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소 56.1%, 탄소 28%, 수소 9.3%, 질소 2%, 칼슘 1.5%…. 사람의 몸을 화학적으로 나누면 이런 숫자들이 나온다. 인체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산소는 두 얼굴의 야누스다. 생존엔 필수적이지만, 치명적인 독성도 있기 때문이다. 특히 활성 산소는 세포와 조직을 파괴하는 노화 현상의 주범이다. 비타민C, 비타민E 등엔 이런 산소를 해롭지 않게 만드는 물질이 들어 있다. “하루 사과 한 알이면 의사가 필요없다”는 속담은 화학적으로 옳다.
우리는 화학의 세계에 살고 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고서적이나 고미술품의 보존 활동도 현대 화학의 노하우 없이는 불가능하다. 중국 진시황의 무덤에서 나온 테라코타 병사들은 발굴 직후 다채롭던 색상을 잃어버렸다. 상대습도가 84% 이하로 떨어지자, 2200년 동안 축축한 흙 아래 있던 조각상들의 래커 칠이 갈라지고 벗겨져나간 것이다. 복원기술자들은 래커가 물에도 유기용매에도 녹지 않는다는 사실에 절망했다. 그러나 독일 연구진은 수용성인 이 조각상들에 하이드록시에틸메타크릴레이트(HEMA)를 바르고 전자빔(β선)을 쪼여 래커를 안정화시키는 방법을 개발했다. 해외여행을 한 뒤 시차에 빨리 적응해야 할 때 우리는 멜라토닌 호르몬을 복용한다. 주로 어두울 때 뇌에서 만들어지는 멜라토닌 호르몬은 혈액을 따라 퍼지며 몸 전체에 현재 시각을 알려준다. 봄에 쉽게 피로를 느끼는 것도, 낮은 점점 길어지는데 멜라토닌 생성은 겨울에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멜라토닌 농도는 평생 1~3세에 가장 높고 나이가 들수록 줄어든다. 화장(化粧)도 화학이 번창한 분야다. 고대 이집트의 노프레테테 여왕은 안티몬을 갈아 눈에 검게 칠했고, 로마의 미인들은 벨라도나 즙을 떨어뜨려 눈을 맑고 깊어보이게 했다. 현대의 매니큐어에는 보는 위치에 따라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특수 염료가 들어 있다. 이 염료의 핵은 지름이 약 20마이크로미터인 미세한 산화알루미늄과 산화철 판으로 이뤄진다. 이 원판이 들어오는 빛을 반사한다. 독일의 과학저널리스트와 실용화학자들이 쓴 이 책은 하루 24시간 동안 일어나는 화학적 사건들을 시간대별로 추적한다. 잠에서 깨어나 만나는 음식, 옷, 화장품부터 자동차, 에너지, 알코올, 의약품 등 현대 문명의 모든 산물들이 화학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돼 있다는 걸 보여준다. 순수한 산소로 가열하면 이산화탄소로 사라져 버리는 다이아몬드, 산(酸)에 의한 종이 파손을 두려워한 도서관 사서들, 60개의 탄소 원자 덩어리와 축구공의 구조, 겨울 혹한기가 길수록 더 활짝 꽃을 피우는 식물들 등 흥미로운 소재로 속을 채웠다. ‘화학의 눈’을 길러주는 교양서다. 원제는 ‘화학 24시’(Chemie rund um die Uhr). [박돈규 기자 coeu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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