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정영
한 장 한 장 나를 뜯는다, 뜯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낱장으로 풀려있는 나는 어디에도 없다
햇살이 부족한 날은 생활이 새거나 내 안의 다른 性
이 불만을 터뜨린다 11월에는 얇아진 나를 날려 보내고,
앓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입술에 힘을 주기도 했다
때로는 그녀의 독설에 나는 한꺼번에 뜯기기도 했다
눈물이 없는 날들은 넘겨지지 않았다
양면 복사된 서류처럼 내 생의 몇 장은 이미 입구가
뜯어져 쓸모없어졌다 표지가 두꺼운 그녀는 본론이 없었다
12월은 내가 다 뜯기기에 밤이 길었다 그래서 밤마다
나의 흔적을 지우기로 했다 내 안의 그녀가 나 대신
뜯기기도 했다
내게 서문을 맡겼으나 남아있는 그녀가 없어 쓰지 못했다
.
이 시가 당신의 오늘을 명명백백하게 각성케할 것이다. 귀하디 귀한 설법이다. 당신의 인생이 달력 한장 한장처럼 뜯겨지며, 당신은 날마다 무슨 생각을 하였는가, 당신이 삶을 쫓아가는 것인가, 사는 날이 풍족하여 뜯기면 뜯기리라 방관할 것인가, 시인은 말한다. 당신 인생의 숫자에 대해, 그리고 이미 제한된 횟수 만큼만 허용된, 당신의 인생이 한권의 일력이라는 것을 두들겨 깨운다. 오늘들은 특별한 날들! 설령 당신의 오늘이 매번 같은 부피와 분량으로 거기 그대로 놓여져있을 것이라는 것 또한 한낱 위안일 뿐, 시인은 “한 장 한 장 나를 뜯는다, 뜯는데도 소리가 나지 않는다 낱장으로 풀려있는 나는 어디에도 없다”라고 설한다. 결국, “내게 서문을 맡겼으나 남아있는 그녀가 없어 쓰지 못했다”그렇게 된다는 것을! 이 시 한편의 설법에 두 손 모으고 머리를 백번 끄떡이지 않을 수 없다. 자 당신의 오늘이 뜯겨진다. 부질없는 것에 격투를 벌이지는 않았을까? 자신의 인생이 뜯겨나가는 줄도 모르고, 잉여의 생이 남아 도는 듯이? 깊이 반성한다. 좋은 시 한편을 선사의 설법처럼 고이 달게 받는다.
<신지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