는 어디서 배운단 말인가. 정말 사랑하고 싶다면 자신이 사랑하는 대상에 집착하지 말고 사랑, 그 자체를 즐겨라. 그것이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다. (차길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