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박구리의 봄노래-홍신선 시집 (파란시선 0021)
신간 소개┃보도 자료┃출판사 서평 ▄
꽃 진 자리, 푸른 하늘이 무진장 얹혀 있다
홍신선 시인의 열 번째 신작 시집 『직박구리의 봄노래』가 2018년 6월 22일, ‘(주)함께하는출판그룹파란’에서 발간되었다.
홍신선 시인은 1944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하였으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예술대학과 안동대학교, 수원대학교 등을 거쳐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계간 『문학・선』의 발행인 겸 편집인 일을 하고 있으며, 시업에 전념하고 있다. 1965년 월간 『시문학』 추천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 『서벽당집』 『겨울섬』 『삶, 거듭 살아도』(시선집) 『우리 이웃 사람들』 『다시 고향에서』 『황사바람 속에서』 『자화상을 위하여』 『우연을 점찍다』 『홍신선 시전집』 『마음經』(연작시집) 『삶의 옹이』 『사람이 사람에게』(시선집) 등을, 산문집 『실과 바늘의 악장』(공저) 『품 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잡지 않는다』 『사랑이란 이름의 느티나무』 『말의 결 삶의 결』 『장광설과 후박나무 가족』 등을, 저서 『현실과 언어』 『우리 문학의 논쟁사』 『상상력과 현실』 『한국근대문학 이론의 연구』 『한국시의 논리』 『한국시와 불교적 상상력』 등을 썼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현대불교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홍신선의 시는 고졸(古拙)하다. 그런데 또한 유려하다. 이는 모순에 가깝다. 그러나 사실이다. 읽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홍신선이 쓴 어떤 문장들은 여전히 세련된 모더니스트의 것이다. 그런데 또한 그 이미지들은 금세 세상살이의 이치를 이루고 다지는 태반이 된다. 그래서 홍신선의 시는 언젠가부터 한국시에서 삭제된 삶의 지혜를 문면에 직접 노출하거나 행간에 품는다. 그런데 공들여 얻은 지혜는 곧 다른 지면으로 옮겨 가 별것 아닌 듯 와해되거나 치기로 전락한다. 이는 홍신선의 시의 발원지가 장삼이사 즉 별다를 바 없는 우리가 사는 실제 세상이라는 점과 통한다. 그래서 홍신선의 시는 다분히 사실적이다. 그런데 또한 지극히 낭만적이다. 홍신선은 실제로도 끊임없이 여행을 해 왔고 그보다 그의 정신은 지금-여기를 견디지 못한다. 그런데 또한 홍신선은 아주 잘 알고 있다. 그가 시력 오십 년을 훌쩍 넘어 다다른 곳이 실은 그토록 떠나고자 발버둥 쳤던 바로 거기였다는 사실을 말이다. 홍신선의 시에 ‘폐허’나 ‘공터’가 자주 등장하는 까닭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또한 그 텅 빈 곳은 텅 빈 것 자체로 얼마나 가득한가. 그런데 더욱이 놀라워라. 그곳 한편에선 꽃이 지고 있는데 또한 다른 한편에선 꽃이 피고 있다. “무너진 축대 위 양귀비 붉은 꽃이 스스로 피었다 저절로 진다.” 이 한 문장은 감히 말하건대 홍신선 시인 한 개인뿐만 아니라 한국시가 지금껏 내달려 도달하고자 했던 최고의 경지다.
