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속 강조해온 말이지만 우리말 하늘과
동양학에 쓰이는 천(天)의 개념을 같이 보면
안됩니다.
동양학에는 우리말 하늘의 개념이 거의
없습니다.
천자문에도
하늘천(天)
땅지(地)
검을현
누르황으로 나오는데 천부경의 우주론으로 봤을 때 땅천(天)
땅지(地)이지 하늘천(天)이 아닙니다.
원방각(○,□,△)의 개념적 적용이라는 글과
문자배치도로 나타나는 우주이야기라는 글과 바둑판의 설계원리라는 글에서도 분명하게 이를 밝혀 놓았습니다.
또한 천부경의 첫 문장과 끝 문장에
쓰인 두 개의 무자도 하늘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첫 문장의 무자는 하늘 바닥인 순수질료를 끝 문장의 무자는 하늘 바탕인 순수형상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하늘을 근본과 바탕으로 하늘
속에서 현상계로 나타나 변화하고 있는 땅의 이치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 나머지 문자들의 의미입니다.
이러한 구조를 나타내는 것이 숨겨진
도형과 81자의 문자입니다.
즉 81자를 담고 있는 숨겨진 도형은 하늘을
나타내는 것으로서 백 개의 꼭지점은 하늘의 근본인 순수질료를 백 개의 꼭지점으로 이루어진 전체적인 도형은 하늘의 바탕인 순수형상을 의미하고
81자의 문자는 땅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첫 문장의 무자는 순수질료인
하늘의 근본을 끝 문장의 무자는 순수형상인 하늘의 바탕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하늘을 근본과
바탕으로 생겨나 변화하고 있는 땅의 이치를 설명한 것이 81자의 문자입니다.
그러므로 천부경에 쓰인
천지(天地)의 문자적인 개념은 모두 우리말 땅과
관련된 문자로 이해해야 합니다.
삼일신고 첫 장인 허공편도 우리말
하늘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 땅천(天)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글이 한자로 바뀌어 기록되며
이러한 혼돈이 생겨났다고 봅니다.
<대진국에서는-(발해)-
자신의 문자를
만들어 썼다고 하는데 건국초기 우리고대사에 대한 복원에 총력을 기울인 흔적으로 보아 대부분의 고대 사서들은 대진국이 망하며 고려에 귀의한
유민들이 가져온 것으로 보기에 이 때 한자로 바뀌어지는 과정에서 문자적인 혼선이 생겼으리라 본다.>
그러므로 땅천(天)의 개념은 사회와 관련된 개념으로서
전자의 사회인 원자도 땅천이고 인간의 사회인 공동체도 땅천이고 원자의 사회인 별도 땅천이고 별의 사회인 태양계도 땅천이고 태양계가 속한 은하계도
땅천입니다.
그리고 땅지(地)의 개념은 사회를 이루는 개별자와
관련된 개념으로 원자의 사회를 이루는 전자가 땅지이고 인간의 사회를 구성하는 각개 인간들이 땅지이고 별을 이루는 원자들도 땅지이고 태양계의
위성들도 땅지이고 은하계를 구성하는 모든 별들도 땅지의 개념이 됩니다.
이러한 관계에 대한 이해에서 십진수가
만들어 졌으리라 봅니다.
또한 창세기에 나오는 태초가 곧
확률론적 상태인 하늘을 의미하고 말씀은 확률론적 상태의 하늘이 변화하여 결정론적 상태로 들어난 땅을 의미하는 것으로 이해해야만 왜 그런 표현을
썼는지 이해가 가능하다고 봅니다.
따라서 천부경에 쓰인
천지(天地)라는 문자는 모두 우리말 땅과 관련된
개념임을 알고 천부경의 해석을 대해 주실 것을 바랍니다.
◆
불가에서는
천수경을 외우기 전에 정구업 진언이라며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를 세 번 외우게 하는데 특별한 설명은 없고 그냥 지은 업을 지우게
해달라는 진언정도로 이야기하고 있다고 본다.
불가에서 나름으로 설명한 것을 보면
이것을 깨끗하도다 깨끗하도다 그렇듯 깨끗하니 모든일이 원만히 성취되어지이다와 길상존 이시여 길상존 이시여 극 길상존 이시여 그 길상이 원만히
성취되게 하소서 등과 같이 지난 인생의 구업을 참회하고 관음보살님에게 복을 기원하며 소원성취를 비는 특별한 주문정도로 인식하고 있다고
본다.
