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 다룬 <그림3>과 <그림4>는 고대인들의 우주관을 압축해 놓은 문자배치도로서 주변사물과 관계된 형이하학적인 문자외의 정신과 관련된 형이상학적인 고대문자가 만들어지는 핵심적 뼈대라 보는데 처음에는 기하학적인 그림으로 나타나다가 점차 문자적 형태로 변화되었다고 본다.
그러나 고대인들이 만들어 쓴 기하학적 문자나 상형문자를 이해하는데 있어 정신적인 부분은 거의 고려하지를 않고 주변사물과 관계된 형이하학적인 개념으로만 문자적의미를 분석하려는 경향이 강하게 나타나는 것이 오늘날의 학문적 풍토라 보는데 이는 알게 모르게 원시, 봉건, 현대와 같은 도식적인 서양식 역사관을 바탕에 깔고 고대사를 바라보기 때문이라 본다.
이는 매우 위험한 발상으로서 과거로 갈수록 미개인이라는 부정적인 시각을 조장하는 원인이 된다고 보는데 의식주와 관련된 자연과학 분야에서는 이런 시각이 맞을 수도 있으나 나머지는 아니라고 본다.
따라서 쌀이나 빵과 관련된 의식주가 나아졌다고 행복한 삶이고 이상적인 인간세라고 볼 수는 없다는 것으로 인생에서 가장행복한 시기는 특별한 경우이외에는 대개가 유년시절을 꼽을 것이라 본다.
아이에게 밥과 빵만 잔뜩 안겨준다고 아이가 행복해 할 수는 없으며 아이에게 배만 부를 정도의 쌀과 빵이면 충분하다.
그것보다는 나머지 요소가 더 필요한 것이다.
경우는 좀 다르더라도 고대와 현대를 바라보는 시각도 이와 마찬가지로서 현대인들만 생각하는 힘이 있고 고대인들은 생각이 별로 없는 밥만 먹는 인간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는 것으로 알게 모르게 심어진 서양식 역사관의 폐해는 과거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게 만드는 원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본다.
과거든 현대든 인간이 사는 형태는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기에 과연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를 분석하고 판단해 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으로 인간인 나를 중심으로 이에 대한 기준을 정해야 하나 오늘날의 기준은 인간인 나는 빠지고 너무 의식주와 관련된 쌀과 빵에만 집착함으로 인간세가 더욱 각박해지고 살아가는 재미와 행복을 느끼기 힘든 상태로 점점 깊숙이 가라않고 있다고 본다.
스스로 생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점차 늘어나고 있는 현실이 이를 충분히 증명하고 있다고 본다.
이야기를 앞으로 돌리면 <그림3>의 논리를 담고 있는 문자는 천부경이나 가림토나 그 왜 몇 몇 문자 이외에는 크게 쓰여진 흔적이 없어 보이고 단편적인 신화적 형태로 전승되는 정도라 보는데 <그림4>는 매우 광범위하게 정신과 관련된 그림문자나 상형문자를 만들어 내는 가장 기본적인 논리적 배경으로 쓰이게 되었다고 본다.
그 중 가장 대표적으로 오늘날 쓰이고 있는 것이 불가에서 쓰이고 있는 (卍)의 기호문자와 기독계열에서 쓰이고 있는 (╋)의 기호문자라 본다.
따라서 (卍)의 기호문자는 극을 의미하는 원방각(○,□,△)을 의미하는 기호문자로서 천일신(天一神)과 지일신(地一神)이 다스리는 천계(天界)든 지계(地界)든 유기적인 연기적 관계로 원방(○,□)이라는 양대 극을 사이에 두고 하나의 세계가 돌아가고 있음을 나타내는 그림문자로 보기에 극(極)을 의미하는 (卍)의 기호를 하늘과 같은 극(極)이 없는 상태로 직선화시키면 (╋)의 기호문자가 되고 극(極)이 없는 상태인 (╋)의 기호문자를 땅과 같은 극(極)이 있는 상태로 곡선화 시키면 (卍)의 기호문자가 된다.