추천사 ▄
시인이 꿈꾸는 ‘놀이’ 곧 ‘무위’의 밑자리는 어쩌면 모든 분별이 사라진 자리일 수 있다. 분별은 유위의 산물이다. 시인이 스스로 끝내 벗어나고자 하는 것, 그리고 이 세계에서 끝내 벗겨져야 하는 것은 바로 그 분별이다. 분별이 사라질 때, 차별은 차이가 되지 않고 낙차는 격차가 되지 않는다. (중략) 그래서일까, 시인은 늘그막에 찾아온 건망증조차도 반갑다. 그것은 몸이 스스로 ‘나’를 버리는 과정이기 때문이다. ‘나’, ‘분별하는 나’의 의식은 몸의 산물이다. 경험과 기억이 바로 ‘분별하는 나’를 가능하게 한다. 늘그막에 이른 시인에게 경험과 기억은 더 이상 고착된 무엇이 아니다. “뇌 해마의 거죽에/잠깐 잠깐 앉았다 날아가는”(「건망증」) 것이 되어 버렸으며, 그리하여 “툭하면 소지품들 시도 때도 없이 손아귀 밖으로 도망치고/심지어는 입안에 든 밥알들도 어어 어어라 뛰쳐나와/식탁 밑 고꾸라지듯 굴러떨어지곤 한다./각자 물건들을 그렇게 서슴없이 방량이나 시켜 줄 일밖에 없는”(「이런, 나도 어치과인가」) 자유를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그러므로 “이 세월에는/어떤 내가 본래 나인가”(「이런, 나도 어치과인가」)라는 물음은 이미 대답이 내재된 질문이다. 그 대답은 ‘어떤 나’도 본래 ‘나’가 아니며, 나아가 ‘본래 나’라는 것은 어디에도 없다는 것이다. 그럴 때에야 고통조차도 고통이 아니게 된다. “모처럼 먹통에도 열린 내 코는 얼마나 상쾌한가./벌름벌름 취한 삶은 얼마나 황홀인가”(「비염」)에서처럼 고통과 취함이 다르지 않고, 닫힘과 열림이 다르지 않은 것이다. 그 삶은 게다가 어렵지도 않다. 시 「한 고전주의자의 독백」이 명쾌하게 보여 주는 바에 따르면, 그 삶은 “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고, “남의 파리한 등줄기 찍어 누”르지 않는 것이며, “괴춤을 부여잡고 공중변소 앞인 듯/긴 줄 선 방동사니들이 어쩌랴 바로 그런 게 삶이라고/서로가 서로에게 생각 비켜 주는” 단순함에 있다. 시인의 무위는 이렇게 소박한 자리에서 시작한다.
―한용국(시인, 해설 중에서)
선생님의 시를 두고 이런저런 말을 꿰어 맞추는 일은 아무래도 열없는 짓이라는 걸 새삼 깨닫는다. 그것은 마치 시삼백(詩三百)을 앞에다 놓고 “나부대”는 것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나는 저 『시경』의 웅숭깊은 뜻을 헤아릴 지혜가 없으며, 그 수려하고 빈틈없는 꾸밈을 가늠할 시안도 없고, 옛적 사람들의 살뜰했던 하루하루와 그들의 속정을 살필 정성마저 부족하다. 그러니 나는 감히 읽을 따름이다. 읽고 또한 감히 즐거워하고 기뻐하고 슬퍼하고 쓸쓸해하고 안타까워하고 잠시 격분할 뿐이다. 그럴밖에. 누천년을 지나오면서 겨우 삼백 남짓 전해지는 시편들은 하늘의 무늬와 그 무늬를 펼친 법도가 이미 따로 있어 그를 애써 베끼고 옮긴 게 아니라 낱낱의 사람살이의 애틋함과 간곡함과 간혹은 구구해 보이기까지 하는 저마다의 사연들이 곧 세상의 이법이자 생의 별다를 바 없는 궁극임을 그것 스스로 입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저 없이 말하건대 선생님의 시가 바로 그렇다. 선생님의 시의 출처는 어디 외따로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집 뒤 야트막한 자드락”이나 “아침 녘 버스가 그냥 지나친 휑한 정류장” 혹은 “마을 회관 앞 느릅나무 잎눈”이나 “아파트 후문 근처 맥줏집”―요컨대 바로 다름 아닌 “우리 동네”에 있다. “흐르는 듯 흐르지 않는” 그곳은 그런데 놀라워라, “부정에 부정을 잇댄 순행(巡行)의 끝”에 다다른 “무작정 가려던 언젠가의 바로 그 어느 곳”이면서 더불어 “겨울 세트장 한구석”처럼 “하릴없이” “적막”하고 “소슬”하기 짝이 없는 곳이기도 하다. “쓸쓸해서 더 의연”한 거기, “무너진 축대 위 양귀비 붉은 꽃이 스스로 피었다 저절로 진다”. “어쩌랴 바로 그런 게 삶”인데. 이 경이로운 “막막”함에 무슨 말을 더 얹을 수 있겠는가. 다만 ‘읊고 연주하고 노래하고 춤추면’ “그만”이다. “됐다”. “꽃 진 자리” “푸른 하늘이 무진장 얹혀 있다”.
―채상우(시인)
저자 약력 ▄
홍신선
1944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하였으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서울예술대학과 안동대학교, 수원대학교 등을 거쳐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계간 『문학・선』의 발행인 겸 편집인 일을 하고 있으며, 시업에 전념하고 있다.
