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내년 해방 70년, 이래도
되나?(1)
역사를 존중하는 목적은 그 민족의 활로를 개척하는데 있다. 진정한 활로를 개척하려면 자존적
위조(自尊的 僞造)와 자비적 위조(自卑的僞造)를 모두 버리고 사실을 사실대로 다루어야 한다.
지금 한국의 역사는 뒤집힌 역사다. 때문에 바로 세워야 한다. 고대 유대는 위대한 역사의 발견을 통해 갱생했다.
덴마크 갱생운동의 선구자 ‘그룬드 비’도 덴마크의 역사를 새로 찾아서 그 역사
교육을 토대로 갱생운동을 벌여 성공했다. 역사는 그 국민의 영광과 치욕을 적는다. 영광은 국민의 자존심과
애국심을 북돋우고 치욕은 국민의 부끄러움(悲憤心)을 일으킨다.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경로(經路)에는 실패와 성공이 있다. 이 같은 경로를 알면
실패의 길에서 헤메지 않고 성공의 길을 향하게 된다. 성공은 다시 활로를 개척하는 것이다.
1945년 9월 12일 조선총독부가 폐지되자 마지막 총독인 아베노부유키(安倍信行)는 일본으로
떠나면서 마지막 남긴 연설을 통해 “일본은 졌다. 그러나 조선이 이긴 것이 아니다. 장담하건대, 조선이 제정신을
차리고 찬란하고 위대했던 옛 조선의 영광을 찾으려면 100년이란 세월이 훨씬 더 걸릴 것이다. 우리 일본이 조선국민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사관을 심어 놓았다. 결국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다. 보라. 실로 조선은 위대했고 찬란했지만 현재의 조선은 결국
일본의 식민교육의 노예로 전락했다. 그리고 나 아베 노부유키(安倍信行)는 다시 돌아 올 것이다”고 했다. 내년이면 일제에 의해 짓밟힌 우리가
해방 70년을 맞는다. 그러나 우리는 민족의 활로를 제대로 찾지 못하고 있다. 설사 민족의 활로를 개척한다고 부르짖는다고 해도 구호로 끝날
뿐이다. 이는 역사를 가벼이보고(輕視) 역사를 찾지 못한데서 비롯한 것이다. 또한 역사를 가르친다고 하면서도 일제식민사관에 의한 거짓꾸민
역사를지금도 가르치고 있다. 최근 한국사를 중시한다며 많은 단체가 있고 학술대회를 여는데, 거기에 동원된 발표자는 중국 동북공정의
앞잡이가 적지 않고 내용도 일본이 거짓꾸민 역사를 앵무새같이 읊는 것을 본다. 그런 사람들만
을 골라서 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런 사람을 선정하는 무지한 사람들이 더 큰 문제다.
중국은 우리 상고사와 고대사를 자기들 것이라 하고, 일본은 369년 가야부여족이 기마병을 이끌고 왜를 정벌한
이래 700년까지 한국이 정치·문화적으로 일본을 지배했다는 사실을 감춰버리고 한일관계의 역사를 뒤집었다. 일본은 ‘가야에서 온 부여족이 왜를
정복한 게 아니라 왜가 가야를 정복했다’고 날조했다. 에가미나미오(江上波夫)같은 일본학자는 가야기마민족(伽倻騎馬民族)이 일본을 정복한
기마민족설(騎馬民族說)을 솔직히 말하고 있다. 그리고 단군세기(檀君世紀)와
번한세가(番韓世家)에는 왜인(倭人)의 뿌리라든가, 일본 고대사의 이에 대한 최대 관심사가 모두 적혀 있다.
‘환단고기(桓檀古記)’는 이런 사실을 밝히는데 열쇠가 되고 있으며, 이를 연구하는 학자가 일본에 더 많은 것도 우리가 각성해야 할 점이다. 이번
글은 중국과 일본이 우리 문물제도를 배워서 발전한 것뿐만 아니라 나라 국호까지 훔친 것에 대해 두 번에 걸쳐서 다뤄 보고자 한다.