따라서 (卍)의 기호문자는 땅과 관련된 기호문자이고 (╋)의 기호문자는 하늘과 관련되어 있는 기호문자로서 (╋)의 기호문자는 <그림3>의 논리와 관련되며 (卍)의 기호문자는 <그림4>의 논리와 관련되어 있다고 본다.
즉 하늘은 무한적이다.
따라서 원방각(○,□,△)이라는 극을 정하기가 어렵다.
그러나 땅은 유한적이다.
그러므로 원방각(○,□,△)의 경계가 명확하게 들어난다.
따라서 원방각(○,□,△)의 극을 정하기 어려운 하늘은 무한적인 의미를 부여해 (╋)의 기호문자로 원방각(○,□,△)의 극이 확실하게 나타나는 땅은 유한적인 의미를 부여해 (卍)의 기호문자로 표시했다고 본다.
이는 기독계열과 불가계열의 종교적인 논리를 살펴보면 그 차이가 확연하게 나타나리라 본다.
그러므로 이런 차이는 어떤 것을 기준으로 인간문명에 적용할 것인가 하는 우주론적 차이에서 나타난 것이지 단순하게 농경생활과 유목생활이라는 저차원적인 시각으로 보아서는 안 되리라 본다.
그러나 둘 다 인간의 시각에서는 무한적인 의미로서 무한적인 하늘은 물론 십진수의 연기적인 고리로 나타나는 땅 또한 수직수평의 무한연기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 우주이기에 그 끗을 어찌 함부로 말할 수 있겠는가?
여기에 대해 좀 더 다룬다면 나를 기준으로 했을 때 세포는 방(□)으로 지일(地一)과 관계된 DNA의 세계이며 육신은 원(○)으로 천일(天一)과 관계된 내부 뇌의 세계이다
이는 생리적인 현상으로 나타나 유기적인 연기성으로 나의내부는 돌아가게 된다.
그러나 한 차원 올라가면 내 육신은 방(□)으로 지일(地一)과 관계된 내부 세계가 되며 공동체는 원(○)으로 천일(天一)과 관계된 지도자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라는 관계가 된다.
이를 올려잡으면 공동체는 방(□)으로 지일(地一)과 관계된 내적 세계가 되며 지구촌은 원(○)으로 천일(天一)과 관계된 외적세계가 된다.
그리고 자연계, 생태계 등등으로 수직적 수평적 연기의 고리가 형성되게 되기에 땅에 기준한 불가의 논리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방대한 논리를 만들어 내게 된다.
팔만대장경이 그 예가 아닌가 본다.
그러므로 땅으로 나타난 존재들은 극이 만나는 경계를 기준선으로 내적으로는 원(○)이라는 천(天)의 개념이나 외적으로는 방(□)이라는 지(地)의 개념이 되기에 파동과 입자라는 물질의 이중성에 대한 현대물리학의 또 다른 표현이 고대인들의 수적논리로 만들어진 십진수라고 본다.
그러므로 현대물리학과 고대문명의 논리가 사이좋게 만나는 일이 생겨나는 원인도 결국 이런 이유 때문이라 본다.
그러나 오늘날의 현대인들이 물리학을 통해 발견만하고 있을 뿐 현대문명과 연계시켜 제대로 써먹지 못하고 있는데 비해 우리가 미개하다고 생각한 고대인들은 이미 수 천 년 전에 이러한 우주의 원리를 이해하고 문명발전의 토대로 현실세계에 썼다는 사실을 우리는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그 남은 흔적들이 천부경이나 십진수 등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지구촌에 남은 여러 흔적들이라 본다.
따라서 원시와 현대라는 오늘날의 잣대가 과연 정당한지를 한번쯤 깊이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논리가 조금 벗어났다 싶은데 원방각(○,□,△)의 기하학적 표현이 <그림4>로서 하늘을 의미하는 (╋)에 땅이라는 원방각의 극(極)을 설정하게 되면 왕(王)자가 만들어 지게 된다.
따라서 왕(王)자에서 위의 극(極)은 국가라는 원(○)의 공동체가 되고 아래의 극(極)은 공동체를 구성하는 개인들인 방(□)의 개념이 된다.
