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일생이 전후라는 시간의 변화과정이라면 한 인간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다른 인간들의 다양
한 삶의 양태들은 시간의 변화과정을 좌우로 펼쳐놓은 공간적 상태가 된다.
그러므로 자신의 일생 속에는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좌우에 펼쳐진 각가지 인간양태들의 경우의 수가
다 들어 있다는 것으로 여건만 주어지면 언제든 자신의 일생에서 나타날 수 있는 가능성을 늘 가지고 있기
에 자신의 심리적 특성이 어떤 식으로 형성되어 있든 나도 그럴 수 있다는 타인에 대한 관대함과 이해가
있어야 한다.
그러므로 서로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그 때에야 진정으로 타인을 볼 수 있고 그들이 나를 비추는 거울임을 서로가 깨닫게 되어 몸가짐이 조심
스러워지고 겸손해지니 그 사이에 하느님의 의지가 들어나게 된다.
대학 중용편의 혈구지도란 이런 원리에서 나온 것으로 여섯 꼭지점 즉 전후(前後), 좌우(左右), 상하(上
下)의 중앙에 나를 배치해 나를 둘러싼 타가 곧 나를 비추는 거울임을 깨달아 하느님의 의지를 갈고 닦으
라는 소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중용(中庸)의 마음을 지닌 채 나를 비추는 타를 보고, 타에 비친 나를 보며 자신을 갈고 닦는 수
신을 실천함으로서 온전한 일신의 자리인 부동심을 갖게 된다.
이러한 상태는 온갖 세상의 어려움 속에서도 스스로를 지키며 얻은 하느님의 의지임으로 수신의 완성태
에 가까운 하느님의 장성한 자식에 해당한다.
그러므로 천부경에서 말하는 무진본(無盡本)이란 어린 아기의 상태로서 앞으로의 험난한 인생의 여정을
거치며 타고난 본성을 잃을 수도 있고 지킬 수도 있는 가능성상에 있는 불완전한 상태를 말하는 것이고 천
부경에서 말하는 부동본(不動本)이란 인생의 여정을 거치면서 스스로의 본성을 지키며 완성된 하느님의
장성한 자식이니 곧 성인이며 그리스도며 부처의 자리로서 공(工)적 완성의 상태가 된다.
이것은 개인의 수신의 형태로서 인문학이란 주제중 인간학에 속하며 다른 하나는 각개 구성원들의 인간
학적 자기완성의 의지가 삶을 통해 흔들리거나 길을 잃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동원해 도움을 주고자 형성
된 것으로 이치학에 속하는데 문화와 관련된 인문과학과 정치와 관련된 사회과학과 경제와 관련된 자연
과학이 이에 해당하게 된다.
우리의 선조들께서 무엇을 목표로 역사를 꾸려 왔는지 천부경의 가르침인 무진본과 부동본의 의미만 제
대로 알아도 지금의 현대사가 얼마나 꼬여 있는지 알게 될 것이라 본다.
참고로 유교의 중요 경전 중 하나인 중용(中庸)의 문자적 의미만 제대로 알아도 위에서 말한 혈구지도가
천부경의 우주론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 본다.
옥편식이 아닌 우리식 한자풀이로 보면 중용(中庸)의 문자적 뜻은 삼신하나님의 자식으로 완성되어 널
리 그 쓰임을 다하는 길 정도로 풀 수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