1965년 월간 『시문학』 추천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 『서벽당집』 『겨울섬』 『삶, 거듭 살아도』(시선집) 『우리 이웃 사람들』 『다시 고향에서』 『황사바람 속에서』 『자화상을 위하여』 『우연을 점찍다』 『홍신선 시전집』 『마음經』(연작시집) 『삶의 옹이』 『사람이 사람에게』(시선집) 등을, 산문집 『실과 바늘의 악장』(공저) 『품 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잡지 않는다』 『사랑이란 이름의 느티나무』 『말의 결 삶의 결』 『장광설과 후박나무 가족』 등을, 저서 『현실과 언어』 『우리 문학의 논쟁사』 『상상력과 현실』 『한국근대문학 이론의 연구』 『한국시의 논리』 『한국시와 불교적 상상력』 등을 썼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현대불교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노작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시인의 말 ▄
뜻하지 않게 귀촌을 했다. 그리고 변함없이 작품을 썼다. 이번 시집은 귀촌 이후의 작품들로 엮는다. 아래 글은 그 귀촌의 후일담이다.
“그 외진 산골에 들어가 어떻게 살어?”
“괜찮습니다. 대학 선생 오래 한 덕 보는 건 혼자서도 잘 논다는 거지요. 아마 저 혼자서도 잘 놀 겁니다.”
얼마 전 집안 형님 한 분을 만나 여러 얘기 끝에 이런 수작을 나누었다. 선대(先代) 조고(祖考)의 묘하(墓下)에 작은 집을 마련하고 귀촌을 한 다음이었다. 동탄 신도시에서 쫓겨 나올 때 우리 집안은 이곳 산골로 선대 조고들을 모시고 내려왔다. 그리고 십 수년을 지나 나는 학교 일을 접었고 백수 노릇도 그만 지겨워진 끝에 이 마을로 낙향한 것이었다. 덩달아 학교 일할 때 보던 각종 자료와 책, 잡지들도 여기에 와 비로소 제자리를 잡았다. 그동안 여기저기 끌고 다녔던 책짐들인데 역시 나를 따라와 정착을 하게 된 셈이다.
그리고 지금껏 막연하게 무엇엔가 쫓긴다는 도시적 삶의 강박도 이곳에 와 나는 내려놓게 되었다. 대신 하루의 긴 시간 대부분을 혼자서 놀며 사는 팔자가 되었다.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나는 그 시간들에 제임스 조이스, 헤르만 헷세, 마루야마 겐지와 같은 작가들을 만나 논다. 그도 아니면 유실수를 비롯한 나무들 가꾸기나 터앝 일구는 일로 메운다. 그 탓일까. 나는 새삼 이곳의 새와 짐승, 나무들을 각별하게 상면하게끔 되었다. 뿐만인가. 아침저녁 놀과 달, 별들의 전에 몰랐던 품새와 움직임과도 만나게 됐다. 그러다 보니 이들, 자연 이미지들이 자연스럽게 작품들 속에 두루 자리 잡는다. 겸해서 졸시에다 “앞산 하늘 끝 뜬 노을 아내 삼고 뒷산 고라니 자식 삼네” 하는 허황한 수작까지 늘어놓기에 이르렀다.
일찍이 송나라 때 시와 그림만을 그렸던 전업 시인 임포(林逋)는 매처학자(梅妻鶴子)라고 했다. 그는 평생 결혼을 하지 않았다. 대신 자기 은거지의 매화를 아내로 삼고 두루미를 자식 삼아 살았다고 한다. 또 죽을 때는 생평에 썼던 시와 그림을 모두 불살랐다고도 한다. 그렇다. 저 철저한 은일의 삶을, 그 흥취를 내 어찌 감히 흉내라도 낼 터인가. 그렇긴 해도 마지막 생을 위해 들어온 이 산골 자연 공간이야말로 내 말년 와유(臥遊)의 창작 산실이 아닐 것인가 싶다.
