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민정음이 만들어지는 원리 15
개인적인 넋두리를 좀 늘어놓고 본론에 들어가겠습니다.
적에 비해 아군의 군세가 엄청나게 열세일 때 전쟁을 승리로 이끌 수 있는 방법은 기습작전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 봅니다.
저 또한 기습작전의 효율성을 잘 알기에 고대한국학에 관한 글을 조용히 준비 했다가 적의 뒤통수를 치듯이 느닷없이 이 사회에 발표를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생각을 하였으나 일부이기는 하나 삼태극에 글을 공개하는 이유는 미우나 고우나 한국학과 관련된 모든 분들이 저와 같은 길을 걸어가는 분들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들 스스로 자중지란을 일으킬 수는 없기에 이런 시각도 있다는 것을 알려 미리 준비를 할 시간적 여유를 주어야 할 것 같아 부족하나마 이 사람의 생각을 삼태극에 올렸던 것입니다.
부디 건방진 소리라고 오해는 하지 마시고 한국학의 미래를 걱정하는 이름없는 야인의 충심이 담긴 생각이라 보아주시기 바랍니다.
엊그제 술자리에서 만난 친구 놈이 그랬지요.
자신도 가끔씩 삼태극에 들러 이 사람의 글도 읽어보고 올라오는 댓글도 보나 왜 영양가 없는 짓을 하고 있느냐.
그럴 시간에 글이나 좀 더 쓰고 준비되면 책으로 내지 그럽디다.
만약 서양인들 중 누군가가 이 사람과 똑같은 글을 써서 삼태극에 올렸다면 저에게 보이는 반응과 같은 반응을 보였을까요?
누가 글을 썼든 글의 내용을 먼저 보아야 하는 것이 순서이고 그 내용을 기존의 학문적 논리와 비교해 보며 어느 것이 우리를 둘러싼 세계를 이해하는데 더 유용한지를 살펴보고 버릴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것이 상식적인 일이 아닐까요?
김덕수 사물놀이패를 국내에서는 천한 광대 짓이라고 비하시켜 보고 있을 때 유럽인들은 그 가치를 알아보고 열광적인 기립박수로 그들을 환영했습니다.
그제서야 한국인들은 마지못해 사물을 음악의 한 장르로 인정했습니다.
지금도 상황은 비슷하다 보는데 대다수의 한국인들은 은연중에 국악과 관련된 악기들은 천하게 보고 서양음악과 관련된 피아노나 바이올린 같은 악기들은 귀하게 보는 선입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비상식적인 선입견은 서양학과 한국학을 바라보는 시각에도 은연중에 적용되고 있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서양철학은 높게 보고 우리의 삼일철학은 낮게 보는 것인데 플라톤이나 아리스토 텔래스로부터 출발한 서양철학사는 끊임없는 대립과 긴장을 조장하는 철학의 아류일 뿐이라고 봅니다.
그들의 철학에는 성통공완으로 요약되는 화해와 용서의 논리가 너무 부족합니다.
그들의 철학적 바탕을 이루고 있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인 성경을 보아도 투쟁이나 복수 같은 부정적인 단어들로 넘쳐납니다.
그들이 말하는 사랑은 우리가 말하는 사랑과는 다릅니다.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내 편만 사랑하고 나머지는 투쟁의 대상으로 보는 것이 그들의 사랑논리입니다.
생각이 다르다고 기독교에 시비를 건 것도 아닌데 가만히 있는 단군상의 목을 치는 기독교의 형태를 보면 어느 정도 알 수 있지 않나요?
따라서 그런 부정적인 대립의 철학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서양철학을 따지지도 묻지도 않고 선진국인 서양인들의 철학이라고 무턱대고 철학의 주류로 보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맺어진 가정에서도 서로를 따뜻하게 품어주지는 못할망정 자신과 다른 종교를 가지고 있거나 생각이 다르다고 인간성은 제쳐두고 죽을 죄를 지은 죄인 취급하듯 원수처럼 냉대하는 형태는 유독 기독교 계통과 관련된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을 주변에서 흔하게 보지 않나요?
