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천부경에 대한 현재의 시각
천부경은 고대인들의 우주에 대한 생각들을 오랜 시간에 걸쳐 압축해 놓은 우주론이라 보기에 천부경을
설계한 고대인들의 기본적인 생각의 틀을 먼저 이해하지 않고는 보편적인 해석의 틀을 찾아내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농은유품 기록본이든 소도경전 본훈의 기록본이든 문자적 해석만으로는 고대인들이 공통적으로 소유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우주론적 시각을 이끌어 내기에는 불가능 하다고 본다.
거기다 81자로 설계된 초소형 경전의 삼분지일을 넘는 문자가
숫자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어 숫자적 의미가 빠진 문자적 풀이만으로는 천부경을 설계한 고대인들의 우주론적 시각을 이끌어 내기에는 역부족이라 판단한다.
그동안 적지 않은 분들이 천부경에 대한 해석을 시도 했던 것으로 아는데 문자적 의미에만 치우치거나
숫자적 의미에만 치우치는 해석을 하다 보니 해석하는 분들마다 해석이 달라져버려 이제는 이해하기 힘든 주술서 같은 것이나 한단고기 기록 자체가 후대에서
조작한 것이라는 쓰레기보다 못한 취급을 받는 지경에 이른 것이 지금의 천부경과 한단고기의 위치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라고 본다.
나 또한 어느 정도는 수긍하는 것으로서 누구든 반박하기 힘이 들 정도로 일관되고 보편 타당한 합리적인
천부경에 대한 해석을 이끌어 내지 못했던 그 동안의 결과만으로는 당연하다고 본다.
따라서 천부경이 민족의 삼대 경전이다 아니다 라는 주장을 하기에 앞서 어느 누구도 부인하기 힘든 객관적이고
보편적인 시각에서 풀어보는 해석이 우선이고 나머지는 그 다음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말을 하는 나 자신 또한 아직까지는 고대인들이 설계한 천부경의 우주론에 대한 완벽한 이해는 많이
부족한 상태라 생각하기에 될 수 있는 한 객관적인 시각을 유도하는 선에서 논리를 전개할까 한다.
그런 의미에서 농은유품 기록본은 천부경의 객관적 해석에 대한 결정적인 단서를 많이 내포하고 있다고
보는데 문자의 배열을 통해 나타나는 의미와 문자의 배열 속에 숨겨진 도형적 의미 등등이 그것으로서 한단고기 소도경전 본훈에 기록된 한자식 기록은
이것이 무시되어 있어 애초에 이 경을 설계한 고대인들의 의도가 처음부터 어긋나 버렸다고 본다.
ㅡ< 물론 이것 외에 농은유품 기록본에 쓰인 은문의
문자적 의미도 오늘날 쓰이는 한자체로 바뀌어지며 문자적 의미와 문자적 형태와 문자적 배열 등이 상당수 비틀려 나타난다고 본다.>ㅡ
이미 첫 단추가 잘못 끼워진 상태에서 출발하는 한자식 기록은 정본 경전으로서의 위상을 상실했다고 보는
것이 보다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천부경의 우주론을 이해하는 첫 번 째 관문이자 결정적 열쇠가 되는 문자배열을 통해 나타나는
의미와 문자배열 속에 숨겨진 도형적 의미를 무시하고 단순한 문자의 나열만 있는 서술 형태로 기록했다는 것은 기록자가 정본텍스트가 내포한 문자외의
문자배열과 문자배열 속에 숨겨진 도형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들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당시의 학문적 배경에서는 굳이 문자배열과
숨겨진 도형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우주론적 틀을 강조하지 않아도 정본텍스트와 뜻이 통하는 천부경의 우주론적 틀이 보편화 되어 있었던가 둘 중의
하나라 본다.
그러므로 오랜 세월이 흐른 오늘날 와서는 문자배열과 숨겨진 도형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가 빠져버린
한자식 기록형태 만으로는 천부경의 원래의미를 해석해 내기에는 상당한 무리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본다.
거기에 더해 농은 유집 기록 본에 쓰인 문자적 형태와 의미 마저도 한자식 형태로 바뀌어 지며 오늘날에
와서는 상당수 변질된 흔적이 나타난다고 보는데 이중 삼중의 교묘한 포장 속에 가려져버린 한자식 기록형태로서는 천부경의 원래의미를 제대로 알아내기에는
역부족이라 본다.
