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존재 원리인 생리적, 심리적 리듬과 연관시켜 논리를 전개해 본다면 아기는 임신초기부터 시작해 태어날 때까지 엄마의 몸으로부터 독립한 이후 살아남기 위해 습득해야할 생리적 리듬과ㅡ<기혈로 나타나는 무의식적인 생명력을 말하는 것으로 태양계로 이해할 수 있는 천간과 지지로 나타나는 천지와의 관계에서 형성되는 수직적인 정보 즉 내부적인 몸의 생리력>ㅡ심리적 리듬의ㅡ<기억과 기억의 연계능력으로 나타나는 공간감각을 말하는 것으로 자신의 몸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수평적인 외부세계의 정보에 대한 감지 능력과 대응능력 즉 외부적인 몸의 심리력>ㅡ틀을 엄마의 몸을 통해 얻게 되기에 유전정보의 발현에 결함이 없고 엄마의 생리리듬 즉 건강상태에 큰 문제가 없는 한 생리리듬의 발현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나 아기의 심리리듬의 기본적인 성향은 엄마가 아기를 임신한 상태에서 겪게 되는 심리상태에 따라 태어난 이후의 아기의 공간감지 능력과 대응능력은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으로 고대 선조들이 태교를 강조한 이유는 이 때문이라 본다. 즉 심리리듬의 기본성향이 갖추어지는 중요한 시기가 임신기간과 태어난 이후의 몇 달 사이라는 것으로 엄마의 몸을 통해 전해지는 외부적인 공간적 자극들은 엄마의 심리리듬에 그대로 반영되어 아기의 몸에 전달됨으로 심하면 공간 감지를 거부하는 자폐증상으로 나타나거나 심한 성격장애와 같은 것을 가져오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임산부의 심리적 안정은 매우 중요한 태교의 기본으로 최소한 임신에서부터 아기가 태어난 몇 달 사이까지의 임산부와 아기엄마는 최대한의 심리적 안정을 유지해야 만이 최상의 심리리듬의 기본 골격을 아기에게 만들어줄 수 있게 된다고 본다. 왜냐하면 아기가 평생 써먹을 수 있는 공간력의 기본 골격을 만드는 시기는 임신기간에서 태어난 몇 달 사이라는 것으로 이 시기에 아기가 공간적인 직간접적 접촉을 통해 심리적인 기본 틀을 만들어내는 가장 큰 영향력을 가진 사람은 사실상 엄마이기 때문이다. ㅡ<백지위에 그려지는 밑그림 같은 것으로 임신휴가나 출산휴가는 우수한 미래 인재를 길러내는 무형의 자산이므로 임산부과 아기엄마에 대한 대우는 무엇보다 우선할 줄 아는 것이 문화국민의 자세임을 선조들의 교육적 흔적들을 통해 깨닫기를 바란다.>ㅡ 물론 아빠도 있으나 이 시기에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사람은 결국 엄마이다. 그러므로 서양식 태교와 유아교육은 참고는 하되 우리 전통의 태교와 일곱 살 이전까지의 아기교육을 재조명해보며 이에 관한 임상연구를 같이 진행하는 것도 좋으리라 본다. 참고삼아 선조들이 태교의 중요성과 유아기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해 국가적인 차원에서 법으로까지 재정해 선포할 정도로 과학적인 교육의 흔적은 고구려와 백제의 뿌리인 부여로 까지 거슬려 올라가 문헌적 기록으로 남겨져 있다는 것을 알기를 바란다.
앞글에서 설명한 고대한국학의 천지(天地)의 개념 적용을ㅡ<“원방각의 개념적 적용“ 참조>ㅡ 통해 한단고기나 삼국유사에 나타나는 한웅(桓雄)께서 개국한 신시의 이야기를 해 볼까 하는데 차이나식 천지(天地)의 애매한 개념으로 보면 하늘에서 내려온 하나님의 자식인 한웅(桓雄)이 하계의 땅에 내려와 나라를 연다는 내용으로 역사기록이 아닌 신화적 기록으로 해석될 소지가 매우 높게 된다. 그러나 고대한국학에 나타나는 천지(天地)의 개념을 적용하게 되면 이는 분명한 역사기록이라는 논리적 근거가 충분하게 확보된다고 본다. 즉 신시건국에 나타나는 천지(天地)의 개념을 인간집단과ㅡ<천(天)>ㅡ 집단의 구성원들에게 ㅡ<지(地)>ㅡ적용하게 되면 당시로서는 한인(桓因)의 한국(桓國)이외에는 인천(人天)에 해당하는 국가라는 형태의 문명적 사회는 거의 없던 시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으로 한국(桓國) 이외에는 작은 마을단위정도의 삶의 형태만 있었을 뿐 문명적 요소를 갖춘 사회집단으로 보기에는 미미한 인간 삶의 형태만 있었다는 것을 한국(桓國)을 다스리던 한인(桓因)의 아들인 한웅(桓雄)이 상계인 천계에서ㅡ<한국(桓國)>ㅡ 하계인 지계로 내려왔다는ㅡ<한국(桓國)이외의 지역>ㅡ역사적 기록으로의 해석이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桓國)을 통한 인류문명의 전파가 일어나고 있음을 나타내는 고대의 역사적 기록이 신시건국(神市建國)의 기록이라 본다. 그러므로 태호 복희씨, 여와씨, 신농씨, 치우씨, 공공씨, 창힐씨 등등의 인류문명의 초석을 닦았던 신화적 인물들은 이러한 문명전파 초기에 등장한 인물들을 담고 있다고 본다. ㅡ<인류문명의 발전이 과거 어느 시점에 동시다발적으로 세계 각지에서 폭발적으로 일어난 현상을 설명해주고 있다고 본다.