가족의 평화를 위해 마지못해 교회에 나가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내 동료들을 보며 잘 알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가르쳤건만 서양철학의 주류와 기독교는 철저하게 그와는 반대의 길을 걸어온 것이 그들의 역사입니다.
서양문명의 호전성에 오죽했으면 원수를 사랑하라고 예수께서 가르쳤겠어요.
효자 효녀가 흔하디흔한 사회라면 효자 효녀상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청렴결백한 공무원이 흔하디흔한 사회라면 청백리상은 만들어지지 않습니다.
인간은 당연히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상식화된 사회이니까요.
그와 마찬가지로 싸우지 않고 더불어 살 줄 아는 사람들이 흔하디흔한 사회에서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도 생겨날 필요가 없지요.
역설적으로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이 무성한 사회일수록 원수질 일이 많이 생겨나는 혼란스런 사회라는 의미가 아닐까요?
이미 서양인들 특히 독일인의 신망을 받은 하이데거 같은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철학적 한계를 수 십 년 전에 깊이 인식하고 우리말 하늘을 의미하는 무(無)나 공(空)사상의 동양철학에 눈을 돌렸는데 우리는 그들이 버린 서양철학의 막연한 환상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아야 할 때가 아닌가요?
얼마 전에 중요 동서철학을 소개한 강신주씨의 “철학 대 철학”이라는 책을 읽어본바 이를 더욱 확신합니다.
그러므로 서양문명의 화려함 속에 감추어진 서양철학의 맹점을 조목조목 따져 보면 성양철학이 가진 한계는 분명하게 들어날 것이라 저는 봅니다.
얼마 전에 하늘경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전개한 “다윈 진화 생물학의 한계”라는 글을 올렸을 때 글을 읽어보고 다윈 진화론이 가진 맹점을 파악해내는 사람이 적어도 한 둘은 있을 줄 알았는데 아무런 반응이 없는 것을 보고 상당한 실망을 했습니다.
최소한 그것이 사실이라면 세계 생물학계에 엄청난 파장을 몰고 올수도 있는 새로운 학설일 수도 있다는 인식하에 과연 그런가 하는 확인의 질문이라도 해야 하는 것이 한국학을 하는 사람의 입장이 아닐까요?
이 사람의 귀에는 서양학이 과학적이라는 맹신을 심어준 기둥들 중 몇 개가 무너지는 소리가 들리는데 여러분들의 귀에는 들리지 않나요?
제가 너무 앞서가는 건가요?
까놓고 이야기해서 상당수의 한국인들조차 그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천대받고 외면되고 있는 지금의 암울한 한국학의 처지를 삼태극 카페의 회원님들은 잘 아실 것이라 봅니다.
이러한 한국학의 현재 입지를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들이라면 어쩌면 지금의 한국학의 암담한 현실을 획기적으로 개선하며 세계학문의 주류로 발돋움 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입증할 수도 있는 희망의 소리일 수도 있다는 생각으로 지푸라기라도 잡아보는 심정으로 이 사람의 주장을 최소한 확인이라도 해 보는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요?
따라서 삼태극 회원님들이 올리는 한국학과 관련된 글자하나 틀리지 않는 똑 같은 내용의 글이라도 일반인들의 시각에서는 한국학의 과학성과 합리성이 입증되는 상태에서 대하는 것과 그렇지 못한 상태에서 대하는 것에는 회원님들의 한국학을 사랑하는 열정에 상관없이 엄청난 무게 중심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므로 한국학의 일차적인 진짜 적은 차이나나 일본이 아닙니다.
지금의 한국사회를 지배하고 있는 서양학에 대한 우리아이들과 일반인들에게 무조건적인 과학적 맹신을 심어준 그놈이 진짜 적입니다.
그러므로 한국학을 살리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 서양학이 감히 무시할 수 없을 만큼 세계인들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한국학의 과학성과 합리성을 확보하는 길임을 꼭 아셨으면 합니다.