따라서 천부경의 해석에 결정적 열쇠가 되는 문자배열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와 그것을 담고 있는
숨겨진 도형적 의미가 무시된 그것에 더해 문자 자체가 가진 의미마저도 상당수 변질된 한자식 기록물에 의지해 오늘날 통용되고 있는 왜곡된 옥편식
한자의 의미체계들로 풀어내는 해석의 형태들이 보편적인 객관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라고 나는 본다.
그러므로 단순한 문자적 풀이밖에 되지 못하는 오늘날 통용되는 한자식 의미체계로는 도저히 고대 인류문명의
발상지들과 그들 문명에서 나타나는 여러 흔적들을 연계시켜 천부경을 해석해낼 수 있는 이론적 틀을 찾아내지 못하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한자식 기록은 고대문자와 비교해보는 선에서 참고는 될 수 있을지 몰라도 엄밀한 의미에서 천부경을
이해하는 고대 한국학의 정본경전의, 기본텍스트로서의 위상을 상실했다고 보며 잘못된 텍스트를 붙잡고 아무리
애정을 쏟아 부은들 제대로 된 결과가 나올리 없다고 본다.
물론 천부경에 대한 각별한 관심에서 애정을 쏟아 부은 많은 분들의 순수한 열정만은 높이 평가하나 열정만으로는
극복해내기 힘든 문제들이 한자식 기록 형태에 여러 가지로 이미 내포되어 있었음을 미처 알아보지 못했던 분들의 노력에 나는 안타까움을 느낀다.
나 또한 한자식 기록을 처음 대했을 때 그 속에 무언가 심오한 무엇이 담겨있다는 사실을 직감적으로
느끼기는 했으나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을 느끼고 있었는데 농은 유품의 천부경을 대하면서 그 부족함이 무엇이었는지를 확연하게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다시 말해 농은 유품 기록본의 천부경의 형태는 문자적 배열만으로도 이미 그 속에 도형적 의미를 함께
내포하고 있다는 것으로 문자적 배열자체가 81개의 네모난 칸으로 나타나는 숨겨진 도형을 동시에 나타내고
있음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따라서 문자적 형태만 기록되어 있다고 해서 문자배열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들을 제대로 보지 못하게
되면 천부경에 대한 보편적인 해석 자체가 어려워짐으로 이점을 꼭 상기시키고자 한다.
다시 말해 문자적 배열을 통해 나타내고자 하는 숨겨진 의미들을 제대로 이해해야만이 천부경의 설계원리와
천부경이 고대 인류에게 어떤 위상을 가졌었는지를 증명할 수 있게 되고 나아가 동서고금에 나타난 인류문명의 여러 흔적들을 연결시킬 수 있는 소통의
핵심 고리가 천부경의 우주론임을 증명할 수 있게 되기에 그를 통해 인류문명의 소통과 통합에 대한 실마리를 지금의 세계학계에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나는 보기 때문이다.
오늘날 첨예하게 부딧치며 지구촌의 갈등을 만들어 내고 있는 각 집단들의 가치적 신념들은 자신들의 문명을
만들어낸 근본 뿌리를 잃어버림으로서 제각각으로 갈라져 세계사를 하나로 묶어 바라볼 수 있는 통찰의 혜안을 가려버렸기 때문이라 본다.
따라서 서로 다른 것 같아도 그 뿌리를 거슬러 가면 모두가 한 근원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밝혀 주어야만이
인류문명을 하나로 묶어 생각할 수 있는 지구촌 적 통찰의 혜안들이 생겨나게 할 수 있다고 나는 보고 있으나 현재의 학문적 성격과 풍토 속에서는
그것을 현실화 시킬 수 있는 뽀족한 방법이 없다고 판단하고 있던 차에 고대 인류가 하나였던 신화시대 때의 우주론적 결정체라 할 수 있는 농은 유품에
기록된 은문(갑골)천부경을 이년 전 쯤 대하고 나서야 나는
그 방법을 찾아낼 수 있는 길을 발견할 수 있었던 것이다.
