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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의 시
물에 대한 사소한 변론
이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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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도 때론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제 호흡의 표징 몇 자를 남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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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통각이 없는 시간들.
모든 사물은 그저 멀리 있는 상징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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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하루에도 수백 번 씩 제 존재가 바뀝니다.
때론 동물이었다가 때론 식물이고
때론 명징했다가 때론 무질서합니다.
나 또한 상징에 불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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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너무 빨라서
자꾸 안에만 있게 됩니다.
스스로 사랑하고 스스로 이별하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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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바라지 않고
아무 것도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내 걸음의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다만 술에 취해 찡그린 제 얼굴이
당신의 기억에 남을까 염려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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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말과
위선에 대해 번민합니다.
별은 늘 다르게 보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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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동안 숨어 있던 마음의 보풀이
비늘처럼 떨어집니다.
입김을 불면 그대로 내 살들이
냄새를 풍기며 날아갑니다.
비린내가 가득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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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심화(心畵)가 아름답다. 내면 의식의 흐름이 선명하게 무늬를 그린다. 존재가 흘러가는 마음의 향방이나 '마음의 보풀이/ 비늘처럼 떨어지'는 것을 여기선 볼 수 있다. 보이지 않는 미세한 감각의 속곳을 열고 들여다보는 기쁨이 여기 있질 않은가.
이재훈 시인은 강원 영월 출생. 1998년『현대시』로 등단. 시집으로<내 최초의 말이 사는 부족에 관한 보고>가 있으며, 현재 [현대시] 편집장, [시와 세계] 편집위원이며, 중앙대와 건양대에서 강의함.
<신지혜 시인>
웹사이트; www.goodpoem.net
이메일: shinjihyepoe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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