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한국학으로 보는 생리와 심리 5> 타고난 생리적인 본능적 에너지를 순화시키고 다듬어 이성적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방법은 인간학적 교육을 통해서 가능한데 이성적 능력은 지성적 능력처럼 한 번 획득하면 평생을 써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또한 단기간에 습득이 가능한 것도 아니기에 어릴 때부터 부모와 주변사람들을 통해 단계적으로 자연스럽게 익혀 가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으로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라는 속담은 이성적인 공부와 관계된 속담으로 한 번 형성된 생리적인 특성은 좀처럼 바꾸기 힘이 든다는 것을 압축해놓은 속담이라 본다. 고대선조들에 비하면 부족하다고 보나 촛불집회를 통해 세계 최고의 수준이라 자부해도 될 만큼 보여준 감동적인 국민들의 이성적 능력은 거의가 정규학교공부를 통해 얻어진 것은 아니라고 보는데 오늘날의 학교공부란 거의가 심리와 관련된 지식의 습득을 통해 지성적 능력을 키우는 곳이지 생리와 관련된 이성적 능력을 키우는 장소는 아니라고 본다. 즉 생리적인 이성적 능력을 배우고 키우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태교에서 시작해 성년이 될 때까지 부모와 주변사람들을 통해서라는 것으로 가장 큰 롤 모델은 부모라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들 부모세대들의 자식을 위한 자기희생의 고귀함을 마음 아프게 보고 자란 자식들은 당연히 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고 자기도 모르게 부모와 비슷한 이성적 능력을 습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을 전통이라 해야 할지 잘 모르겠으나 종교니 사상이니 하는 모든 논리적 판단 이전에 각 집단이 나름으로 가진 전통 문화 속에는 이런 이성적 능력을 키우기 위한 선조들의 깊은 배려가 숨겨져 있음을 잘 이해해야 한다고 본다. 즉 각 집단의 일상적인 삶속에 배인 전통문화들은 이성적인 잣대로 보아야 이해가 되는 것으로 이를 지성적인 잣대로 보아서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또한 이성적 능력을 가정을 통해 잘 습득했다고 해도 홀로서기를 해야 하는 사회구성원으로 진출한 이후에는 두 가지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자신이 획득한 이성적 능력을 더욱 확대하고 키워가며 학교교육을 통해 배운 지식을 활용한 지성적 능력을 마음껏 발휘해 집단의 번영을 이끌어 낼 수 있는 민주적인 사회적 환경과 그렇지 못하고 어떤 외부적인 압박에 의해 자신이 획득한 이성적 잣대와는 다르게 생리적 에너지를 표출해야하고 지성적 능력도 집단의 번영과는 다르게 발휘할 수밖에 없는 독제적인 사회적 환경에 부딪치게 된다. 따라서 지금과 같은 국가권력 구조에서는 누구든 선택의 갈림길에 설 수밖에 없는데 사람으로 살 것인가 짐승으로 살 것인가 하는 선택을 강요받고 있는 것이 자본주의니 공산주의니 하는 서양식 인문학을 바탕으로 세워진 지금의 각 국가의 현실이라 본다.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낸 공동체일수록 구성원들은 행복할 것이나 짐승으로 살도록 강요되는 사회를 만들어낸 공동체일수록 구성원들의 생리적 고통은 늘어날 수밖에 없고 일상적 삶의 행복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지금의 우리사회는 어떠한가? 미안합니다. 심리에 대해 다루려고 했는데 쓰다보니 이렇게 되네요
Contact Us : 고객문의센터, Tel: 대표 201-674-5611
E-mail: newyorkkorea77@gmail.com, newyorkkorea@naver.com, 빠른카톡상담ID : newyorkkorea
미국최대 대표포털 뉴욕코리아는 미국법률변호사고문 및 미국저작권법의 보호를 받고 있으며, 컨텐츠 및 기사의 무단 전재 및 재배포를 금합니다.
Copyright (c) New York Korea, INC. News Media Group in USA.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