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습니다.
오랜만에 글을 올립니다.
6)사설1
앞의 글을 통해 천부경으로 대표되는 고대 한국학에 대한 개념적 윤곽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리라 보기에 생각 가는대로 천부경에 대한 개인적 생각을 더 풀어 봄으로서 보편적인 천부경 해석의 기본 틀을 만들어 볼까 한다.
오늘날 주장만 요란할 뿐 무엇이 옳은 길이고 무엇이 틀린 길인지 도무지 알 수 없는 지금의 한국학의 대 혼란은 지나온 역사를 통해 조금씩 쌓여오던 학문적 문제들이 극에 이르러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라 본다.
이는 동서양학을 불문하고 지난 수천 년간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학문들을 수용하는 과정에서 한국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나 자신이라는 기준을 잣대로 한 외부 학문에 대한 철저한 자기 성찰과 비교분석이 제대로 이루어 지지 못했다는 것으로 학문만 있었을 뿐 여기 살아가고 있는 나라는 기준은 없었음을 의미한다고 본다.
다시 말해 한국학과 외부학문과의 융화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못하고 불가의 논리가 들어오면 불가의 학문적 논리가 이 땅을 뒤덮고, 유가나 도가의 학문적 논리가 들어오면 유가나 도가의 학문적 논리가 이 땅을 뒤덮고, 서양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기독계열의 학문적 논리가 이 땅을 뒤덮었을 뿐 한국학을 바탕으로 한 외부학문과의 소통과 융화를 이끌어 내는 철저한 자기 성찰의 학문적 바탕은 전무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남이 입던 옷을 얻어 내가 편하게 입으려면 나 자신의 몸에 맞추어 입어야 어색하지 않다.
그러나 고조선 이후 민족의 힘이 급격하게 위축되면서 살아남기에도 바쁜 고단한 역사시대를 맞게 되니 그와 함께 천부경으로 대표되는 고대 한국학 또한 급격한 쇠퇴를 겪으며 사라지는 비운을 맞게 되므로 그 이후로는 자신의 옷을 잃어버린 탓에 남의 옷을 얻어 입기에만 급급했을 .뿐 나 자신의 몸에 맞추어 입어보지 못한 축척된 여러 문제들이 오늘날 한꺼번에 터져 나오면서 나타나는 현상이 주장만 있을 뿐 어느 주장이 과연 옳은 주장인지를 분석하고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이 없는 학문적 대 혼란을 만들어 내는 이유가 되고 있다고 본다.
이것은 고대 한국학이 역사의 무대에서 사장된 이후 수용된 여러 학문들에 대한 교통정리가 제대로 이루어 지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나는 빠져버린, 각자가 얻어 입고 있는 여러 종류의 옷에 기준한 주장만 난무할 뿐 첨예하게 서로 부딪히고 있다는 것을 말없이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가장 시급한 문제는 이 사회를 움직이고 있는 주장들에 대한 교통정리가 우선이라고 본다.
그렇다면 각자의 주장은 무엇으로 하는가?
말과 문자가 아니겠는가?
따라서 현재 우리가 쓰고 있는 말과 문자에 대한 철저한 개념적 정리를 통해 각자의 주장이 무엇에 근거하고 있는지 밝혀내어 준다면 나머지 교통정리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리라 본다.
그러므로 그 핵심에 있는 것이 천부경의 우주론이라 나는 판단하고 있기에 이를 기준으로한 말의 혼돈을 바로잡는 길이 한국학의 혼돈을 바로잡는 가장 기본적인 작업이며 나아가 한국학이 세계적인 학문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초를 다지는 일이라 본다.
앞글을 통해 대략적인 우리말의 개념적 정리를 했다고 보는데 하늘과 땅에 대한 개념적 정리만 확실히 하면 나머지는 생각보다는 쉽게 풀려갈 것이라 본다.
먼저 하늘은 숨겨진 도형이 의미하듯 땅으로 이해할 수 있는 현상계를 만들어낸 근본 바탕이나, 인간의 기준에서는 마음으로 느끼지 않으면 그 실체를 확인하기 어려운, 말로서는 도저히 설명하기 어려운, 우주의 근본으로서 현상계를 만들어낸 대일(大一)의 하느님이 다스리는, 각종종교에서 말하는 인간이 최종적으로 돌아가야 할 근원과 연계된 것으로 밖에 달리 설명하기가 어렵다고 보는데 천국, 극락, 부처, 하느님 등등으로 표현되는 인간을 포함한 땅으로 들어난 우주가 최종적으로 돌아가야 할 근본자리를 의미하고 있는 것이 우리말 하늘의 의미라 본다.
그러므로 땅은 이러한 하늘을 근본으로 하여 생겨난 현상계 속의 존재들과 존재들의 사회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크게 물질적 양태로 이해할 수 있는 별과, 별이 만들어낸 별의 사회와, 별과, 별의 사회인 천지(天地)가 결합해 만들어 내는 인간계(人間界)로 나눌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동양학에서 쓰이고 있는 천지인(天地人)의 개념은 특별한 경우 외에는 모두 우리말 땅에 속하는 개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보는데 천(天)은 별의 사회인 태양계나 은하계 같은 별무리를 의미하고 지(地)는 별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물질적 양태인 별을 의미하고 인(人)은 천지(天地)가 결합해 만들어낸 생태계와 생태계 속에 생겨난 생명들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동양학에서 쓰이고 있는 천(天)의 문자적 개념을 우리말 하늘로 바로 연결시키는 것은 안된 다는 것으로 하늘은 땅으로 들어난 우주에 나타날 수 있는, 천지인(天地人)이 보여주고 있는 모든 가능성의 요소들이 다 함축된 전체적인 것과 완전함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따라서 하늘과 땅에 대한 명확한 개념적 구분을 해야 만이 고대 동·서양인들의 여러 표현들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진다고 본다.
