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 사람의 개인적인 생각만 했지 도형을 올리지도 않고 그에 대한 설명도 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문득 드는 것이 이 사람의 생각이 모자랐습니다.
죄송합니다.
도형에 대한 설명을 따로 올리니 이를 참조 하셔서 문자배치도로 나타나는 우주이야기를 살펴보시기를 바랍니다.
인터넷을 통해 한자식기록이 아닌 농은 천부경 또는 갑골문 천부경을 찾아보면 문자와 숫자가 가로 아홉 줄 세로 아홉 줄로 배치되어 있음이 나타날 것입니다.
따라서 배치된 글자와 숫자가 들어갈 수 있도록 81칸으로 네모난 도형을 그리면 백(100) 개의 꼭지점과 81칸의 도형이 나타날 것입니다.
이는 하늘을 의미하는 숨겨진 도형입니다.
그리고 우주이야기는 가운데 중심에 배치된 숫자 육( )을 중심으로 대각선을 그려보면 무( )자와 중( )자와 일(一)과 일(一)자가 나타날 것입니다.
이는 우주창조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숫자 육( )을 중심으로 수직수평선을 그려보면 삼(三)과 구( )와 일(一)과 일(一)나타날 것입니다.
이는 창조된 지금의 우주가 변화하고 있는 원리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문자풀이는 현재 삼분의 이정도 밖에 해석을 못해 아직은 무어라 말할 단계가 아니네요.
아쉽더라도 도형과 문자배치를 찬찬히 살펴보며 이 사람이 올린 글을 읽어보면 한자식 의미와는 다른 은문천부경의 문자적인 의미들이 떠오를 것이라 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라 노동일을 병행해가며 글을 쓰려니 진도가 잘 나가지 않네요.
이해를 부탁드립니다.
끝으로 현대인들이 가장 크게 착각하고 있는 부분이 고대인들은 미개하다는 선입견인데 기술력에 차이가 있을 뿐 일만 년 전의 사람이나 지금의 사람이나 지적 사고 능력에는 큰 차이가 없다는 것입니다.
칠천 년 전 슈메르라는 도시국가를 만들어낸 슈메르인들에 대한 정보를 접하시면 이 말을 이해하시리라 봅니다.
이제는 구약성서와 관련된 이야기를 좀 할까 하는데 태초는 하늘을 의미한다고 앞에서 설명 했으니 되었고 칠성령과 666이라는 숫자적 개념이 나오게 되는 근본원리에 대해 한국학과 연계시켜 논리를 전개해 볼까 한다.
태초를 의미하는 대일의 하느님과 하늘은 무엇이든지 다 될 수 있는 확률론적 상태로서 그 자체가 신과 세계의 구분이 없는 완전함이라고 말했는데 칠성령과 666의 숫자적 의미는 하늘이 땅으로 변화해 나타난 땅과 관련되어 있는 숫자적 개념이라 본다.
즉 대일신과 하늘은 무어라 말하기 곤란한 기독교식으로 영이라고 해야 할지 동양식으로 리기(理氣)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나 우주에 나타날 수 있는 땅으로 존재하는 모든 가능태가 다 함축된 신과 세계가 하나인 성스런 무엇으로 이러한 확률론적 상태의 하늘이 결정론적 상태인 땅으로 변화되어 나타나게 되면 대일신과 세계가 갈라져 나타나게 된다.
즉 대일신이 변화하여 땅의 중심자리인 삼신으로 나타나게 되고 하늘이 변화하여 삼신을 중심으로 한 물질적 세계와 물질의 사회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므로 태초라는 하늘을 근원으로 땅이 들어날 때 대일의 하느님은 말씀자리를 의미하는 일신의 자리로 땅의 중앙에 자리하게 되고 하늘의 기운은 여섯 갈래로 모여들며 일신자리를 둘러싸고 둥그런 입체적 세계를 만들어 내게 된다.
그러므로 칠성령의 숫자적 의미는 대일의 하느님과 하늘이 변화해 생겨난 일신의 자리와 일신의 자리를 중심으로 하늘의 기운이 여섯 갈래의 입체적 양태로 모여들며 땅의 세계를 만들어 내게 됨을 의미하는 숫자적 개념이라 본다.
따라서 칠성령의 의미는 대일신(大一神)의 변화인, 리(理)를 의미하는 일신(一神)자리와 땅의 세계를 만들어 낸 기(氣)를 의미하는 여섯 갈래의 하늘기운을 나타낸다고 본다.