앞글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이야기로 인간은 두 가지 방식의 존재 원리가 상호작용하며 인간적 특성을 만들어내게 되는데 혼(魂)의 정신작용이 주도하고 있는 생리리듬과 영(靈)의 정신작용이 주도하고 있는 심리리듬이 그것으로 혼의 정신작용은 각기 생명들의 생, 성, 장, 사와 같은 물리적인 몸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과 관련되고 영의 정신작용은 생명사회인 자연계의 변화를ㅡ<인간으로 치면 부, 귀, 빈, 천의 논리>ㅡ만들어내는 것과 관련되어 있는데 생리리듬은 무의식적인 상태로 일어나는 변화이며 심리리듬은 의식적인 상태로 일어나는 변화라고 보면 된다.
따라서 이 둘은 상호작용하며 생명의 행동방식과 진화를 유발하게 되는데 인간은 생리와 심리가 적절하게 조화된 가장 앞선 진화형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은 생리에 비해 심리적 진화는 매우 낮다고 보면 된다.
그러므로 고대한국학에 나타나는 수학 원리는 현대 수학이 다루지 못한 프랙탈 기하학으로 나타나는 생리적인 면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보면 된다.
한방에서 진단을 할 때 흔히 쓰는 맥이라는 말은 시간운동으로 나타나는 생리리듬인 기혈의 움직임을 파악해 건강상태를 살핀다는 의미인데 (ㅁ)은 시간운동이 이루어지는 몸을 의미하게 되고 (ㅏ)는 표출을 의미하니 마는 몸 안에서 돌아가는 기혈의 움직임을 의미하고 (ㅣ)는 몸이라는 소지(小地)를 의미하니 매는 기혈의 표출은 몸 안에 닫혀 돌아가는 회전운동을 하고 있다는 의미가 되고 (ㄱ)은 공간운동을 의미하니 맥의 말뜻은 소지(小地)의 끝이자 소천(小天)의 시작인 몸의 건강상태를 살펴 생리적 활동과 심리적 활동에 지장이 없는가를 살핀다는 의미로 만들어진 말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사람이 설명한 고대한국학에 대한 이해가 깊어지면 현대수학자들이 아무도 증명해 내지 못하고 있는 수학 원리를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고 나아가 새로운 차원의 수학의 세계를 열게 되는 세계적인 수학자로 발돋움 할 수 있음을 수학에 관심을 둔 젊은이들은 귀담아 들어주기를 바란다.
이는 수학분야만이 아니라 모든 학문분야에 적용될 수 있음을 학문에 뜻을 둔 젊은이들은 귀담아 들어주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장담하지만 고대한국학에 대해 관심을 둔 순간부터 그대들은 이미 세계적인 석학이 될 수 있는 가장 큰 가능성을 잡게 된다는 것을 꼭 명심해 주기를 바란다.
따라서 왜곡된 옥편식 한자의 의미도 우리말이 만들어지는 원리를 적용해 본다면 원래의 의미를 찾는데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라 본다.
예를 들면 가운데 중(中)이라는 한자식 의미에서 가운데는 빼버리고 중자의 우리말의 의미만 분석해 본다면 (ㅡ)는 소하느님과 소하늘을 의미하게 되고 (ㅅ)은 그로부터 갈라져 나온 소천지(小天地)인 생명사회와 생명을 나타내니 (ㅡ)+(ㅅ)=(ㅈ)이 되고 (ㅜ)는 아래 속으로의 의미가 됨으로 주는 소하느님과 소하늘을 의미하는 생태계로부터 소천지인 생명사회와 생명이 나타났다는 의미가 되고 (ㅇ)는 시공간운동이 일어나는 공리적 세계인 소천지를 함께 의미하게 되니 중의 우리말 의미는 가운데의 의미가 아니라 소하늘을 의미하는 생태계로부터 자연계를 의미하는 소천지의 공리적 세계가 만들어졌음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본다.
하늘경의ㅡ<천부경>ㅡ문장 중 하나인 인중천지일에 쓰인 중자의 의미도 이와 같은 맥락으로 이해하면 되리라 본다.
위에서 거론한 주자의 의미도 주인주(主)할 때의 주라는 말과도 연계해 보는 것도 좋으리라 본다.