그러므로 천지인(天地人)의 개념을 우리말 땅의 개념으로 잡아야 만이 동양학에 나타나는 일(一)과 이(二)가 결합해 삼(三)이 되니 삼은 만물(萬物)을 낳는 기본수라는 숫자적 의미에 대한 표현의 이해가 가능해 진다고 보며, 서양문명의 발생지로 알려진 슈메르 신화에 나타나는 천일(天一)신(神)과 지일신(地一神)인 얀과 키가 결합해 만물의 신(神)인 대기(大氣)의 신(神) 엔릴을 낳았다는 표현들에 대한 이해도 가능해 진다고 본다.
고대 서양문명이 후대의 서양문명과 다른 문명적 특성을 보이는 것은 하늘에 대한 개념과 함께 땅이라는 동양학에 가까운 우주관을 함께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라 보는데 동양학적 요소인 땅에 대한 개념은 거의 사라지고 우리말 하늘에 대한 개념만 강화되어 나타남으로 인해 후대의 서양문명과 고대의 서양문명과의 특성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되었다고 본다.
그리고 고대 동양학 또한 하늘에 대한 개념과 땅에 대한 개념을 함께 가지고 있었다고 보나 후대의 동양학은 하늘에 대한 개념은 거의 사라지고 땅에 대한 개념이 강화되어 나타남으로 인해 후대의 동양문명과 고대 동양문명과의 특성이 갈라지는 분기점이 되었다고 본다.
결국 동·서문명의 통합은 자신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으로 지금의 동·서양학은 둘 다 과거로부터 너무 멀리 떨어져 나와 버려 자신을 돌아 볼 근거마저 잃어버렸다고 본다.
따라서 동·서문명은 뿌리를 잃어버리고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게 되어 반쪽짜리 진리가 되어버렸으나 서로가 잃어버린 반쪽임을 모른 체 이제는 인류문명이 어디로 가야할지 그 목표를 이끌어 내지 못하는 학문적 벽에 부딪히며 혼돈상태에 빠져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마지막 희망은 하늘과 땅의 특성을 함께 아우르는 우주론이자 동·서 문명의 양대 특성을 만들어낸 근본적인 핵심적 논리를 함축하고 있는 천부경의 우주론에 동·서문명의 소통과 통합을 이끌어 내는 실마리를 얻는 것 외에는 지금으로서는 달리 길이 보이지 않는 암울한 상황에 처해 있는 것이 인류문명의 현 주소라 나는 판단한다.
우리말에 나타나는 하늘과 땅의 개념을 오늘날의 학문적 풍토에 비유한다면 하늘과 관계된 것은 종교로 땅과 관련된 것은 과학으로 보면 될 것이라 보는데 종교와 과학이 사이좋게 만나 융화되고 있는 세계관을 압축해 놓은 것이 천부경이고 말로서는 우리말 하늘과 땅이라고 본다.
이런 흔적은 땅에 속하는 천(天)과 관계된 말로 고대에는 물론이고 오늘날에도 일부 쓰이고 있는 말들을 살펴보면 금방 들어나리라 보는데 인간사회의 중심인 인천일신(人天一神)과 관계된 말로 천자(天子)라는 말이나 수도를 옮긴다는 천도(天道)라는 말 등등은 그 이유에 대해서는 잘 모르더라도 모두 천부경의 우주론에 기반해 만들어진 고대로부터 내려온 말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말은 다르더라도 파라오의 개념도 태양이라는 천일(天一)신과 연결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땅이라는 현상계와 관계된 말들은 동(東)·서(西)를 불문하고 모두 땅의 개념에 속하는 천지인(天地人)과 연관되어 있다고 보기에 이에 대한 말의 개념적 정리가 하루라도 빨리 이루어진다면 동·서양학의 소통 또한 보다 앞당겨 질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종교적 형태에서 불가나 기독계열에서 다루는 궁극적 주제 또한 우리말 하늘과 연관된 것으로 이해하면 되리라 보기에 표현양식이 다르다고 그 목표 또한 다르지 않음과, 하느님이나 부처님이나 인간이 만들어낸 말만 다를 뿐 다 같은 삼신상제(三神上帝)의 하느님을 의미함도 깊이 깨달아 인간이 스스로 지어낸 신을 부르는 여러 개념들에 얽매여 하느님의 참 뜻을 저버리는 못난 짓은 하지 말아주기를 이 지면을 빌어 간곡히 청해본다.
마음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마음이란 말을 지구촌의 사람들은 너무나 일상에서 흔하게 쓰고 있으나 정작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해 보편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통일된 개념은 없다고 본다.
이는 동·서양학을 불문하고 다 해당 한다 보는데 인간문명의 성립을 가능하게 하는 인문학의 바탕에는 마음을 기초로 하지 않은 문명은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마음에 대한 확실한 개념적 정리를 통해 마음이 무엇인지에 대한 통일된 개념이 세워진다면 오늘날의 인문학적 혼란은 가라앉을 것이라 나는 판단한다.