따라서 농은 유품은 한자식 기록으로 변형되기 이전의 천부경의 원본 텍스트를 싣고 있는 매우 중요한
기록물이라 보는데 이 기록물은 고려 말 학자였던 농은 민안부님의 유품으로서 이 기록물이 세상에 나타남으로서 그 속에 수록 된 천부경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아무리 못 잡아도 최소한 칠백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음이 이 분의 유품을 통해 입증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ㅡ< BC 1328~1401. 이성계의 위화도 회군으로
인한 조선건국에 반발해 은거했던 고려 말의 72현 중 몇 분이 천부경을 해석했다고 하는데 농은 선생도
이들과 교류가 있었을 것으로 본다.
물론 은문(갑골)천부경을
위서로 판단하는 사람들에게는 아무리 말해봐야 헛소리로 밖에 보이지 않을 것이라 보는데 지금 현재 지구촌의 사람들이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것을
은문(갑골)천부경의 우주론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면 막무가내식의
위서로 몰아 붙일 억지 주장은 더 이상 펼칠 수 없을 것이라 본다.>ㅡ-
따라서 천부경 자체가 후대에서 조작한 것이라는 최악의 가정을 하더라도 최소한 칠백년 전쯤에 조작되었다는
결론은 누구도 부인하기 힘들게 되었다고 본다.
글을 전개해 가다보면 알게 되겠지만 지금으로부터 칠백년 전 쯤 고려 말에 당시의 누군가가 21세기적 지금의 시각으로 보아도 감탄할 만큼 매우 세련된 정교하고 치밀한 우주론적 모델을 만들어 내었다는 사실은
그 자체만으로도 놀라운 일인데 그만한 통찰력을 가진 사람이 당시의 역사적 무대 위에 한 번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천부경 하나만 달랑 조작해 남겼을
뿐 그 외는 특별한 흔적이 거의 나타나지 않고 있다는 것을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
다시 말해 당시의 학문적 배경에서는 농은 유품 속에 수록된 은문의 문자들은 거의 쓰이지 않거나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시의 학문적 주류 속에서는 농은 유품에 수록된 천부경의 은문(갑골) 문자들은 거의 주목받지 못하던 사장된 문자들이라는 결론을 이끌어
낼 수 있게 된다.
이것은 앞뒤가 잘 맞지 않는 것으로서 농은 선생이 자신의 저서 속에 이에 대한 글을 남기고 있다고
보는데 천부경은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던 옛 선인들이 남긴 흔적으로서 지금은 아무도 그 깊은 뜻을 알 길이 없으나 옛 선인들이 단단한 바위에 새겨
남길 만큼 중요시한 기록물이라 보기에 자신 또한 자신의 글 속에 이를 남긴다고 적고 있다.
ㅡ< 문자적 형태가 갑골문과 다소 다른 이유는 돌에
새긴 문자를 탁본으로 떠서 전해져 내려오던 과정 중에 문서로 옮기며 다소 오류가 생겨났다고 본다.
예를 들면 ( )과 (
)또는 ( )과 ( )의 문자적 형태 >ㅡ -
그러므로 농은 선생의 기록이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서 그에 대한 판단을 내린다면 농은유품 속에 남겨진
은문(갑골)천부경은 당시의 시대적 배경에서는 거의 사라져버린
문자와 우주론이라는 것으로 인쇄술이 대중화 되지 않았던 고려 말에 종이도 아닌 돌에다가 문자를 새겨 남긴다는 것은 당시로서도 왼 만큼 중요한 기록물이
아니면 엄두도 못 냈을 것이라 본다.
그런데 고려 말도 아니고 고대에 돌에다가 문자를 새겨 남긴다는 것은 왼 만큼 중요한 기록물이 아니고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며 이 정도 수준의 우주론을 돌에 새겨 남길 정도면 엘리트계층의 상당한 지원과 오랜 학문적 연구 성과가 축척되어 있지 않고는
불가능 했을 것으로 본다.
나아가 은문(갑골)천부경의
문자적 형태를 보면 신라시대에도 거의 쓰이지 않았던 문자들로서 이 문자들의 성립배경은 최소한 신라시대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가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앞에서 언급한 몇 가지 가정을 근거로 해본다면 천부경의 우주론이 보편적으로 통용되던 시대는
삼국시대 이전인 고조선쯤으로 올려 잡을 수 있는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는데 이것은 뜻있는 학자 분들이 증명해 주기를 바란다.