천수경은 매우 중요한 경전중의 하나로
불가에서는 다루는데 그런 중요한 경전의 맨 앞에 나오는 진언이라면 천수경의 전체적인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하며 아무런
이유 없이 천수경의 맨 앞에 이 진언을 쓰지는 않았을 것이라 본다.
<한자식 표현에는 수자가 닦을
수(修
)로 쓰여 있다.>
이 진언은 복을 구하기 전에 먼저
지은 업을 참회하고 청정한 마음을 가지라는 의미라 보는데 그럼 업은 무엇으로 생겨나게 되는가?
이는 너와 내가 만들어내는 기본적인
인간의 심리적인 양태인 너가 가진 팔쾌수와 내가 가진 팔쾌수가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것이 역(易)이라는 64쾌의 변화양태로 나타나는 인간세이니
그러한 사바세상에서 살아오며 지은 구업을 참회하고 청정한 마음으로 관세음보살님께 복을 빌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보지
않는가?
따라서 수자를 닦을
수(修)가 아닌 우리말 숫자를 나타내는 수의
의미로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불가에서의 설명을 보면 수리 수리에서
앞에 쓰인 수리를 깨끗하도다와 길상존이시여로 뒤에 쓰인 수리를 깨끗하도다와 길상존이시여로 대비하고 있고 수수리를 그렇듯 깨끗하니와 극
길상존이시여로 수수리 사바하를 모든 일이 원만히 성취되어지이다와 그 길상이 원만히 성취되게 하소서 등으로 대비 한다 보는데 개인적인 견해이나
본질에서 많이 벗어난 해석이라 생각한다.
실제 산스크리트어를 영어로 표기한
것을 보면 Suri
Suri Mahsuri Susuei Svaha로 표기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우리말
숫자를 의미하는 수와 거의 동일함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에 쓰인 수자는 닦을 수(修)가 아니라 우리말 숫자를 의미하는
수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오랜 시간동안 범어 그대로
변형되지 않고 오늘날까지 전해온 산스크리트어인 수리 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는 우리말의 연구에 많은 단서를 주리라 본다.
■
삼태극
회원이신 호두까기님과 댓글 중 새로 첨가하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따로 추가 글을 달아 봅니다.
우선 수저에서 저에 대한 우리말의
사용인데 저는 무언가를 헤아린다는 의미가 있다고 말했는데 저울이라는 말이나 제다라는 말이나 제대로 하라 등등과 같은 말이 저와 관련되어 현제
쓰이고 있다고 본다.
그리고 첨수도에서 발견된
“돈”자와 “노‘자에 대한 의견인데 산스크리트어
그대로 전해져 오고 있는 수리수리 마하수리 수수리 사바하의 의미처럼-<팔쾌와 역은 고대한국인들의
기호문자라는 글 참조>-
어렵게 생각할
필요도 없이 우리말 그대로 ”돈“자는 재물을 의미하는 우리말 돈으로
”노“자는 고대 농경사회에서는 재물보다 더
귀한 것이 쌀일 것이고 쌀이 나오는 곳이 논이니 우리말 논으로 이해할 수도 있지 않겠는가?
실제적으로도 “노:”의 사용은 우리말 노적가리라는 말이나
노들강변 할 때 노들 같은 말에 쓰이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노적가리에서 노는 논을
의미하고 적은 쌓인다는 의미이고 가리는 가지런하다는 의미가 된다 보기에 논에 가지런히 쌓여있는 것이 볏집단이라는 의미로 노적가리라는 말을 썼다
보는데 어릴적 마을 어른들은 이 말을 수시로 썼고 나 또한 어른들을 흉내내어 이 말을 썼다.
그리고 노들이라는 말에서 노는 논을
의미하고 들은 평평하고 너른 땅을 의미하니 노들은 곧 논이 들처럼 넓게 펼쳐져 있는 땅이라는 뜻이 되고 강변은 말 그대로 강 옆이니
노들강변이라는 말은 넓은 논과 강사이라는 말이 된다고 본다.
이런 몇 가지 예만 들더라도 첨수도를
누가 만들어 썼는지 증명되는 것이 아니겠는가?
차이나 쪽에서는 해독불가의 문자라고
하는데 우리말을 우리글로 표현한 것이니 당연히 그들의 언어나 왜곡된 한자의 의미로는 해독이 불가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은문천부경도 우리말이 내포하고 있는
우리정서로 대해야 하나 차이나인들의 문자의미와 그들의 정서로 기록된 동양학으로 대하니 이해가 불가할 수밖에 없게 된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