마음은 크게 두 가지 양태로 나누 진다 보는데 하늘의 마음과 땅의 마음으로 나누어짐을 도형과 81자의 문자를 통해 천부경은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마음은 인간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과 하늘이 변해 생겨난 땅으로 나타난 모든 존재들에게 어떤 형태로든 마음이 있음을 천부경은 말해주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하늘의 마음은 땅으로 나타난 모든 존재들의 마음의 합을 말하는 것으로 불가에서는 이를 진여의 세계로 기독계열에서는 하늘나라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즉 마음은 신(神)의 자리와 연관된 것으로 기호로는 점(·)으로 나타낼 수 있다고 보는데 숨겨진 도형에도 들어나듯 하늘은 백(100)개의 점과 전체적 도형이 일체가 되어 마음을 만들어 내는 점이라는 중심자리와 중심자리가 만들어 내는 전체적 도형이 의미하는 하늘의 구분이 나타나지 않는다,
즉 하늘을 이루는 점 하나하나가 모두 신(神)의 자리인 중심을 의미하게 되어 그 자체로 어디든 중심에 해당하게 된다.
비유를 들면 하늘의 마음은 태양빛과 같은 상태로 땅의 마음은 태양빛을 스펙트럼에 통과 시킬 때 나타나는 일곱 가지 무지개의 색으로 갈라져 나온 것이 땅의 마음이라고 보면 되리라 본다.
따라서 대일신(大一神)을 의미하는 백(100)개의 점 하나하나가 일신이라는 땅의 중심자리로 나타나 땅을 이루는 물질적 세계를 만들어 내었음을 의미하는 것이 일신을 의미하는 점과 일신이 만들어낸 땅의 세계를 나타내는 원방(○,□)이라 본다.
그러므로 ( )은 땅으로 나타난 개별적 존재와 존재의 사회를 만들어 내는 일신(一神)과 세계를 의미한다고 보는데 이는 앞에서 설명한 땅중( )의 문자에도 나타나듯 원(○)은 세계를 의미하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보며 땅으로 나타난 개별적 존재들을 다스리는 일신점(·)을 따로 쓰지 않고 원(○)을 관통하고 있는 수직선(|)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아 하늘과 땅의 마음이 일치가 되어 있는 진여(眞如)의 상태를 나타낸다 본다.
즉 땅으로 나타나긴 했으나 생명이 보여주는 생멸(生滅)문을 벗어나 진여(眞如)의 세계인 하늘과 곧바로 연결된 땅의 마음의 상태를 나타 낸다 본다.
따라서 천지(天地)와 천지일신(天地一神))이 결합해 만들어낸 생태계는 땅이되 하늘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는 진여(眞如)의 세계임을 나타내는 문자가 땅중( )이라 본다.
그러므로 천(天)과 천일신(天一神)의 개념을 국가와 왕(王)의 자리로 지일신(地一神)과 지(地)의 개념을 개인들의 개성과 백(100)성의 자리로 연결시킨 것이 그 예라 본다.
동양학에 나타나는 인간이 천지(天地)의 마음을 알고 이를 실천하면 군자가 된다는 등등의 말들은 모두 천부경에 쓰인 땅중( )과 연관된 개념에서 나타 난다 본다.
공자께서 아침에 도(道)를 들어 알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고 했는데 공자가 추구한 도(道)의 궁극도 결국 땅으로 나타난 천일신과 천계를 의미하는 태양과 태양계를, 지일신과 지계를 의미하는 태양계를 이루는 위성 즉 지구나 달 같은 별들이 만들어 내는 늘 그러한 변함없는 천지의 지극한 움직임을 인간문명의 이상적 모범으로 삼아 이를 인간계에 구현하려고 한 양태들이 유교적 특색으로 나타났다고 본다.
<다만 천(天)의 자리에 앉은 군왕(郡王)에 대한 개념적 철저함이 미흡했다고 본다.>
노자나 장자로 대표되는 도가 계열도 따지고 보면 땅과 관련된 천지(天地)와 연관되어 있다고 보는데 유교적 이상을 인간계에 막상 구현해 보려고 해보니 천지(天地)의 지극함은 보이지 않고 이를 실행해야할 자리에 앉은 놈들이 말만 번지르르 할 뿐 도둑놈 심뽀를 가지고 있어 인간세를 더 혼란에 빠뜨리는 것에 대한 실망과 분노에 대한 반발이 특히 노자의 사상적 바닥에 깊숙이 깔려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동양학에 매우 강하게 나타나는 유가와 도가 계열의 인문학적 특색은 전혀 상반된 입장을 보이는 것 같아도 땅을 의미하는 천지를 기본 모델로 해서 만들어 졌다고 본다.
<실제 인간에게 있어 기장 직접적으로 연결된 천지(天地)는 태양계이다.>
그리고 기독계열과 불교계열은 천지(天地)를 거치지 않고 건너뛰어 인간세를 곧바로 하늘과 연결시키므로 인해 현실논리가 매우 취약한 점을 들어내고 있다고 본다.
이는 거꾸로 자신이 주장하는 논리적 근거를 매우 신비적인 경향으로 포장할 수 있는 빌미를 주게되어 유가나 도가 계열과는 달리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인상을 인간세에 심어주게 되므로 인간세에 깊숙이 파고들어 오늘날 까지도 살아남아 장사를 잘 해낼 수 있는 근거가 되고 있다고 본다.
<도가 계열도 이런 점이 상당수 있다고 본다.>
하늘의 마음을 그대로 투영하고 있는 것이 천지(天地)의 마음이니 천지의 지극함을 알지 않고 하늘의 섭리를 어찌 짐작할 것이며 하늘의 섭리를 안다면 천지 또한 고정된 것이 아닌 언제든 변할 수 있는 것임을 알아 인간문명의 가장 이상적인 인문학적 모델을 만들어 내는데 주력해야 하리라 본다.
이는 봉건신분계급 제도 속에 나타난 사상적 폐해들이 생겨난 근본 원인과도 연계되리라 보는데 하늘에 치중하면 귀천의 폐해는 나타나지 않을지 모르나 인간문명의 발전의 동력이 되는 질서 체계를 만들어내는 데는 부족하게 되며 땅에 치중하게 되면 인간문명의 질서체계를 만들어 내는 데는 탁월함이 나타날 수 있으나 귀천의 폐해가 나타나게 되므로 하늘과 천지(天地)는 상호보완적인 것임을 깊이 인식해 21세기 인류문명의 새로운 길을 찾아내는데 인류는 주력해야 하리라 나는 본다.