하여간 천부경이 고려 말에 조작된 위서인지 아닌지를 따지기 이전에 중요한 것은 천부경의 우주론이 가진
내용으로서 그 내용이 담고 있는 것이 지금의 현대문명을 있게 한 고대 인류문명을 만들어낸 뿌리로서의 거대담론을 담고 있음을 밝혀 낸다면 그동안의
여러 엇갈린 주장들을 가라 않히며 고대 인류사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이끌어낼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거의 주목받지 못하고 사장되다 싶이 한 한단고기라는 역사서도 신화시대의 인류역사의 전개 흔적을
더듬어 볼 수 있는 현재로서는 유일하게 남은 중요한 기록물로 세계학계의 주목을 받을 수 있으리라 나는 판단한다.
소도경전 본훈은 한단고기 태백일사에 수록된 것으로서 고대문명을 만들어낸 고대인들의 우주론을 집약해
놓은 것으로서 당시로서는 최첨단의 정신적 과학적 결과물이라 나는 보는데 태백일사에 따르면 천부경은 한인하나님이 다스리던 천제한국에서 말로서만 전해지던
것이나 한웅 대 성존이 신지 혁덕에게 명하여 녹도의 글로서 이를 기록하게 했다고 한다.
그런데 단군세기에서는 일세 단군왕검께서 신지에게 명하여 참글을 만들어 이 문자로 천부경을 기록했다고
하며 고운 최치원 선생은 옛 비석에서 이를 발견해 첩으로 남겨 세상에 전해지게 했다고 하는데 고운 선생이 발견한 옛 기록은 단군왕검 제위 때에
만들어진 참글이라 본다.
ㅡ<신지라는 이름은 벼슬이름이라 보며 참글은 삼세
단군 가륵님 제위 때 만들어진 가림토(다)와 세종대왕 제위
때 만들어진 훈민정음 창제의 원리와도 깊숙이 관련되어 있으리라 본다. >ㅡ
따라서 천부경은 오랜 옛날인 한국 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오던 우주론으로서 지금으로 치면 최고의 엘리트
집단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던 소도라는 -< 청동기 시대 유행했던 수두라는 종교형태가 곧
소도 집단이라 나는 본다. >- 종교나 정치집단에서 가장 중요시 했던 기본텍스트로 나는 보는데
지금으로 비유하면 바티칸과 같은 핵심기관을 중심으로 성당과 같은 하부조직들이 연결되어 백성들을 교화하고 다스리는 체계로서 성행했을 것으로 본다.
ㅡ< 지금의 종교형태와 다른 점은 정치적 역할까지도
함께 병행 되었던 것이 다르다고 본다. >ㅡ
그러므로 천부경은 지금으로 치면 당연히 성경이나 불경과 같은 위치를 차지했을 것으로 보며 그에서 파생된
소도경전들 또한 같은 위치를 차지했을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일반백성들이 널리 볼 수 있도록 가장 핵심적 경전인 천부경을 돌에 새겨 여러 곳에 남겼을 것으로
추정하는데 소도와 관련된 세력들이 역사의 중심에서 밀려나며 오랜 시간이 흐르다 보니 여러 가지 원인에 의해 비문조차 거의 사라져 버렸으리라 보는데
다행히 남아 있던 비문을 최치원 선생이 발견했고 이를 배껴서 첩으로 남겨 세상에 전했을 것으로 본다.
농은유품 은문(갑골)천부경은
최치원 선생의 것과는 다른 계통으로 전해진 경전이라
나는 판단한다.
따라서 농은유품 기록본은 후대의 사람들이 전한 한자식 기록으로 변형되기 이전의 원본텍스트로서의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보는데 소도경전 본훈에 수록된 천부경 이외의 나머지 경전들이 어떤 원리에서 설계되었는지를 추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잣대를
제공하고 있다고 본다.
ㅡ<아직까지 최치원 선생의 기록본은 보지를 못해 말하기가
좀 그런데 그런 것이 남아 있다면 은문(갑골)천부경과 마찬가지로
한자식 기록으로 변형되기 이전의 문자적 형태를 볼 수 있는 중요한 기록물 중 하나라 본다.>ㅡ
즉 천부경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파생된 나머지 경전들은 천부경의 우주론에 나타나는 설계원리를 그대로
적용하고 있다는 것으로서 천부경의 우주론과 설계원리를 이해하게 되면 소도경전 본훈에 수록된 나머지 경전들이 나타내고자 하는 핵심적인 의미와 설계원리가
그대로 들어 나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소도경전 본훈에 수록된 경전들은 소도가 크게 성행했을 당시의 우주론적 핵심을 담고 있는 매우
중요한 기록물로서 그 중심에는 천부경이 있고 나머지 기록물들은 천부경을 보완하는 가지에 해당한다고 본다.