그러므로 666은 말씀 자리를 의미하는 리(理)라는 일신이 떠나시면 천지인(天地人)을 의미하는 기(氣)의세계인 삼계는 대혼란에 빠진다는 것을, 삼신과 삼계와 관련지어 666으로 나타내었다고 본다.
따라서 666은 천지인(天地人)이라는 땅의 질서를 만들어 내고 있는 말씀을 의미하는 일신(一神)의 자리가 비어 있음을 뜻하는 것으로 인간이 하늘로 돌아 갈 수 있는 통로인 말씀자리인 일신점(·)을 잃어버리면 안된 다는 것을 가르치기 위한 교훈적 의미로 고대 서양에서 쓴 숫자적 표현이라 본다.
쉽게 말해 태양이 사라지고 중력이 사라진다면 태양계라는 천계(天界)와 지구나 달 같은 지계(地界)는 질서는커녕 형태조차 유지하기 어렵게 되는 것으로 인간 또한 이를 깊이 깨달아 올바른 지도자를 인간계의 천일(天一)로 세워 조화로운 인간세를 만들어 내어야 하며 개인적으로는 올바른 지일(地一)을 세워 교화가 몸에 밴 참 인간으로 거듭나야 함을 깨우쳐 주고자 만들어 낸 고대 서양인들의 숫자적 개념이 칠성령과 666이라 본다.
오늘날 서양문명이 자신의 뿌리에 대해 제대로 분석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서양학 또한 동양학과 마찬가지로 심한 학문적 뒤틀림이 있었다는 것으로 고대 한국학을 통해 철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한 시점이 지금이 아닌가 본다.
따라서 동서양학에 나타나는 여러 개념들은 말만 다를 뿐 그 개념적 근본은 결국 하나의 원리로 귀결 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천일(天一)은 효와 충과 관련되어 동양에서는 나타나고 서양에서는 주님의 말씀으로 나타난다 보며 지일(地一)은 성실함과 근면함과 인내함을 의미하는 수신과 관련되어 동서양에 나타난다 보기에 동서양학의 본질은 다르지 않다고 본다.
고대 한국인들은 하늘과 땅의 개념을 매우 포괄적으로 썼다고 보는데 일신외각(△)을 의미하는, 영과 관련된 천일신(天一神)과 천일신이 만들어낸 천계(天界)와 일신내각(△)을 의미하는, 혼과 관련된 지일신(地一神)과 지일신이 만들어낸 지계(地界)는 인간의 시각에서는 조금의 오차도 나타나지 않는, 대일(大一)의 하느님과 하늘의 의지를 온전히 보여주는 완벽한 상태로 이해했다고 보나 생명계는 그와 달리 늘 오차가 나타나는 불완전한 상태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 중 가장 심한 오차가 나타나는 곳을 인간계로 보았다고 본다.
따라서 인간세는 천지(天地)와 달리 사랑과 미움, 화합과 투쟁, 성실함과 나태함, 올바름과 타락함 등등이 마구 뒤섞여 나타나는 혼돈의 세계로 인식하고 있었다고 보며 이러한 혼돈의 인간세에 대일(大一)의 하느님을 대신해 천지(天地)의 질서를 온전히 보여주는 천일신(天一神)과 지일신(地一神)과 같은 온전함으로 거듭난 누군가가 나타나 인간세의 혼돈을 바로잡는 길을 열어주게 되면 그를 하늘과 통한 인간세에 나타난 인일신(人一神)으로 이해했다고 본다.
<고대 한국학 개열의 경전들에 이러한 개념들이 잘 나타나고 있다고 보기에 찬찬히 검토해 주기를 부탁드린다.>
요즘말로는 그리스도나 부처와 같은 성자나 선각자로 이해하면 되리라 보는데 고대 한국인들은 황제나 파라오 같은 왕(王)의 개념으로 이해했다고 본다.
그러나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 천지일신(天地一神)을 대리하는 왕(王)의 개념이 뒤틀려지며 권력자들의 횡포가 나타나 인간세의 고통과 어지러움이 더욱 심화되었다고 보는데 그리스도나 부처의 개념이 왕(王)이나 대통령과 같은 지도자를 의미하는 현실정치와 연결되지 않는 오늘날의 종교적 양태들이 만들어지게 된 근본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내가 몸담고 살아가고 있는 현실을 떠나 무슨 놈의 천국이 필요하고 극락이 필요하겠는가?
이상과 현실은 동전의 양면 같은 것으로서 고대 한국인들은 이를 나누지 않았다고 본다.