―「산골 자연과 보내는 한 시절」
2018년 이른 봄 오류헌(五柳軒)에서
차례 ▄
시인의 말
제1부
가을비 13
우두커니 14
직박구리의 봄노래 15
봄꽃 적막 16
귀촌 18
폭염 20
합덕장 길에서 22
늦깎이 공부 24
한 고전주의자의 독백 25
뭘 허공에 쓰나 26
닷새 장날 28
달개비 30
별똥 31
물도 때로는 불길이다 32
할 34
제2부
생활 37
경칩 38
먼 길 40
입춘 근방 42
동화 44
왕벚나무 꽃 45
헌책방 46
왕소금 점심 47
새우젓 육젓 48
강, 하구에 와서는 49
단비(斷臂) 50
어느 건곤이 있어 51
만사(輓詞) 52
가을 햇살 54
겨울 미니어처 55
제3부
아, 그 나라 59
Please, Non Die 60
만화경 62
그날이 오면 64
카톡질 한참 65
말에 관한 명상 68
호접몽 70
이즘 내 마음에는 71
겨울나무 72
싸락눈 치는 날 73
왜 솔은 늘 푸른가 74
이런, 나도 어치과인가 76
건망증 78
제4부
선물 81
문장 노동 82
비염 84
동혼 85
밥 한 그릇 86
어머니, 엄마, 맘…… 88
나사 90
바로 그런 아침 91
엘니뇨 이상기후 92
바퀴 없는 생 94
전동차 안에서 96
우리 동네 작황 98
이건 아니지 그럼 99
활인심방, 예대로 102
상강 104
겨울 상수리나무 106
의두암에서 107
해설
한용국 무위의 빛, 허공의 시 108
시집 속의 시 세 편 ▄
합덕장 길에서
아침나절 읍내 버스에 어김없이 장짐을 올려 주곤 했다
차 안으로 하루같이 그가 올려 준 짐들은
보따리 보따리 어떤 세월들이었나
저자에 내다 팔 채소와 곡식 등속의 낡은 보퉁이들을
외팔로 거뿐거뿐 들어 올리는
그의 또 다른 팔 없는 빈 소매는 헐렁한 6.25였다
그 시절 앞이 안 보이던 것은 뒤에 선 절량 탓일까
버스가 출발하면
뒤에 남은 그의 숱 듬성한 뒷머리가 희끗거렸다
그 사내가 얼마 전부터 보이지 않는다
깻박치듯 생활 밑바닥을 통째 뒤집어엎었는지
아니면 생활이 앞니 빠지듯 불쑥 뽑혀 나갔는지
늙은 아낙과 대처로 간 자식들 올려놓기를
그만 이제 내려놓았는지
아침 녘 버스가 그냥 지나친 휑한 정류장엔
차에 올리지 못한
보따리처럼 그가 없는 세상이 멍하니 버려져 있다
읍내 쪽 그동안 그는 거기 가 올려놓았나
극지방 유빙들처럼 드문드문 깨진 구름장들 틈새에
웬 장짐들로
푸른 하늘이 무진장 얹혀 있다 ***
늦깎이 공부
무너진 축대 위 양귀비 붉은 꽃이 스스로 피었다 저절로 진다.
그 자리 해진 구멍이라도 남았나
살펴보면 세제로 씻은 듯 흘린 거 묻은 거 없는 허공이 천연덕스레 깊은데
내 가고 난 뒷자리는……
경전 한 페이지 사적(私的)으로 펴든 한해살이 저 풀에게도
이제 한 무릎 꺾고
방과 후 뒤늦은 나머지 공부
졸업인 듯 해야 하리. ***
물도 때로는 불길이다
서울 아파트 거실서 지내던 난 화분들을
시골집으로 데려와 마당에 내놓는다.
어리둥절 며칠 뒤 난 잎에 거뭇거뭇 흑반이 끼기 시작한다.
하나둘 예외가 없다.
긴 잎은 가운데가 갈라지고 이내 잎끝부터 마른다.
결국 실내에서 컸던 난 잎들
모두 말라 떨어진다. 지난날 강직함을 털썩털썩 내려놓는다.
자디잔 난석 틈에는 새 촉들이 솟는다.
품새의 크기와 색깔을 바꿔 밀어 올린 저 민낯들
낯선 바람과 햇볕에 근성 바꿔 어울리는
단순 적응인가 방어인가
머잖아 죽을 자리 잡는 짐승인 듯
여기 으늑한 산골 마을을 골라 나는 왔다.
귀촌은 도연명(陶淵明)이 원조지만 이 구석진 동네 아무개로 와
새참에 몇 잔 털어 넣는 막소주가
허기진 내 내벽에 홧홧한 불길로 치붙어 오르는데
저는 무엇에 허기졌는가 자질한 고랑물이 터앝의 두둑마다
흙을 머금고 위로 위로 치솟는 걸 본다.
보고 있으면 꼭 절정까지 솟구치는 불길이다.
퇴경(退京) 전 달래고 쓰다듬던 서울을 내려놓고
적응인지 방어인지
본색을 바꿔 가며 이즘 나도 새 촉들을
절정까지 푸른 불길들로 밀어 올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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