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적 의미로 건지책 216과 곤지책 144의 개념이 있는데 인간과 인간집단과 관련된 의미로서 개인적
인 인간들과 관련된 것이 216수라는 건(乾)의 의미이고 집단적인 사회와 관련된 것이 144수라는 곤(坤)
의 개념이 된다고 본다.
즉 혼(魂)이 주도하고 있는 생리적인 시간수와 관련되어 나타나는 개인적인 심리와 관련된 것이 216수
라는 의미이고 집단의 보편적 이상을 의미하는 대영(大靈)이 추구하는 인간사회 속에 나타나는 집단 심리
와 관련된 것이 144수라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건지책 216수와 곤지책 144수가 아니라 혼지책(魂支冊) 216 영지책(靈支冊) 144라고 해야 맞
는 것으로 인간과 인간사회를 전체라는 360의 개념으로 놓게 되면 인간 ; 인간사회 = 180 ; 180의 개념
이 성립하게 되고 역사시대에서는 개별적인 심리적 영(靈)은 혼(魂)이 주도하는 생리에 끌려 다니는 개인
주의로 볼 수 있기에 혼지책의 수가 더 강한 힘으로 나타나 자신의 삶만 도모하려는 이진수 체계의 상극의
공간운동이 나타남으로 영지책 180에서 일신(一神)을 의미하는 36이 빠져나와 혼지책 180에 보태져
216수가 되고 공간수는 일신(一神) 즉 영원한 진리인 말씀을 의미하는 36이 빠진 불완전한 상태로 144가 된다.
따라서 216 ; 144 = 3 ; 2 로 영혼(靈魂)의 균형이 맞지 않게 된다.
이것을 동양학에서는 음양의 비율이 3 ; 2 라고 나타내고 있다 보는데 개념적인 혼선이 너무 심해 도대
체 자신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조차 모르고 아무데나 마구 같다가 붙이고 있는 것이 건(乾)과 곤(坤)의 개
념들이라 본다.
물론 음양오행론도 마찬가지라 본다.
이 혼지책 216과 영지책 144를 적용해 쓰이고 있는 것이 요한 계시록에 나타나는 새하늘 새땅 21장 편
에 쓰인 미래 세계를 보고 말했다는 요한의 말로서 성 예루살렘의 성곽을 재어보니 그 둘레가 144 규빗이
라는 데에 쓰이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요한이 말한 새하늘 새땅이란 하나님의 의지가 성 예루살램의 성곽안에 자리잡게 되면서
144+36=180으로 새하늘 새땅이 완성된다는 의미를 144라는 숫자로 나타냈다고 본다.
즉 인간세가 상생의 삶을 추구하는 시대로 바뀌어져야 하나님의 나라로 완성된다는 의미를 144라는 숫
자로 상징화 시켰다고 본다.
따라서 예수 탄생 설에 동방박사의 이야기가 나오는 것으로 보아 동서간의 교류가 상당히 활발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보기에 신화시대 때의 천국의 이야기가 중근동에도 널리 전래 되었을 것으로 보며 그
이야기를 요한이 참고해 요한 계시록 새하늘 새땅편을 썼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