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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함
김 기 택
텔레비전을 끄자 풀벌레 소리 어둠과 함께 방 안 가득 들어온다 어둠 속에 들으니 벌레 소리들 환하다 별빛이 묻어 더 낭랑하다 귀뚜라미나 여치 같은 큰 울음 사이에는 너무 작아 들리지 않는 소리도 있다 그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한다 내 귀에는 들리지 않는 소리들이 드나드는 그 까맣고 좁은 통로들을 생각한다 그 통로의 끝에 두근거리며 매달린 여린 마음들을 생각한다 발뒤꿈치처럼 두꺼운 내 귀에 부딪쳤다가 되돌아간 소리들을 생각한다 브라운관이 뿜어 낸 현란한 빛이 내 눈과 귀를 두껍게 채우는 동안 그 울음소리들은 수없이 나에게 왔다가 너무 단단한 벽에 놀라 되돌아갔을 것이다 하루살이들처럼 전등에 부딪쳤다가 바닥에 새카맣게 떨어졌을 것이다 크게 밤공기 들이쉬니 허파 속으로 그 소리들이 들어온다 허파도 별빛이 묻어 조금은 환해진다
---------------이제 밤낮으로 귀뚜라미가 울어대는 계절이다. 긴박한 속도로 돌아가는 우리 일상속에서 이 시처럼 풀벌레 울음소리에 귀 기울여본 적 있는가. 또 '풀벌레들의 작은 귀를 생각'해 보라. 그 작고 경이로운 존재의 세계가 있다는 것은 인간에게 얼마나 푸근한 위안을 선사하는가. 이 계절에도 동 시간대 위에서 여지없이 생생한 삶을 함께 동행하는 존재들이 있다는 것은.
김기택 시인은 경기도 안양 출생. 중앙대 영문과를 졸업. 1989년『한국일보』신춘문예로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태아의 잠』<바늘구멍 속의 폭풍><사무원><소>가 있으며, 김수영문학상, 현대문학상, 이수문학상, 미당문학상, 지훈상 등을 수상했다.
<신지혜.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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