<이런 특색은 하늘에 치중한 종교와 땅에 치중한 종교를 사회질서의 근간으로 하고 있는 각 문명들을 살펴보면 잘 나타나리라 본다.>
어쩌다보니 말이 옆으로 새버린 것 같은데 마음을 나타내는 문자로 천부경에서는 일신을 의미하는 점(·)과 일신이 만들어낸 세계를 원(○)으로 나타내 ( )으로 표기하고 있다고 본다.
이는 땅중( )의 의미와 반은 상통 한다 보는데 땅으로 나타난 어떤 존재든, 어떤 사회든 일신점(·)을 통해 하늘과 연결된 진여(眞如)의 마음과 일신점(·)이 만들어낸 원(○)이 의미하는 테두리 안에서 이루어지는 생명의 마음은 두가지 마음이 섞여 있음을 나타내는 것이 인간을 포함한 개별적 존재들로 나타난 땅을 의미하는 ( )에 두개의 마음을 의미하는 가지모양을 붛여 ( )의 형태로 진여(眞如)와 생멸(生滅)의 두가지 마음을 함께 나타내는 문자적 의미로 천부경에서는 썼다고 본다.
<원효대사의 대승기신론도 천부경과 깊이 연관되어 있으리라 본다.>
따라서 대일신이 다스리는 하늘과 천일신과 지일신과 연결된 진여의 마음이 나타나는 통로를 일신점(·)으로 -<영혼을 의미하는 것으로 인간으로 치면 뇌와 DNA> 생멸의 마음을 나타내는 바탕을 육신이나 인간사회, 별이나 별의 사회를 의미하는 원(○)으로 나타내 두 가지 마음이 함께 있음을 문자적 기호로 나타낸 것이 천부경에 쓰인 ( )자로서 오늘날 한문에 나타나는 마음심(心)자의 원형이 되리라 본다.
그러므로 한자식 천부경의 기록과 고대문자로 기록된 천부경의 문자적 형태를 비교해 보면 남겨진 역사적 기록만으로는 잘 알 수 없는 숨겨진 역사적 비밀이 상당수 함축되어 있음을 깨닫게 되리라 본다.
그리고 천부경에 나타나는 마음에 대한 것은 크게 두 가지 양태로 나타 난다 보는데 하늘의 마음과 땅의 마음 즉 천지(天地)의 마음이 그것으로 천지는 땅이되 하늘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된 하늘과 바로 연결된 진여(眞如)의 마음임을 천부경은 말해주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인간은 천지(天地)와 달리 하늘과 곧바로 연결되지 못하고 한 다리 건너뛰어 천지를 통해 나타난 존재이므로 천지를 통해야 만이 하늘과 연결될 수 있음을 함께 나타내고 있다고 보는데 이는 본문의 인중 천지일( )의 구절에 잘 함축되어 있다고 본다.
따라서 진여(眞如)의 문과 바로 연결된 인간의 머릿골에 자리한 인일신의 자리를 통해 천지의 마음을 깨닫고 실천하게 되므로 비로서 인간이 하늘과 같아 질 수 있음을 말한 인중 천지일( )의 구절을 바탕으로 후대에 나타난 것이 그리스도나 부처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는 성자들의 형태들이라 본다.
<삼일신고에 나타나는 실천을 강조하는 구절을 찾아보기를 바라는데 고대 한국학은 깨달음만 있고 현실계와 연계된 실천이 없는 것은 참 진리가 아님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성자는 곧 자신에게 자리한 인일신의 자리를 통해 천지(天地)의 마음을 알게 되므로 비로소 하늘의 마음을 얻은 땅으로 나타난 천지인(天地人)의 우주에서 가장 귀한 존재임을 압축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 인중 천지일( )이라는 구절이라고 본다.
<우리의 삼태극 사상도 이런 관점에서 보아야만 제대로 이해가 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이 구절은 동·서문명 속에 나타난 성자의 개념을 만들어낸 근본 바탕이라고 본다.
대다수의 종교적 형태에서 나타나는 선악(善惡)과 같은 이원론적 마음에 대한 견해들은 곧 인일신의 자리로 이해할 수 있는 영혼과 육신으로 이해할 수 있는 오감의 느낌이 만들어 내는 것에 대한 가름이라 보는데 이를 단 한글자로 압축해 본다면 마음을 의미하는 천부경에 수록된 ( )자라고 본다.
그러므로 농은유집 기록본의 고대문자에 대한 이해가 제대로 이루어진다면 여러 가지 개념들에 대한 말의 혼돈이 정리되는 것은 물론 고대 동·서양학문의 성립배경에 대한 근본에 대해서도 윤곽이 자리 잡힐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20세기 서양학의 공세 앞에 동양학이 무기력하게 무너지게 된 주된 이유가 역사시대를 통해 축척된 문제들로 인해 현실성이 너무 지워지고 너무 신비적인 경향으로 흘러 버렸기 때문이라 보는데 이런 문제는 지금까지도 해결을 보지 못하므로 인해 오늘날에는 동양인들 자신들조차도 서양인들이 만들어낸 오리엔탈리즘 같은 편견에 물들어 동양학을 비하하는 웃지못할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고 본다.