그러므로 (ㅁ)과 (ㅂ)이 들어간 우리말은 시간운동과 공간운동과 관련된 기호로 하늘경의 첫 문장에 쓰인 일시무시일에서 두 개의 시자를 문자적 형태를 달리하여 표기하고 있는데 앞의 시자는 (ㅂ)이 들어가 있으므로 수평태극운동을 의미하는 공간운동을 나타내고 뒤의 시자는 (ㅁ)이 들어가 있으므로 수직태극운동을 의미하는 시간운동을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앞의 시자는 영(靈)의 우주정신이 주도하고 있는 공간운동의 시작을 뒤의 시자는 혼(魂)의 우주정신이 주도하고 있는 시간운동의 시작을 나타내는 문자기호라고 보면 된다.
이왕 꺼낸 말이니 부자나 불자의 우리말 음을 풀이해 보면 (ㅁ)은 시간운동으로 나타나는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개별적 존재들을 나타내는 기호이고ㅡ<창조와 소멸>ㅡ(ㅂ)은 그러한 개별적 존재들이 서로 부대끼며 수평적 공간운동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기호가 된다.
따라서 이를 범위를 좁혀 인간세에 적용하게 되면 (ㅂ)은 (ㅁ)이 의미하는 각 인간의 몸을 근본으로 서로 부대끼며 수평적 공간운동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기호로 (ㅁ)위에 그려진 두 개의 직선은 이를 나타낸다고 본다.
그러므로 (ㅂ)은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너와 내가 생리적인 몸을 근본으로 심리적인 공간운동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는 기호가 되기에 (ㅜ)는 표출의 의미가 있음으로 부는 너와 내가 만들어내고 있는 공동체를 뜻하게 되는데 부가 좀 막연한 추상적인 의미가 있으나 (ㄹ)이 들어가게 되면 그 의미는 보다 선명하게 들어나게 된다.
즉 (ㄹ)은 공간운동(ㄱ)+시간운동(ㄴ)+일신(ㅡ)=(ㄹ)이므로 (ㄹ)은 영혼의 우주정신이 합일된 그리스도나 부처, 성인의 의미와 연계됨으로 부나 불의 우리말 음은 영혼일치가 이루어진 성인들의 나라 또는 그러한 지도자가 이끌어가고 있는 지상천국을 의미하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부자가 들어간 우리말은 대개의 종교가 주장하고 있는 사후 세계의 천국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이 현상계에 직접 만들어낸 지상천국과 관련된 말로 부나 불자의 우리말 의미만 제대로 알아도 기존의 종교가 얼마나 많이 우리의 신교정신과 다르게 변질되어 있는지 간파할 수 있을 것이라 본다.
다시 말해 고대의 선조들께서는 사후의 세계보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을 더 중요시 했다는 것으로 인간세를 천국으로 만들어내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우리말이 부나 불자의 우리말 음의 뜻이라고 본다.
이는 전에 올린 글 중 한자로 쓰인 “불(佛)자가 만들어지는 원리”라는 내용과도 상통하니 참고 하길 바란다.
참고삼아 벼농사를 짓는 “논”도 노적가리나 노들강변이라는 우리말에서 드러나듯 논과 노는 같은 의미로 쓰이게 되는데 부자와 불가와 관련된 불(佛)자의 우리말 음도 같은 맥락으로 보면 된다고 본다.
따라서 부도지를 불도지로 해석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
그러므로 부나 불의 우리말 뜻은 땅에 나타난 지상선경이나 지상천국과 관련된 말로 해석해도 부도지의 내용과 거의 부합된다고 본다.
아마 훈민정음의 자음기호에 대한 뜻풀이만 끝난다면 한자식 발음과 우리말의 뜻을 담은 한글과 비교해 보며 왜곡된 옥편식 한자의 의미를 바로잡는 기본 공식은 자리 잡힐 것이라 본다.
이야기를 앞으로 돌리면 인간만 생각이라는 심리적 양태가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으로 상당수의 생명은 인간보다는 못해도 생각으로 대표되는 심리적 양태를 갖고 있다고 본다.
돌아보면 손을 대어야 할 곳이 너무 많아 무엇부터 시작해야 할지 막막했으나 이왕 시작한 분야가 훈민정음이니 다음부터는 하나의 주제에 집중해 모음기호가 의미하는 우주론에 대해 최종적인 정리를 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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