>ㅡ 따라서 차이나식 동양학에 나타나는 천지(天地)의 애매한 개념에서 벗어나 고대한국학에 나타나는 천지(天地의 개념으로 조금만 시각을 달리 해도 동양고전의 기록에 대한 해석의 방향은 기존의 해석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것으로 이 사람이 옥편을 픽션이라고 주장하며 고대한국학을 강조하고 또 강조하는 이유를 주목해 주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상식적으로 생각을 해 보아도 한단고기를 포함한 동양고전에 나타나는 기록들은 그 기록을 남긴 고대인들의 시각에서 자신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는 것으로 당시의 고대인들의 시각으로 된 해석을 해야 하지 그보다 한참 뒤에 형성된 차이나식 동양학의 시각으로 고대인들의 표현을 이해하려 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본다. 쉽게 말해 아버지 세대들이 쓰던 말을 적은 일기와 같은 기록을 자식세대인 아들이 보고 자기들 세대에서 쓰는 말의 잣대로 아버지세대의 말의 의미를 해석하려는 것과 마찬가지가 지금 현재 동양고전에 대한 해석의 주류라는 것으로 이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하지 못한 자의적인 해석에 머물 수밖에 없게 된다고 본다. 오늘날의 우리사회에서도 세대차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부모세대와 자식세대간에 쓰는 말의 의미가 상당히 다른데 짧게는 몇 백 년 길게는 몇 천 년의 시차를 가지고 있는 동양고전의 기록들을 자식세대로 비유할 수 있는 차이나식 동양학의 우주관과 잣대가 담긴 문자적 의미로 해석하는 것은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고 본다. 그것도 차이나식 동양학이 성립되는 시기에는 문화적 이질성도 상당한 상태였다는 것으로 요즘으로 치면 미국과 우리나라만큼의 문화적 차이가 있는 외국이 차이나문화권이었음을 감안한다면 한단고기를 포함한 우리와 관련된 동양고전에 대한 해석만큼은 우리 선조들의 우주관적 시각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은 기본적인 학문적 상식이라고 본다. 그러나 이 사람이 그 동안 차이나식 우주관과 우리 고대 선조들의 우주관에는 넘기 힘든 엄청난 차이가 있음을 여러 가지로 밝혔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중요한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체 차이나식 우주관의 시각으로 이 사람의 글을 대하는 것 같아 답답하다. 이제는 별 도리가 없을 것 같다. 기존의 왜곡된 옥편식 한자의 의미체계로는 동양고전 특히 한국학과 관련된 모든 기록에 대한 해석은 옥편이란 픽션의 연장선상이라는 것을 눈앞에서 직접 증명해 보이는 수밖에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한 가지 위안이 있다면 인터넷에 글을 올리며 그동안 잊고 살아오며 식어있던 열정과 투지가 점점 살아나는 것을 느끼기에 내게는 정말 고마운 일인지도 모르겠다. 여러분들에게 한 가지 물어보고 싶다. 기독교를 받쳐주는 기둥이 무엇이라 보는가? 예수? 교황? 고 김수환 추기경? 이혜인 수녀? 아니다. 기독교를 받쳐주는 절대적인 기둥은 성경이다. 성경의 권위가 무너지는 순간 기독교는 그날로 끝장이 난다고 본다. 그러니 성경의 말씀이 어쩌고저쩌고 하는 소리를 입에 달고 사는 것이 아니겠는가? 오늘날 유럽의 기독교 교세가 형편없이 무너진 이유도 슈메르에 대한 연구가 깊어지며 성경에 대한 권위가 상당수 실추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 마찬가지로 지금의 동양학을 받쳐주는 절대적인 기둥은 공자도 맹자도 아닌 옥편이다. 그러므로 역사를 포함한 모든 동양학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옥편이란 놈만 잡으면 게임은 끝난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장을 진두지휘하고 있는 장수를 잡아야지 군졸 몇 놈 잡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부의 단편적인 어수선 한 글이기는 하나 이 사람의 글을 읽어온 분이라면 성경만큼이나 동양학에서 권위를 가진 옥편이란 바이블에 조금식 금이 가고 있음을 느낄 것이라 본다. 따라서 올해 안에 최소한 논리적으로 라도 옥편이란 지휘관을 확실하게 잡는 것이 이 사람의 일차적 목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