이는 동양학이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는 것으로서 수천 년에 걸친 동양인들의 지혜가 담긴 동양학이 이대로 빛을 보지 못하고 사장된다는 것은 동양인들에게도 불행한 일이지만 다른 문명권의 세계인들에게도 매우 불행한 일이라고 보기에 인류의 소중한 유산으로 신비주의 적인 색체를 벗겨낸 동양학의 실체가 다시 한번 화려하게 부활해 인류문명의 발전에 기여해 주기를 간절히 바래본다.
하나 이런 말을 하고 있는 나 자신조차도 수천 년에 걸친 학문적 외곡으로 뒤덮인 동양학의 학문적 혼선을 바로잡을 만큼 되기에는 아직까지도 실력이 모자라기에 동양인들이라면 누구든 다 같이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힘을 보태어 주기를 희망한다.
오늘날 동·서문명을 막론하고 학문적 뒤틀림이 나타나며 가치적 혼선을 만들어 내고 있음은 국가 권력이 다수를 지배하고 통제하던 역사시대에 행해진 학문적 진실의 외곡 때문이라 보는데 문명의 기초가 만들어 지던 신화시대 때는 이와 반대로 다수의 개인들이 국가 권력을 만들어 내던 시기로서 지금의 민주주의와 비슷한 양태로 이해하면 되리라 보는데 역사시대로 넘어오며 국가 권력이 다수의 개인들을 지배하는 형태로 바뀌어 지면서 신화시대 때에 형성된 학문적 진실에 대한 외곡과 뒤틀림이 생겨나기 시작 했다고 본다.
이에 대한 문제들을 간략하게 예를 들면 오늘날의 서양학이 고대 서양인들이 남긴 흔적들인 유대인들이 신성시 여기는 ( )의 뜻 기호와 666의 숫자적 의미와 성경 속에 나타나는 여러 의미와 그 왜 서양인들이 남긴 여러 흔적들을 세계인들이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 논리로서 제대로 분석하고 시원하게 설명하지 못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고 보며 오늘날의 동양학이 무극과 태극, 음양오행과 팔궤, 역 등등의 동양학에 나타난 고대 동양인들이 남긴 여러 흔적들에 대해 세계인들이 수긍할 수 있는 보편적 논리로서 제대로 분석하고 시원하게 설명조차 하지 못하고 있음이 이를 증명한다고 본다.
이는 국가권력이 다수를 지배하고 통제하기 시작하는 역사시대에 행해진 학문적 훼손 때문이라 보는데 신화시대 때에 만들어진 고대 동·서양인들의 여러 남은 흔적들을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든 주된 요인이 되고 있다고 본다.
그 이유는 신화시대 때와 역서시대 때의 현실상황이 물과 기름 같은 서로 섞이기 힘든 성질로 나타나기 때문이라 보는데 다수가 권력을 만들어 내고 움직이던 민주주의 개념이 통용되던 신화시대 때의 학문적 성격과 국가권력이 다수의 개인들을 통제하고 지배하던 역사시대 때의 학문적 성격은 물과 기름 같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 본다.
그러므로 역사시대로 넘어오며 그 이전에 형성되어 있던 학문적 성과들은 심한 배척과 훼손을 입지 않을 수가 없었을 것이라 보는데 공자께서 도가 행해지는 요순시절을 그리워했다 던가 대인들이 사는 곳으로 가고 싶다던가 하는 말들이 생겨난 근본 이유들도 신화시대와 역사시대가 겹쳐지는 분기점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시대상황 속에서 심한 학문적 부딛힘과 갈등이 생겨나던 시기에 살았었기 때문이라 본다.
<공자가 그리워한 사람들은 아마 동이계열의 선조들을 지칭한 것은 아닐까 추측해 본다.>
그런데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유독 한민족에게서 만큼은 국가권력의 탄압 속에서도 신화시대 때의 학문적 논리들이 끈질기게 살아남아 그 명맥을 유지하며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 했다는 것으로 대진국(발해)을 끝으로 국가적 차원의 맥은 끊어 졌으나 민간을 통해 천부경의 우주론이 격암유록이라는 은유적인 방법으로 전해져 온 것이나 민간인들 중에서도 드물게 천부경을 해석하는 이가 있었다는 말들이 이를 뒷밧침 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 중 비록 야사이나마 고려 말 72현 중 몇 분일 것이라 본다.>
이것은 국가권력의 핵심세력들이 옹호하던 조선조 성리학에서도 충돌의 흔적이 나타난다 보는데 이기일원론과 이기이원론이 그것으로서 조선조를 지탱하던 유교적 신분사회의 존립자체를 뒤흔들 만큼 심각한 논쟁이었다고 보는데 신분은 천(天)이 정해주는 것으로 인간은 이를 얌전하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역사시대의 논리와 아니다 천(天)이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노력이 이를 정한다는 신화시대 때의 논리가 충돌한 흔적이 조선조 성리학에 나타나는 중요 논쟁이었다고 본다.
그 결과는 당연히 지배계급들인 사대부들의 승리로 끝났으나 이는 권려체계에 나타난 표면적인 결과일 뿐 민간에서 만큼은 아니었다고 본다.
그것이 현실세력으로 역사의 표면에 나타난 것이 동학농민운동 이었다고 본다.
<선교사들에 의해 전해진 천주교의 폭발적 신장은 이와 연관이 있으리라 본다.>
이런 흔적은 역사를 거슬러 가도 곳곳에 나타 난다 보는데 같은 역사시대라도 다른 동서양의 역사시대와는 좀 다른 각도로 우리 역사를 보아야만 한다는 것으로 신라부흥 초기 불법을 널리 편 왕으로 진흥왕과 법흥왕이 있는데 하늘과 천지(天地)를 대신해 인간세에 나타난 인신의 개념으로 과거에 나타난 부처와 미래에 나타날 미래 부처를 연결하는 현세의 부처로 불법을 널리 펴는 이가 곧 진흥왕과 법흥왕이라는 의미에서 불교식 표현인 전륜성왕이라 부른 이유와 왕이나 영웅들에 대한 민간인들의 신격화의 흔적들은 왕과 지도자를 바라보는 신화시대 때의 학문적 배경이 그런 데로 살아남아 상당한 영향력을 기지고 국가권력층을 압박하고 나름으로는 제약하는 민간인들의 잣대가 있었음을 보여주는 예라 본다.