왕(王)이나 대통령이 곧 인간세의 혼돈을 바로잡는 그리스도이고 부처라고 이해하고 있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나 부처가 왕(王)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하면 언제든 그 자리를 박탈할 수 있는 정치적 시스템이 고대 한국인들에게 있었다고 보는데 이는 한단고기 고대사에 잘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다시 말해 고대 한국사에 나타나는 왕들은 역사시대에 나타난 왕들의 특징인 총칼로 구성원들을 위협하며 강제로 군림했던 왕이 아니라 구성원들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자율성에 기초한 왕들로서 한단고기 고대사에 나타나는 한인, 한웅, 단군으로 대표되는 역대 왕들이 이에 속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들을 보좌하는 사람들이 곧 천사의 개념과 관련되어 있으리라 보는데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하느님의 군대와 같은 말이 만들어 지게 된 배경이 되었으리라 본다.
<천지화랑이나 후대에 나타난 조의, 수사, 화랑, 사무라이 같은 무사 집단과 연계되리라 보는데 군사집단의 성격보다는 일신과 관계된 종교적 성격이 더 짙은 집단으로 본다.>
그러므로 구약성서에 나타나는 표현들을 단순한 신화적 형태로만 볼 것이 아니라 고대 신화의 시대에 동서문명 속에 실제적으로 일어난 사건을 기록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고의 전환을 한번쯤 시도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나는 생각한다.
천지(地界)가 결합해 대일신(大一神)과 하늘을 대신해 하늘을 본뜬 생태계와, 천계(天界)를 본뜬 자연계와, 지계(地界)를 본뜬 생명을 만들어내니 대일신(大一神)과 하늘의 무궁함은 생태계를 통해 들어나며, 천일신(天一神)과 천계(天界)의 조화로움은 자연계를 통해 들어나며, 지일신(地一神)과 지계(地界)의 교화로움은 생명을 통해 들어난다.
인일신(人一神)은 곧 이러한 대일신(大一神)과 하늘이 천계(天界)와 지계(地界)를 통해 보여주는 조화와 교화를 크게 깨달은 자로 부처와 성자에 해당하니 한인님은 천일신(天一神)의 표상으로 인간세의 조화를 널리 보여주었으며 한웅님은 지일신(地一神)의 표상으로 인간세의 교화를 널리 보여주었으니 이 시절은 인간세의 낙원이 지상위에 현실화 되었던 시기로서 전 세계 모든 민족들의 신화에 나타나는 지상낙원의 그리움을 담은 이야기는 모두 여기에 근거하리라 본다.
세월이 흐르며 인간들이 하느님의 조화와 교화의 가르침을 멀리하고 타락하니 큰 가르침은 잘 행해지지 않아 인간세가 혼란에 빠지므로 이에 크게 깨달은 단군왕검께서 치화라는 다스림의 묘로서 인간세의 조화와 교화의 가르침을 이끌어 내니 이로서 인간세의 풍속은 다시 크게 부흥하였으나 단군조선말기에 이르러 삼신상제의 하느님의 조화와 교화와 치화의 가르침의 도리가 무너지며 인간세는 혼란에 물들어 각자의 길을 걷게 되니 인류가 하나 되었던 시대의 온전한 가르침은 멀어지고 역사시대를 맞게 되어 서로를 적대시하는 인간세의 혼란과 다툼이 생겨나 오늘날에 이르게 되니 인류가 하나 되어 만들어 내었던 지상낙원의 가르침과 꿈은 까마득히 잊혀지고 멀어져 도저히 인간세의 혼돈을 풀어낼 길이 보이지 않는 암담한 지경에까지 이르렀으나 저 먼 고대에 인류가 하나 되어 만들어 내었던 큰 가르침을 담은 천부경이 다시 세상에 드러남으로서 잊혀진 낙원의 꿈을 다시 일깨울 수 있는 희망의 빛이 보이므로 다시 한번 지상낙원이 인간세에 세워질 수 있는 길이 크게 열렸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 길에 대한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이 천부경과 소도경전들로서 인간 또한 대일(大一)의 하느님과 하늘이 변화해 생겨난 천지(天地)가 결합해 만들어진 존재이니 인간의 근본은 거슬러 가면 결국은 대일신(大一神)과 하늘이므로 인간이 곧 하느님이자 하늘임을 천부경은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다고 본다.
