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시인선 0193 장요원 시집 우리는 얼룩
우리는 얼룩/ 장요원/ (주)천년의시작
B6(신사륙판)/ 120쪽/ 시작시인선(세트 0193)
2015년 11월 9일 발간/ 정가 9,000원
ISBN 978-89-6021-248-0 / 바코드 9788960212480 04810
❚신간 소개❚
시작시인선 193권. 201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한 장요원 시인의 첫 시집이다.
장요원의 가장 특징적인 창작 방법론은 묘사이다. 그래서 그의 시편들을 읽는 것은 정밀한 풍경화를 감상하는 과정이다. 그의 시적 묘사에서 심리적 거리는 매우 일관되고 엄정하게 유지된다. 그래서 그의 시적 풍경에는 주관적 정감이 최대한 배제되어 있다. 다시 말해, 그의 시 세계에는 시적 자아의 미적 주관성이나 의지가 거의 드러나지 않는다. 그의 시 세계는 정서적 울림보다는 가치중립적인 사물성에 가깝다. 이 점은 그의 시 세계에서 시적 대상의 “본색”(「본색」)을 직시하는 풍경의 현상학에 충실하도록 한다. ‘무엇인가를 위한 의식’에 편향되지 않는다. 다만, 물자체의 본질과 존재성을 지향한다.
시 「운동장」에선 “여자가” “째깍째깍 소리가 나도록 돌고” 있고 “남자가” “반복적으로 앞지”른다. 운동장이 마치 둥근 시계 같다. 여자가 분침이라면 남자는 초침이다. “플라타너스들”은 “시계의 숫자판”이다. “모르는 사람”과 “아는 사람”이 모두 “다정하게 뒤를 따”른다. 이러한 분주한 움직임은 “운동장”이 항상 “팽팽하게” “구겨지지 않도록” 끌어당기는 동력이다. “그네를 탄 아이”도 “운동장을 힘껏 밀었다 당겼다”하는 작용을 하고 “철봉에 매달린 남자”도 “흘러내리는 운동장을 뒤집”는 일에 분주하다. 그래서 운동장은 원형 시계의 본모습을 변함없이 지탱할 수 있게 된다. 시점의 변화를 통한 묘사와 인식의 재발견이며 전환이다. 운동장은 운동하는 사람들뿐만이 아니라 운동장과의 상호 역학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이렇듯 운동장의 밤 풍경을 크레용화처럼 재미있고 따뜻하게 묘사하며, ‘운동장’의 본질을 향해가고 있다.
❚추천사❚
장요원 시의 저류에는 사물과 현상을 강렬하게 잡아채는 첨예한 감각의 흐름이 있다. 그녀는 사물과 현상의 고유하고도 역동적인 이미지들을 포착하여, 그것을 선명한 물질성의 언어로 명명하는 역량을 지속적인 미더움으로 선보인다. 그 안에는 아득한 저 심연에서 전해져오는 “은밀한 파동”(「가지마다 서랍처럼 은밀한 파동이 들어 있다」)이 담겨 있는데, 말하자면 “일렁이며 구겨지는 어린 바람의 수면”(「공일」)을 미세하게 그려내면서 “몸 모서리에서도 물소리”(「허공에는 각이 있다」)가 나는 것을 듣다가 그 “소리가 고여 맑아지는 수위水位”(「숲」)까지 채록하는 시인의 섬세한 감각이 깃들어 있다. 이처럼 장요원 시편에는 ‘바람’이나 ‘물’ 같은 원형 상징들이 선연한 “선염법渲染法”(「장마記」)으로 번져가며 만들어내는 “설레는 경계들”(「레이스」)이 깊이 농울치고 있다. 그녀는 이러한 경계의 표지標識들을 통해 한편으로는 지상의 감각적 실재들이 사라져가는 소실점까지 천착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삶의 어둑한 심층에서 글썽이는 환한 심미적 서정에까지 근접하려는 성정을 동시에 보여준다. 그 확연한 진경進境을 들여다보는 우리의 시선도 한없는 미적 감염으로 한동안 물들어가게 될 것이다.
—유성호(문학평론가·교수)
장요원의 시를 읽는 즐거움은 평범한 사물, 눈에 익은 현상을 변형하거나 해체하여 우리의 관습적인 감각과 사고를 깨움으로써 새로운 세상을 체험하게 하는 데 있다. 빗방울을 공중에 걸린 첼로 현으로 만들어 세상에 감춰진 음악 소리를 듣게 하는가 하면, 빠르게 도는 줄넘기의 줄을 혀로 변형시켜 매일 반복되는 수다 안에 갇힌 여자의 욕망을 엿보게 한다. 몸살감기에 걸려 옷을 껴입으며 덜덜 떠는 느낌을 식물적인 본성과 양배추의 형태로 형상화시키는 상상력이나, 반으로 자르자마자 돌기 시작하는 양파의 운동을 통해 전속력으로 정신없이 쳇바퀴 돌리는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시선은 읽는 이를 유쾌하게 한다. 이 시집을 읽으며, 우리의 다양한 경험이 사물이나 일상과 엉뚱하게 결합될 때 우발적으로 솟는 풍요로운 세상을 여행해보자.