<스님이라는 말도 신(神)님이 변화된 흔적이라 본다.>
이런 흔적은 주로 백제계에 의해 전해져 지금도 일본문화에 살아남은 신도의 여러 형태에서 나타난다 보는데 지난 몇 천 년 간 역사시대를 통해 행해진 진실의 외곡은 신화의 역사가 거의 지워지고 희미하게 전설 같은 형태로 남게 되는 결과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고 보는데 다행하게도 수천 년간 역사의 표면에서 사라졌던 한단고기라는 역사서와 신화의 역사를 관통하고 있는 핵심적 우주론인 천부경의 우주론이 세상에 나타남으로서 신화의 역사를 만들어낸 고대인들을 이해 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되었다고 본다.
그러므로 부족하나마 천부경의 우주론과 거기에 쓰여진 고문자들의 해독을 통해 뒤틀린 학문적 진실을 바로잡고 싶어 이런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인간세의 바른길이 어떤 것인지를 판단하는 몫은 내가 아닌 모두에게 맡기고자 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신화시대의 역사적 목표는 가장 밝게 영혼일치를 이룬 사람들인 그리스도나 부처와 같은 이들을 지도자로 받들어 그를 중심으로 천지(天地)와 같은 온전함으로 이루어지는 지상낙원과 같은 인간세를 만들어내는 것이었으나 역사시대로 접어들면서 특권의식에 사로잡힌 자들의 개인적 욕망을 이루기 위한 권력의 쟁취 대상이 되는 자리로 인일신의 자리에 대한 개념적 혼선이 일어나며 학문적 혼돈도 같이 심화되었다고 본다.
그런 이유로 오늘날 신화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핵심적인 한국학의 중심인 천부경의 우주론과 소도경전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에 까지 이르렀다고 보는데 삼신상제의 하느님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빠져버리면 고대 한국학은 성립자체가 불가능할 정도이나 이러한 핵심적 개념이 여러 이유에 의해 비틀려지며 학문적 혼돈과 뒤틀림이 생겨나 가장 중요한 인간은 없고 학문만 남아 있는 공허한 인간세를 만들어 내게 되었다고 본다.
그 중 인신의 개념이 가장 심하게 비틀려지는 시기가 역사시대라 보는데 누구든 삼신상제의 하느님과 통하는 인신지경에 이르면 그가 곧 그리스도나 부처와 같은 하느님의 대리인이며 인간세를 천국으로 이끌어 가야할 인일신이라는 의미가 비틀려짐으로 인한 결과로서 이는 역사시대에 나타난 소인배들이 벌려놓은 권력의 쟁탈전이 충분히 증명하리라 본다.
그러나 역사시대를 통해 권력을 쥔 자들의 이기심에 물든 학문적 잔재 물들로 뒤범벅이 된 오늘날의 잣대로는 천부경을 포함한 소도경적들로 대표되는 고대 한국학을 제대로 이해하기란 거의 불가능 하다고 본다.
다시 말해 지금까지와는 다른, 수천 년에 걸쳐 축척된 비틀린 잣대와는 완전히 다른 파격적인 새로운 잣대가 필요하다는 것으로서 나는 지금 그에 대한 시도를 하고 있는 것이다.
기존의 잣대로 풀 수 없다는 것은 바꾸어 말해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들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과감한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 아니겠는가?
참으로 힘들게 여기까지 논리를 전개해온 것 같다.
이는 고대 한국학의 이념적 바탕을 인간세에서 지우고자 한 권력자들의 음모 때문이라 보는데 자신들의 권력을 뒷받침 하고 있는 지배이데올로기와 정면으로 부딪히는 고대 한국학을 어느 권력자든 용납하기 힘들다 보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수천 년간 지속적으로 행해진 진실의 외곡은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어느 소리가 진짜이고 어느 소리가 가짜인지를 도저히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심각한 학문적 혼돈이 생겨나 지금의 지구촌을 뒤덮고 있기 때문이라 본다.
이런 학문적 풍토 속에서 고대 한국학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어 일반인들을 이해시킨다는 것은 사실상 매우 어려운 일로서 역사시대에 이루어진 진실의 외곡으로 인한 여러 학문적 개념들에 대한 혼선을 정리해 주지 않고서는 도저히 고대 한국학을 이해시킬 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했기에 정말 어렵게 여기까지 논리를 전개해 올 수 밖에 없었다.
가짜들이 판을 치는 세상에서, 대다수가 그것이 진실이라고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외곡상황을 뒤엎을 수 있는 확실한 무엇을 보여주지 않고 말만으로는 오늘날의 혼돈상황을 역전시킬 방법이 없다고 오래전부터 생각하고 있었으나 그 길이 보이지 않아 지난 세월을 정말 미친놈처럼 세상을 떠돌며 그 방법을 찾고자 애를 태웠었다.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나 자신과의 길고도 지루한 싸움의 길이었다.
다행히 운좋게 확실한 물증으로 손색이 없어 보이는 농은유집 기록본의 천부경을 최근에 대하고 나서 그 방법과 길이 보이는 것 같아 이제는 되었다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다.