중국 역사학자
서량지(徐亮之) 교수 “고대 한국이 이룩한 문명·문물·문화에 감사”
중국의 정사(正史), 중국경전(中國經傳)에는 한민족(韓民族)의 특징이 인(仁)을 사랑한다는 기록이 있다. 또
중국문화의 개척자 순(舜), 중국문화의 대종사(大宗師) 공자(孔子), 중국병가(兵家)의 대종사(大宗師) 강태공(姜太公) 등 역시 한국을 군자의
나라(君子國)이며 큰나라(大國) 또는 옛나라(舊國)라고 찬양했다. 또한 예맥(銳麥=濊貊)이 장기간 중국을 정벌한 것을 분명히 적고 고대에
화살(弓矢)만 수입한 것이 아니라 문화까지 수입해야 한다고 결론을 내린 내용도 있다. 이런 중국은 오늘날 대중화주의(大中華主義)를 선전하면서
다른 민족을 깎아내리고 있다. 하지만 정사(正史), 경전(經傳)에 명기(明記)까지 해가며 찬양하고 결론 내린 사실을 위조라고 할 수 없다.
한국의 역사와 문화를 지우는 중국은 여러 문헌을 보면 문화사상과 물질문명 양쪽에 걸쳐 한국에서 배웠다.
북사(北史 卷 九十四 末尾)에 보면 ‘동이(東夷)에게서 수입 할 것은 화살(弓矢)뿐만 아니라 문화도 수입한다’고 적혀 있다. 중국의 역사학자
서량지(徐亮之) 교수는 한자를 비롯해 고대한국의 이룩한 문명과 문화에 대해 우리에게 감사하다고 말을 할 정도다. 주역(周易 卷之 二十四
說卦傳)에 ‘제출호진....만물출호진 진동방야(帝出乎震....萬物出乎震 震東方也)’라고 했다. 즉, 중국문화의 핵심(中核)인
황제제도(皇帝制度)가 동방한국에서 창조했다며 만 가지 문물제도(文物制度)가 모두 동방한국에서 창조했다고 한 것이다. 한국의 역사와 문물제도를
갖고 중국을 앞세워 온 중국이지만 문헌상으로는 문화사상(文化思想), 물질문명(物質文明) 등과 관련해 ‘중국은 한국을 배웠다’고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고대 유대민족이 위대한 자기역사를 찾지 못했을 때 민족의식이 없어져 파쟁(派爭), 분열(分裂), 지리(支離),
궤멸(潰滅)에 빠져 야만민족으로 지내다가 바빌로니아 보수(保囚=포로)생활을 할 때에 위대한 유대역사를 찾아낸 후부터 민족의식을 회복하고
문화민족으로 발전했다. 이처럼 문화사상(文化思想)은 그 민족의 생명이다. 이 생명을 발견·부흥하는 중흥운동(中興運動)을 벌이는 것이 진정 비탄할
현실에서 재기(再起)해 놀라운 역사를 다시 창조하는 방향이다. 지난날 한국서생(書生)들은 원효사상(元曉思想), 퇴계사상(退溪思想),
실학사상(實學思想) 따위 외래사상(外來思想), 사대사상(事大思想)에 목매고 있었다. 이는 무지의 소치다.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화랑도의
기반은 신선사상(神仙思想)이요, 화랑도의 본질은 ‘인간사상(人間思想)’이라는 기록이 있다. 고려사에 보면 화랑도를 온 국민에게
의무교육(義務敎育)으로 실시했다. 천민사상(天民思想), 중물사상(重物思想)도 모두 우리의 사상이다. 이 3대사상이 한민족(韓民族)의 고유한
문화사상으로 놀라운 역사를 창조한 원동력이 됐다.
중국은 본래
한민족의 나라, 중국(中國) 국호도 우리 것을 훔친 것이다
또한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에 단군이 신인(神人)이요, 단군시대에 ‘홍익인간’을 제창했다고
적고 있다. 그리고 단군시대에 화랑사상이 생겼다고 적었다. 단군시대에 고유한 문화사상이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조선조 시대에 최수운(崔水雲)이 유난히 신선(神仙)을 자주 말하고
인본주의를 제창했다. 이것은 화랑도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조선시대에 고유한 문화사상의 여류(餘流)가 잠재적으로
흐르고 있는 것을 부정할 수 있겠는가. 화랑도의 화(花)는 고대에 싹이 트고 삼국시대에 활짝 피었으며 고려시대에 활짝피었다가 조선시대에는
시들었다. 한국의 고유한
문화사상은 고대부터 근세 조선조까지 계승·성쇠했다.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不絶), 이어진 것은 그 사상에 깊은
철리(哲理)가 있고 튼튼한 생명력이 있음을 입증한다.
