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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
상자들 8
이경림
그러니까 나는 그 상자들의 도시에서 한 상자와 연애하고 결혼하고다시 쬐끄만 상자들을 낳았던 거죠
날 새면 눈도 코도 귀도 없는 괴상자들이 막무가내 배달되어 왔죠깨알만한 것들이, 집채만한 것들이물렁물렁한 것들이 딱딱한 것들이필시 수세기를 달려왔을 그것들이엄마 엄마 부르며 벌컥 벌컥문을 열어 젖혔죠
그 때 나는 매일 부엌에서 그것들의 먹이를 만드느라 바빴죠그것들이 자라 낙타가 되고 치타가 되고 악어가 되고 물뱀이 되어꼭 저 같은 것들을 뒤집어쓰고 어디론가 떠날 때까지 이런 봄날 하릴없이잿빛 허공에 귀를 대고 있으니목울대를 늘이고 귀신 소리로 우는 그것들의 울음이 들리네요그러면 문득앞뜰을 뽀얗게 뒤집어쓰고 때 이른 목련이 솟구쳐 오르죠글쎄 저 앙바툼한 나무 한 그루가 함뿍희디흰 이파리 나풀거리는 여린 상자들을 매달고 달그락거리는 거리잖아요낙타... 치타... 악어... 물뱀... 들이 가지마다글쎄!
---------------------이 시간대위에서 나름의 생을 각각 살아내는 존재들은 모두 상자들인 것이다. 동식물도 사람도 모두 상자다. 즉 우리 생을 일깨우는 '상자'라는 범종 같은 아우라가 여기 있다. 우리 삶이란 바로 실체를 담거나 언젠가는 비워야 하는 상자들로써 저렇게 '달그락거리는 '것이다. 곧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空으로 돌아갈 유기체적 존재 아니랴. 이 시가 우리에게 기존의 경직된 고답적 사유와 인지력을 벗겨버리고 획기적인 신선한 충격의 인식으로 모든 존재들의 비의를 화들짝 일깨워준다.이경림 시인은 1947년 경북 문경 출생. 1989년 『문학과 비평』으로 등단. 시집으로 <토씨찾기> <그곳에도 사거리는 있다> <시절 하나 온다 잡아먹자> <상자들>이 있으며, 시 산문집으로 <나만 아는 정원이 있다>등이 있다. <신지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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