그러나 고대 한국학에 대해 잘 모르는 상태에서 동양학의 핵심적 전달 매개인 옥편식 한문이 고조선에서 쓰던 문자적 의미체계와 상당히 다른 외곡으로 뒤범벅이 되어 있다고 주장한다면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사람은 거의 없으리라 본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상황도 마찬가지로서 한 번도 고대 한국학의 정수를 접해본 적이 없는 동양학자들과 일반인들에게 옥편은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것으로 인식되어 있을 것이라 본다.
그러므로 이런 권위에 도전한다는 자체가 대부분 한자로 기록된 동양학 전체에 대한 도전과 같아 보일 것이니 어찌 보면 미친놈으로 까지 볼 수도 있으리라 보는데 마치 철벽과도 같은 옥편의 권위에 어느 날 불쑥 막노동판을 전전하던 이름 없는 놈이 나타나 도전장을 내민다면 그 말에 귀를 기울일 사람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본다.
이미 지난 역사를 통해 수천 년간 기정사실화 되어 있는 것을 니가 뭔데 미친 소리를 하느냐는 핀잔을 듣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일 것이라 본다.
젊은 시절에는 이를 증명해낼 마땅한 방법을 찾지 못해 너무나 답답한 마음에 정말 외로웠었다.
세월이 흘러 오늘에 이른 지금 이 글을 쓰고는 있지만 과연 이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여 줄지는 알 수 없는 것으로서 다만 누군가는 그 일을 해 놓아야만 한다고 믿었기에 사람들이 어떤 반응을 보이든 나 자신에게 만큼은 후회 없는 인생이 되고 싶어 이 글을 쓰고 있다.
나중에 원문해석에 들어가 보면 알겠지만 고조선의 문자로 설계된 천부경과 한자의 형태로 기록된 천부경은 같은 의미를 나타내는 경전이나 문자적 의미는 상당한 차이가 난다는 것으로서 두 종류의 문자적 비교를 통해 오늘날의 옥편식 의미체계들이 상당부분 외곡 되었음을 충분히 증명할 수 있으리라 본다.
그동안 많은 분들이 천부경을 해석해 보려고 시도한 것으로 아는데 시중에 나와 있는 종류만 해도 꾀 많은 것으로 알고 있고 그 중에 두세 종류이상은 읽어보지 않아 나머지는 잘 모르겠으나 인터넷을 통해 대략 흟어 본바 그게 그거로 누구든 수긍할 수밖에 없는 보편적 논리를 이끌어 내지 못하고 해석서 마다 제각각으로 그 내용이 달라져 버리는 주된 이유가 한자식 문자체계로 기록된 천부경을 기본 텍스트로 활용했기 때문이라 본다.
이는 처음 천부경이 문자적 형태로 설계되면서 쓰인 고조선에서 쓰던 문자적 개념과 후대에 만들어진 한자로 쓰인 문자적 의미는 상당히 차이가 있기 때문이라 보는데 이미 문자적 의미체계가 상당부분 달라져 버린 옥편식 한자의 의미와 기록 형태로서는 도저히 천부경이 처음 설계 되면서 나타내고자 했던 의도를 제대로 살려내고 전달하기 힘들기 때문이라 본다.
다시 말해 81자자라는 고도로 압축된 문자로 설계된 우주론에서는 단 한자만 그 의미체계가 달라져도 전체적인 경전의 의미가 뒤틀릴 수도 있다는 것으로 한 글자가 아니라 경전에 쓰인 상당수의 문자적 의미체계가 처음 천부경을 설계하며 쓰인 고조선의 문자적 의미와는 상당히 다른 의미로 현재 쓰이고 있어 한자식 기록형태로서는 도저히 천부경의 핵심을 제대로 전달하기 힘들다고 본다.
그런 탓에 한자식 기록형태를 기본 택스트로 해서는 고대 동서의 문명적 흔적과 연계된 제대로 된 보편적 해석을 이끌어내기는 어렵다고 보는데 다소 장황하게 늘어놓은 앞의 글들도 이런 이유들이 상당부분 내포되어 있다.
과연 나 자신이 일반인들이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 논리로서 제대로 된 설명을 지금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 사설이 자꾸 길어지는 것 같다.
영혼이란 무엇인가?
동서고금을 통해 끈질기게 인간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써온 개념이라 보는데 아직까지 영혼이 무엇인가 하는 것에 대한 물음에 어떤 학문적 논리들도 제대로 된 시원한 답변은 없고 애매하게 처리하고 있다고 본다.
영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식으로든 설명을 해줘야 영혼을 정화하든 말든 할 것이 아닌가?
핵심적인 영혼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없으면서 영혼을 어찌하라 말라 쓸데없는 말만 많으니 나 같은 어린양과 중생들은 어찌하란 밀인가?
고대 한국학에서는 이에 대한 개념을 분명하게 내리고 있다고 보는데 대일신과 하늘이 변화해 생겨난 천지(天地)와 관련된 말이 영혼으로서 크게 보면 영은 천일(天一)신과 관련된 개념이고 혼은 지일(地一)신과 관련된 개념임을 고대 한국인들은 명확하게 그 개념적 정의를 내리고 있다고 본다.
이를 인간과 직접적으로 관련지어 비유하면 영은 태양과 태양계를 의미하는 천일(天一)신과 천계(天界)의 본뜸인 가장과 가정 또는 지도자와 국가로 비유할 수 있고 혼은 태양계를 구성하고 있는 지구나 달 같은 별이라는 위성을 의미하는 지일(地一)신과 지계(地界)의 본뜸인 DNA와 육신 또는 중력과 별로 비유할 수 있다고 본다.