동학에 나타나는 인간이 곧 하늘이라는 인내천(人內天)의 사상적 근거도 우리민족의 무의식의 원형을 만들어낸 천부경의 우주론에 근거하여 나타났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이 곧 하늘이긴 하나 천지(天地)라는 간접적인 존재를 통해 생겨나므로 하늘과 바로 연결되지 못하는 불완전한 하늘이니 수신이 필요한 것으로서 여러 종교적인 가르침들은 인일신(人一神)에 해당하는 크게 깨달은 여러 성자들이 인간이 하늘이 되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나름으로 전해놓은 흔적들이라 본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늘이 되는 길을 제시해준 모든 가르침들은 서로 다른 것이 아니며 그 목표는 하나의 목표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고 보기에 종교와 민족적 이기심을 떠나 대일신(大一神)과 하늘로 연결된 하나임을 오늘을 사는 인류는 천부경을 통해 크게 깨우쳐야 하리라 본다.
그러므로 모든 종교적인 가르침들은 인간이 곧 하늘이 되는 길임을 크게 깨우쳐 서로 손을 잡고 힘을 모아 모자라는 가르침은 보완해가며 인간세의 낙원을 이 지상위에 만들어 내는데 온힘을 쏟아 부어야 만이 진실로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진정한 종교인들임을 알아야할 것이라 본다.
그러므로 천부경의 가르침은 한마디로 살아서는, 하느님과 같은 온전함으로 나를 변화시키는 것이니 안으로는 지일신(地一神)과 같은 지극함으로 거듭나는 수신(修身)이며 밖으로는 천일신(天一神)과 같은 조화로움을 인간세에 만들어 내는 치국(治國)의 길로서 살아생전 하느님의 뜻을 받들었던 공덕을 통해 죽어서는 하늘로 온전히 돌아가야 하나 살아생전 쌓은 공덕이 없는데 무슨 수로 하늘로 다시 돌아갈 것인가?
윤회란 쌓은 공덕이 별로 없어 하늘로 돌아가지 못하고 윤회천( ) 속에서 끊임없이 나고 죽는 생사(生死)의 반복을 통해 자신이 지은 업을 씻어내는 장소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 본다.
천부경의 해석에 앞서 한가지 분명하게 강조할까 하는데 대일신(大一神)과 하늘은 말로 다 하기 어려운 무궁한 형태라면 대일신(大一神)과 하늘이 변화해 보여주는 천일신(天一神)과 천계(天界), 지일신(地一神)과 지계(地界)는 하늘의 무궁함이 그대로 땅으로 나타난 현실적인 양태로서 천일신과 천계는 인간사회의 이치학과 연관되며 지일신과 지계는 인간세를 구성하고 있는 개인들이 닦아야할 수신(修身)이라는 종교적인 것과 연관된 인간학으로 이해하면 되리라 본다.
<여기서 도(道)는 인간학인 수신을 덕(德)은 이치학인 치국을 뜻하는 것으로 보면 되리라 보는데 을지문덕 장군의 삼신일체경과 깊이 연관된 개념이 역경과 도와 덕이라 본다.
삼신일체경이 90자로 설계된 것에 주목>
그러므로 정신과 물질적인 양태는 서로 다른 것이 아니며 상호보완적인 것으로서 그 가야할 길이 분명하게 정해져 있다는 것을 대일신(大一神)과 하늘이 변화해 보여주는, 예를 들면 태양계라는 천계(天界)가 보여주는 조화로움과, 지구와 달이 보여주는 지계(地界)의 지극함을 그대로 인간세에 구현하는 길임을 천부경의 우주론을 통해 우리는 깊이 인식해야 하리라 본다.
그러므로 천부경의 가르침은 살아있는 삶을 중요시 했지 죽은 뒤는 그 다음이라는 것으로서 살아생전에 개인으로서는 수신을 통해 교화된 하느님의 자식으로 거듭나는 것과 사회적으로는 정치적인 조화를 통해 지상낙원을 만들어 내는 것이 진정으로 하느님의 뜻을 받드는 길임을 말해준 것으로서 살아생전에 하느님의 뜻을 제대로 받들었다면 죽은 뒤는 따로 걱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스스로를 돌아보아 정말열심이 살았다면 죽음조차 삶의 일부로 받아들일 수 있는 인신(人神)지경에 이르게 되는 것으로 누구보다 본인이 스스로에게 물어보아 무언가 부족함이 있음을 잘 알기에 죽음을 걱정하게 된다고 보는데 죽기 전에 이런 사실을 깨닫고 남은 삶의 길이에 상관없이 스스로를 돌아보며 자신을 추스린다면 하늘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열리리라 본다.
그러므로 살아있는 이 삶이 가장 중요한 것임을 천부경은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천부경은 하늘을 대신해 인간세를 이끌어 가는 제왕이 반드시 알아야하고 지켜야 할 도(道)의 이치를 우주론적 원리로 압축해 놓은 글로서 요즘으로 치면 제왕은 공인으로 이해해도 좋으리라 본다.