그래서 최초에 문화민족으로 발전하고 인류사상 처음으로 강대족(强大族)으로 등장한 우리가
세계의 중심지라고 자처하며 중국(中國)으로 불렀다. 삼국유사(三國遺事 卷二 駕洛國記)에 수로왕(首露王)이
황천(皇天)의 명(命)을 받아 임금이 됐다고 하면서 가락국을 중국(中國)이라고 부른 것을 살펴보아야 한다. 여기서 황천(皇天)의 명(命)과
결부된 중국(中國)은 세계의 중심지를 가리킨 것이다. 우리가 중국(中國)이고 지금의 중국(中國)은 우리의 국명을 훔친(盜用)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우리를 군자의 나라(君子國)라고 예찬하고 큰나라(大國), 옛나라(舊國)라고 경외(敬畏)했다.
서구의 선진국들,
민족 고유의 철학·사상 무장 통해 재기·번영
서구의 선진국들은 철학과 사상을 잃지 않았을 때 일어날 수 있었다. 우리도 오랜 역사와 사상과 철학이 있는
자랑스러운 민족이다. 흉노와 몽골은 무력으로 중국대륙뿐만 아니라 유럽까지 침략하고, 거란(契丹)과 여진(女眞)은 무력으로 중원을 제패했다.
그러나 철학과 사상이 없음으로 인해 민족의 나갈 방향을 알지 못하고 다른 민족의 사상과 철학을 받들다가 다른 민족에 동화돼 멸망하고 말았다.
중국과 이스라엘은 다른 민족의 무력에 의해 패망했지만 철학사상을 간직해 그들의 나아갈 방향을 알고 자주자존의
정신이 강열해 불굴의 투쟁을 전개, 오히려 그 철학사상으로서 정복민족을 지도·흡수함으로서 재기갱신(再起更新)했다. 그러나 일본은 소박한
사념(思念)이 있고 체계화 된 사상이 없었다. 이에 불교, 유교 등 외래사상을 신앙했다. 그런데 해중원도(海中遠島)에 동 떨어져서 다른 민족의
압박을 받지 않고 성장해 자존, 오만한 습성이 육성되어 외래사상을 신앙하면서 신도(神道)라는 자연종교를 더 존중했다. 즉, 자주자존의 민족의식을
토대로 외래사상을 신앙해 근대화에 성공하고 오늘의 일본으로 발돋음 했다. 그러나 고유한 철학사상이 없어 오늘의 정신적 병폐를 일으키고 지도이념에
고민하고 있다. 요컨대 민족의 흥망을 결정하는 것은 무력이 아니고 역사와 전통, 철학사상이다. 일본의 미래가 보이는 이유다.
<최태영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인간 단군을 찾아서’ ‘한국고대사를 생각 한다’, 최인
‘한국학강의’, 존 카터 코벨 지음 김유경 편역 ‘부여기마민족과 왜(倭)’, 임승국 번역 주해 ‘환단고기’, 김부식 ‘삼국사기’, 서희건 편저
‘잃어버린 역사를 찾아서1’, 박종원 ‘한국인, 자부심 문화열차’, 한창건 ‘환국·배달·조선사신론’, 임길채 ‘일본 고대국가의 형성과 칠지도의
비밀 상’, 강동민 ‘불쌍한 대한민국’, 한정호 ‘대조선민족사’, 박찬희 ‘지구촌 인류를 구제할 법칙’, 송부웅 ‘한민족의 대륙역사’
‘삼성(三聖)의 역사’, 한창건 ‘한국고대사 발굴’, 우창수 ‘아사달(상, 하)’, 日本國書 刊行會 ‘神皇紀’, 李進熙 ‘好太王碑の謎’, 張曉
‘韓國の民族と その步み’, 林承國 ‘韓國正史’, 酒井忠夫·高橋幸八郞 編 ‘詳解.世界史史料集’, 洪以燮 ‘朝鮮民族史觀と日本帝國主義の植民政策’,
吉川幸次郞 ‘漢の武帝’, 貝塚茂樹 ‘中國の歷史’, 秋山謙藏 ‘日本の歷史’, 津田秀夫 ‘日本史’, 三省堂 編修所編·永原慶二 監修 ‘中學社會歷史’,
せいいくど ‘新. 漢民族から大和民族へ’, 坂本泰良 ‘明治維新から現代へ’ 山邊健太郞 ‘日韓倂合小史’ 외 다수 서책을 참조하고
인용했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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