따라서 영과 혼은 두 갈래의 길이 나타난다는 것으로서 태양으로 이해할 수 있는 천일(天一)신과 같은 만물을 소생시키는 조화로움이 있는 온전함이 나타나는 영의 길과 만물을 소멸시키며 서로 반목하게 만드는 영의 길이 있어 두 갈래의 영의 길을 만들어 내고 지구와 달로 이해할 수 있는 지일(地一)신과 같은 만물을 정성을 다해 밪치고 키워주는 지극함이 있는 혼의 길과 만물을 함부로 대하며 버리는 불성실함이 있는 두 갈래의 혼의 길을 만들어 내게 되니 이러한 영과 혼의 두 갈래 길이 있음을 문자적 형태로 나타낸 것이 천부경에 나타나는 바른길과 비뚠 길을 의미하는 정원과 비뚤어진 두 개의 원이 겹쳐져 그려진 ( )의 문자라 본다.
따라서 이를 한자식 의미인 둘레환(環)으로 이해해서는 안되는 것으로 영과 혼에 관련된 문자로 이해해야하며 읽는 것도 바른길 비뚠 길로 읽어야 만이 문자적 의미가 제대로 들어난다고 본다.
그러므로 고대 한국인들이 이해한 일신과 관련된 영의 개념은 가정을 가장 기본단위로 한 공동체와 관련되어 인문, 사회, 자연과학으로 이해할 수 있는 정치적 형태와 관련된 개념이고 혼의 개념은 개인과 관련되어 마음학, 몸학, 생각학으로 나타나는 개인적 수신과 관련된 개념이라 본다.
나중에 고대 한국학울 바탕으로 한 인문학에 대해 다룰 때 이에 대한 개념적 구분이 확실하게 들어 날 것이라 보는데 영과 관련된 개념은 너와 나라는 상대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집단과 관계되어 있는 인간적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정치적 형태를 만들어 내는 과학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치학으로 보면 되고 혼과 관련된 개념은 상대적 관계라기보다는 개별의 상태에서 만들어 지는 개인과 관련된 인간적 특성을 말하는 것으로 종교를 의미하는 수신과 관련된 인간학으로 보면 되리라 생각한다.
그러므로 고대 한국인들은 영과 혼의 개념을 천일(天一)신과 지일(地一)신이 다스리는 천지(天地)와 연계시켜 이해했다고 보는데 두 갈래의 영혼의 길에 서 있는 것이 인간으로서 대일(大一)의 하느님과 하늘의 마음이 그대로 투영되어 나타나는 천지(天地)와 같은 조화와 교화의 지극함이 나타나는 인간의 길은 하느님과 나의 영혼이 일치된 바른길이고 그렇치 못한 인간의 길은 하느님과 나의 영혼이 일치되지 못하는 비뚠 길임을 ( )이라는 천부경의 문자를 통해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고 본다.
이와 관련된 문자기호가 서양에서는 유태인들이 신성시 여기는 두 개의 삼각형이 겹쳐져 그려진 ( )의 문자기호라 보는데 일신과 관련된 문자기호를 고대 한국학에서는 각(△)이라는 삼각형으로 표기하고 있음이 소도에서 쓰여진 것으로 추정되는 원방각(○,□,△)경에 백(100)개의 문자수로 나타나고 있다고 보기에 바로선 삼각형은 대일의 하느님과 하늘로 바로 통하는 바른 영혼의 길이고 거꾸로 선 삼각형은 대일의 하느님과 하늘로 통하지 못하는 비뚤어진 영혼의 길임을 나타내어 늘 경계하는 마음으로 성자들이 전해준 하느님의 가르침을 잊지 말라는 것이 유태인들이 신성시 여겨온 두 개의 삼각형이 겹쳐져 그려진 ( )의 문자기호의 의미라 본다.
그러므로 ( )의 기호는 영혼과 관련된 문자기호로 이해해야 하며 천부경에 쓰인 ( )의 문자와 관계된 기호로 보기에 동서문명이 만나는 통합점도 결국은 천부경으로 대표되는 고대 한국학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 고대인들이 남긴 동·서양의 여러 흔적들에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선과 악이라는 이원론적 구조나 리기일원(理氣一圓)이니 리기이원(理氣二圓)이니 하는 동서양의 여러 철학적 개념들도 따지고 보면 단 한글자로 압축할 수 있다고 보는데 바른길 비뚠길을 의미하는 ( )의 문자나 영혼의 두 갈래 길을 의미하는 두 개의 삼각형이 겹쳐져 그려진 ( )의 문자기호라 본다.
이는 영혼이 주도하고 있는 만물의 변화를 의미하는 뜻으로 천부경에 쓰인 ( )자에도 나타난다 보는데 인간의 길과 연관되어 후대의 동서양학에 나타나는 선신과 악신, 천사와 악마 같은 여러 개념들이 나오게 되는 근본배경이 되는 논리적 근거를 보여주는 문자라 본다.
그리고 말이 나온김에 유태인들에 대해 몇마디 더 할까 하는데 그들이 섬기는 여호와는 인일신의 개념에 해당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처음 전해준 첫 조상신으로 그들의 바이블인 구약의 기록중 특히 창세기에 나타나는 여러 흔적들은 정황상 유태인과 한민족은 같은 조상을 뿌리로 두엇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본다.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떨어져 살다보니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 피부색과 골격과 같은 유전적 특징은 상당히 달라졌을지 몰라도 정신적 뿌리는 매우 비슷하다 보기에 유태인들도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고자 한다면 한민족과 마찬가지로 한단고기와 천부경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꼭 필요할 것이라 본다.
오늘날 가자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태들이 그들의 조상신인 여호와께서 전해준 하느님의 말씀을 제대로 실천하고 있는 길인지를 깊이 생각해 주기를 이 지면을 빌어 간절히 청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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