그러므로 천부경이 몸통이라면 나머지는 가지들로서 서로 보완적 관계에 있다고 보는데 핵심적 몸통에 해당하는
천부경의 우주론이 한자식 기록으로 바뀌어 지면서 나머지 경전들에 대한 연계적 고리가 끊어지게 되었다고 보는데 다행히 얼마 전에 농은유품 기록본이
세상에 나타남으로서 소도경전 본훈의 의미와 가치를 새롭게 바라볼 수 있는 길이 열렸다고 나는 본다.
물론 나머지 경전들도 한자식 기록으로 바뀌어 지면서 원래의 의미를 제대로 살리지 못했을 것으로 나는
추정하는데 경전을 구성하고 있는 글자 수 만큼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므로 경전자체가 가진 글자 수 만으로도 어느 정도는 원래의 설계의미를 추론해
낼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참고삼아 덧붙인다면 천부경의 우주론과 연계된 경전으로 고조선 이후에는 고구려를 건국한 고주몽성제가
남긴 개물교화경과 고구려 때 을밀 선인이 지은 다물 흥방가와 을지문덕장군이 남긴 삼신일체경과 남북국 시대 대진국 즉 발해를 건국한 대조영님이 남긴
어제찬과 대진국의 문적원감 벼슬을 가졌던 임아상님 정도가 있다고 보는데 이후로는 거의 나타나지 않다가 조선조에 이르러 남사고 선생이 쓴 것으로
알려진 격암유록이 나타나게 되는데 기록방식이 너무 암호 같은 형태로 기록되어 있어 천부경의 우주론을 이해하지 않고는 잘 알아볼 수 없는 탓에 예언서
정도로 취급받게 된다고 본다.
ㅡ<물론 대학, 중용, 시경 등등의 대다수의 동양고전도 천부경의 우주론과 연계된다고 보면 된다.>ㅡ
이것은 당시의 조선사회가 성리학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학풍 이외에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만큼 서슬 퍼런
사회이다 보니 간접적인 은유적 방법으로 밖에 기록할 수 없었을 것으로 생각하는데 후대의 사람들이 천부경과 깊이 연관된 기록물이라는 사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므로 인해 천부경과 연계시키지 못하고 해석에 대한 엉뚱한 여러 가지 가설들이 생겨나게 되었다고 본다.
격암유록의 핵심은 천부경의 우주론에 대한 것이라 보나 수수께끼 같은 은유적 방법으로 밖에 달리 표현할
수 있는 길이 없다보니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제대로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고 본다.
ㅡ<사상통제가 극심한 몇몇 국가들을 떠올려 보라.
고려 말의 72현의 은거도 표면상으로는 조선건국에 반발한
사건처럼 보이나 내면적으로는 이와 관련이 있으리라 본다.>ㅡ
그러나 어떻게 되었든 극히 소수의 인맥을 통해서라도 고대한국학의 전통적 맥이 조선시대까지 이어지고
있었다는 것으로 그 학맥이 완전히 끊어진 것으로 보아야 하는 시기는 그리 길지 않을 것으로 본다.
나중에 글을 전개해 가다 보면 이해가 되리라 보는데 천부경을 바탕으로 한 고대 한국학은 봉건적인 신분계급사회에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지금의 시민사회의 민주주의 개념보다 더한 내용을 품고 있다가 보니 봉건신분계급사회로 역사가 진행되면서 지배층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철저하게 지워지게 됨으로 동서의 역사 속에서 급속히 사라지는 비운을 맞게 되었다고 본다.
이것은 우리역사라고 예외일 수는 없다고 본다.
다만 세계사에서 가장 늦게까지 그 영향력이 사라지지 않고 끈질기게 남아 있었다는 차이일 뿐이라고 본다.
그것이 동학으로 다시 불씨가 살아나게 되었으나 기득권 세력들의 못난 이기심으로 민족의 문제를 민족 자체내에서 해결하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왜세를 끌어들임으로 인해 모처럼 살아난 불씨마저 무참하게 짙밟혀 꺼져버리는 안타까운 상황을 맞게 되었다고 본다.
우리 역사로서는 매우 불행한 일이었다고 나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