그러므로 백성을 섬기는 왕이 하늘의 명을 받은 진짜 왕이지 백성위에 군림하는 왕은 가짜임을 분명하게 밝혀놓은 것이 천부경이다 보니 왕과 귀족들이 이를 일반 백성들이 알고 반발할까 두려워했을 것은 뻔한 이치가 아니겠는가?
천부경과 한단고기의 역사가 지난 수천 년간 우리 역사에서 철저하게 지워지고 버려진 이유가 되었으리라 보는데 지배층들이 얼마나 필사적으로 천부경이 세상에 전해지는 것을 막으려 했는지는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그 흔적들이 많이 남아있으나 오늘날 제대로 알아보는 사람조차 거의 없어 천부경과 한단의 역사는 이제 희미하게 전해져오는 야사정도로 밖에 취급받지 못하고 있고 그나마 관심을 가진 몇몇 사람들조차 역사 속에서 지배층들이 꾸민 학문적인 함정에 빠져 자신도 모르게 천부경의 이치를 외곡하는 일에 동참하고 있는 실정이 오늘날의 현실이라 본다.
이에 대한 구체적인 예를 들면 고려 말 72현과 관련된 목은 이색이나 범세동 같은 분들은 천부경을 해석했다고 하는데 그 이후 천부경을 해석하는 사람은 없었다고 알려지고 있으나 이는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조선조 지배층들의 압력이 너무 거세다보니 은유적인 방식으로 밖에 표현할 수가 없어 그런 것일 뿐 오늘날 전해지는 해석서 들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 격암유록이라 본다.
그러므로 격암유록은 천부경을 해석해 놓은 글로서 은유적인 방식으로 밖에 표현할 수가 없었던 시대상황을 반영하고 있기에 이를 예언서정도로 취급해서는 안된다고 본다.
<물론 실제 남사고 선생이 남긴 천부경 관련 내용 이외의 후대에 가필된 터무니 없는 예언의 글들은 말할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꼭 밝혀둔다.> 최근에 나온 농은유집 기록본의 천부경을 보면 제목만 같을 뿐 한자식 천부경의 기록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천부경과 한단의 역사를 무리해서 말살하기 보다는 가장핵심적인 천부경의 이치를 슬쩍 외곡시킴으로 혼란에 빠지게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는 지배층의 철저한 계산이 깔려있는 것이 한자식 기록본이고 격암유록에 대응해 만들어 진 것이 정감록이라 본다.
그런 이유로 한자식 기록으로 바뀌어 진 이후 그 이치를 알아볼 수 없게 됨으로 혼란에 빠져 제대로 해석하는 이가 나오지 못하게 되었다고 본다.
역사외곡보다 더 심각한 것이 정신의 외곡으로 지난 수천 년간 저질러진 정신적인 외곡의 심각한 문제들이 극에 이르러 터져 나오는 것이 오늘날의 우리 사회의 여러 문제들로 이제는 우리의 진정한 정신적인 뿌리가 무엇인지 알아야할 시기가 되었다고 나는 본다.
그러므로 외곡이 가해지지 않은 농은유집 기록본의 진본천부경이 세상에 알려졌다는 것은 매우 기쁜 일로서 수천 년간 저질러진 농간에 물든 학문체계로는 혼란만 깊어질 뿐 진본천부경을 해석할 수 없다고 보기에 이를 깊이 생각해주기를 부탁드린다.
직설적으로 말해 오늘날의 옥편식 한자의 의미체계로는 농은유집 기록본의 고문자를 해석할 수 없다는 것으로 아예 한자의 상식을 잊어버리는 것이 오히려 천부경의 해석에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간단하게 예를 들면 밝을명(明)자를 태양과 달을 의미하는 것으로 지금은 알고 있으나 진본천부경에 쓰인 밝을명( )은 지구와 달을 의미하고 있는 것으로 쓰이기에 지구와 달로 이해해야 만이 우리말 씨줄 날줄의 개념이 만들어지는 원리와 천간지지(天干地地)가 만들어 지는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된다.
따라서 81자라는 고도로 압축된 우주론에서 해를 의미하는 태양(太陽)이라는 명사를 바로 앞에 만들어 쓰고 있는데 궂이 다시 해를 의미하는 문자를 중복해서 사용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이는 다른 문자에도 다 해당하기에 앞으로는 외곡된 한자의 상식으로 천부경을 대하지 말아 주기를 이 지면을 빌어 간곡히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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