―김기택(시인)
❚저자 약력❚
장요원
본명 장혜원. 전남 순천에서 태어남. 2011년 무등일보 신춘문예 당선, 2011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2014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아르코창작기금을 수혜함.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브로콜리 주관적인 브로콜리 13
무반주 첼로 소나타 15
우리는 얼룩 17
드라이플라워 19
프러포즈 21
줄넘기 하는 여자 23
본색 25
즐거운 킬힐 27
물집들 28
키위 속의 잠 30
결 32
제2부
양배추로 만든 기분 37
양파 39
운동장 41
갯벌체험 43
데칼코마니 45
핑킹가위 46
2인용 레일바이크 타기 48
연인 50
람부탄 51
제3부
허공의 사생활 55
허공 한 켤레 57
풀리고 있는 오전 59
금요일 61
바람개비 63
공일 65
사라지는 결의들 67
환절기 68
레이스 69
풍선들 71
역방향열차 73
갈라진 바닷길을 걸었다 75
장마記 76
깃털 78
허공에는 각이 있다 80
비상구가 없다 82
말뚝 84
가지마다 서랍처럼 은밀한 파동이 들어 있다 86
제4부
외출을 벗다 89
저수지 91
춤 93
다국적 요리 95
걸음을 먹었다 97
가지치기 98
고여 있는 잠 99
삼각비에 대한 101
단단한 의자들 102
숲 104
늪 106
해설
홍용희 _ 풍경의 현상학 108
❚시집 속의 시 두 편❚
드라이플라워
해를 보면 자꾸만 어지러워
거꾸로 매달렸다
꽃대가 밀어올린 향이 오르던 그 보폭으로 흘러내렸다
향기의 내용이 다 비워지기까지
붉어진 시간만큼 외로웠다
문득,
유리병 속을 뛰어내리는 코르크 마개의 자세가 궁금했다
핑킹가위 같은 비문들이 잘려나갔다
창백해졌다
소소한 바람에도 현기증이 난다
무릎이 잘린 낯선 걸음들이 유리문을 지나갔다
유리에 서성이던 웃음들이 싹둑 잘렸다
통점은 훼손된 부위가 아니라 향기의 왼쪽에 있다고 생각했다 붕대처럼, 향기를 왼쪽으로 감아 올라가는 나팔꽃을 본 적이 있지 그들의 심장이 왼쪽에 있을 거라는 편견도
흘러내렸다
내력 없이 내리는 안개비에도 쉬이 얼룩이 번진다
허공이 우산처럼 접히고 있다
홀쭉해졌다
장미의 유전자를 가진 나는
온몸에 가시가 돋아 있고,
흔들릴 때마다 스스로
할퀴었다
가시와 향기는 다른 구조를 가진 같은 슬픔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다
몸속에서 너라는 물질이 다 휘발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바로 설 수 있지
마치 살아 있는 것처럼,
벽에 걸린 캔들 홀더 속
검은 심지가
잊어버린 어제를 켜고 있다
무반주 첼로 소나타
현들이 공중에 매여 있다
빼곡히,
수직의 자세로 허공의 천장과 바닥을 잇고 있다
그 탄력을 터뜨리는 지상의 수많은 손가락들
빗방울의 형식으로 음표들이 터진다
비의 음계는 동물성일까요
우우 우짖는 소리
맹렬하게 열어젖히는 성대들
단풍나무의 무수한 손끝에서 울음이 흘러나오고 담장 밑에서 고양이의 신음이 끊어졌다가 이어진다
옥타브를 오르내리는 담쟁이넝쿨의 왼손과 오른손들,
지붕들은 범람하기 위해 솟고 있는 걸까요
팽팽하던 공중이 느슨해지자
가로등 불빛이 일제히 폐활량을 늘리기 시작한다
소리의 계단 뒤에는 내밀한 골목 하나 들어 있지
지루한 골목은
낡은 연인들이 헤어지기 쉬운 배경
길게 내린 그녀의 속눈썹도 슬픔에 매여 있었지
저녁이 낮은음자리로 몸을 낮추는 시간,
호흡이 느려진 후렴이
긴 목울대를 향해 강 쪽으로 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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