그러므로 가운데 수평선은 당연히 개인과 집단의 변화를 이끌어 내는 각(△)이라는 지도자를 의미하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왕(王)자의 의미는 일즉다 다즉일(一則多 多則一)이 의미하는 유기적인 상태로 돌아가는 온전한 공동체를 만들고자 하느님을 대리하는 인간세의 인일신(人一神)을 의미하는 자리로, 고대인들이 만들어 낸 그림문자에 그 뿌리를 두고 만들어진 문자로 본다.
무(巫)라는 개념도 이승이라는 원방(○,□)의 극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공(工)자이고 좌우에 배치된 두 개의 사람인(人)자는 구천구지(九天九地)라는 말에 나타나는 저승의 사람을 의미하는 뜻으로 산자와 죽은자를 연결하는 매개자로 요즘으로 치면 무속에 나타나는 무당을 나타내는 의미로 썼을 것이라 본다.
그러나 별 생각 없이 그냥 생각 가는 데로 대략 해본 말이라 확신은 할 수 없으나 갑골문이나 골각자등과 같은 고대문자들 중 상당수는 <그림3>과 <그림4>를 기본으로 한 그림문자들이 꾀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정신과 관련된 형이상학적인 고대인들의 문자는 대부분 문자배열로 나타나는 <그림3>과 <그림4>를 기본으로 만들어 졌다고 보며 이것을 기호화 시켜 오늘날 까지도 널리 쓰이고 있는 것이 앞에서 거론한 기독교의 대표적인 의미체인 (╋)과 불교의 대표적인 의미체인 (卍)의 기호문자라 본다.
덛붗이면 각(△)은 중심자리를 의미하기에 바로선 각(△)은 선신 또는 일신의 하느님과 일치하는 올바른 영혼을 의미하게 되고 거꾸로 선 각(▽)은 악신의 개념 또는 일신과 일치하지 못하는 비뚠 영혼을 의미하게 되므로 인간세에 크게 두 종류로 나타나는 영혼을 결합시키면 유태인들이 신성시 여겨온 그림기호인 솔로몬의 별이라는 기호문자가 나타난다.
그러나 인간은 천지(天地)와 달리 두 갈래의 길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고 양극(兩極)을 왔다 갔다 하기에 고대인들이 쓰고 있는 그림기호 중 각(△)을 의미하는 삼각형모양은 모두 중심자리인 일신과 관련되어 그 적용대상에 따라 조금식 의미가 달라 진다고 본다.
그러나 이는 적용대상에 대한 구분일 뿐 일신 또는 삼신상제, 삼위일체 등과 같은 신의 논리에서도 들어나듯 고대인들이 생각한 각(△)으로 표현되는 신을 모두 다 같은 신으로 보았다고 본다.
다만 소우주에 생겨난 인간계는 하늘과 바로 연결된 천지(天地)와는 달리 한 다리 건너뛰어 천지(天地)로부터 생겨남으로 인간 속에 내재된 일신은 천일신(天一神)과 지일신(地一神)과는 달리 불완전한 상태로 나타나기에 천일신(天一神)과 지일신(地一神)과 내가가진 인일신(人一神)이 일치하는 삼위일체를 이루기가 몹시 힘든다고 보아 인간세에 아주 드물게 나타난 성자들을 삼위일체와 거의 근접한 가장모범적인 인간상으로 보아 추앙되었다고 보는데 오늘날 어떤 식으로 그들을 이해하고 있든 고대한국학에 나타나는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삼위일체(三位一體)에 그 논리적 기반을 두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신화시대는 일단 제외시키더라도 역사시대에 나타난 석가, 예수, 무하메드, 공자, 노자----- 등등의 각 민족들이 신격화 시켜 받들고 있는 성자들에 대한 이해의 근원은 모두 천지인(天地人)이라는 삼위일체(三位一體)의 논리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고 본다.
삼위일체(三位一體)를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동학의 인내천(人內天)이 아닌가 생각한다.
참고삼아 삼위일체의 근본이 우리말 땅이 의미하는 천지인에 뿌리를 두고 있기에 하늘과 천지인이라는 땅에 대한 명확한 개념적 구분을 해야 고대한국학을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는 것을 알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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