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신선 시선집 『사람이 사람에게』
저자 홍신선/정가 10,000원/출판사 파란
❚ 신간 소개 ❚
2015년 9월 8일 창립한 ‘(주)함께하는 출판 그룹 파란’에서 파란시선의 첫 번째 시집으로 홍신선 시인의 시선집 <사람이 사람에게>를 2015년 10월 30일 발간하였다.
홍신선 시인은 1944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하였으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서울예술대학과 안동대학교, 수원대학교 등을 거쳐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계간 <문학・선>의 발행인 겸 편집인 일을 하고 있으며, 시업에 전념하고 있다. 1965년 월간 <시문학> 추천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서벽 당집> <겨울섬> <삶, 거듭 살아도>(시선집) <우리 이웃 사람들> <다시 고향에서> <황사바람 속에서> <자화상을 위하여> <우연을 점 찍다> <홍신선 시전집> <마음經>(연작시집) <삶의 옹이>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실과 바늘의 악장>(공저) <품 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잡지 않는다> <사랑이란 이름의 느티나무> <말의 결 삶의 결> <장광설과 후박나무 가족> 등이 있고, 저서로 <현실과 언어> <우리 문학의 논쟁사> <상상력과 현실> <한국근대문학 이론의 연구> <한국시의 논리> <한국시와 불교적 상상력> 등이 있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현대불교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홍신선 시인의 시선집 <사람이 사람에게>는 저자가 등단한 이후 50년 만에 묶는 두 번째 시선집이다. 그런 만큼 <사람이 사람에게>는 홍신선 시 세계의 집약이며 최고 정수라고 말할 수 있다. 1960년대 중반 감각적이되 고도의 지적 축조술로 단련된 모더니스트로서 출발한 홍신선의 시 세계는 이후 한국 현대사의 격변과 굴곡을 온몸으로 감내한 지식인의 잘 삭힌 고통의 문장들로 이어지다가 1990년대 이후 선불교의 반상합도(反常合道)를 체화한 시편들로 그 대략을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홍신선의 시 세계는 이처럼 쉽게 나누어 평가할 수 없을 만큼 웅숭깊은 단속성(斷續性)을 지니고 있다. 그 밑바탕에는 인간과 현실에 따뜻한 시선과 시적 대상을 뒤집어 그 속내를 꿰뚫어 볼 줄 아는 직관과 시에 대한 철저한 염결성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홍신선 시 세계의 전반을 흐르고 있는 저류로 한국 현대시의 그것과 함께하며 때로는 한발 앞서 한국 현대시를 이끌어 온 동력이기도 하다. 따라서 이 한 권의 시선집은 비단 한 시인의 시력을 요약한 바가 아니라, 한국 현대시의 저 면면한 역사와 마주하는 일로 독자에게 다가설 것이다.
❚ 추천사 ❚
얼마 전 나는 ‘시랍(詩臘)’이란 말을 써 봤다. 최근 어느 상 받는 자리에서 절집의 ‘법랍(法臘)’이란 말에 빗대 만들어 써 본 것이다. 시인의 경우도 등단 기간을 세는 말로 괜찮겠다 싶었던 것이다. 그 시랍을 나는 올해로 50세 헤아리게 됐다. 지난 1965년 시단 말석에 얼굴을 내놓은 이래 어느덧 반세기의 세월이 간 것이다. 돌이켜 생각하면 잠시 잠깐 전인 듯한데 시간은 그렇게 가 버린 것이다. T. S. 엘리엇의 시구처럼 이 시선집을 엮기 위해 지난 시간 속을 헤매며 나는 내 정신의 고비고비를 새삼 다시 겪었다. 그리고 대략 70여 편의 작품들을 골랐다. 그것도 품새가 비슷한 작품들끼리 골라 묶었다. 그리고 몇 편은 그 과정에서 어구가 달라졌거나 말이 덧붙은 경우가 있다. 해당 작품의 경우 이 첨삭본이 정전(正典)이 되리라.
―홍신선(저자), <책머리에> 중에서
시인은 오랜 시간 말의 절에 들앉아 “점”을 생각했을 것이다. “쪽방촌 성폭행범처럼 점점점 씨를 묻으며 드나드는 저 앵벌이 선택은/인연인가 우연인가” 자문하다가, “절뚝절뚝 한쪽 발”을 끄는 노쇠한 “앵벌이 한 마리”에 자신의 모습을 겹쳐 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다 문득 봄날 처녀 같은 “꽃의 음호 속에 저 꽃의 치골 위에” “우연”이라는 이름으로 “점찍”히는 “꽃”들의 미래를 떠올렸을 것이다. “꽃”의 내부와 “사창굴”의 “쪽방”이 같다면 그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일이다. 하지만 그것을 보는 마음의 윤곽은 어떻게 생겼는가? “허허 참/마음이 있으면/너 어디 보여 주려무나”, 시인은 반문한다. 아마도 그곳은 말의 절이 세워지기 전, 시인이 태어나기도 전에, 어딘가 날아든 젊은 “앵벌이”가 보았던 한국문학의 거대한 산맥 속 광경이었을 것이다. 처음 시인이 되었던 순간 그는 말한다. “보라 저것, 나의 많은 것들이 하나의 목숨으로 획득되는 예외를”. 그것은 산맥 너머 “사람이 사람”에게 날아가는 광경이며, 골짜기의 빗물로부터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우리네 삶의 광경이기도 하다. 이 시선집은 바로 그 세계의 윤곽에 대한, 윤곽을 보는 마음에 관한 가장 이상적인 형식의 ‘예외’를 머릿돌로 기록해 놓은 것이다.
―기혁(시인・문학평론가), 해설 중에서
❚ 저자 약력 ❚
홍신선
1944년 경기도 화성에서 출생하였으며, 동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였고, 서울예술대학과 안동대학교, 수원대학교 등을 거쳐 동국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를 역임하였다. 현재는 계간 <문학・선>의 발행인 겸 편집인 일을 하고 있으며, 시업에 전념하고 있다.
1965년 월간 <시문학> 추천을 통해 등단하였으며, 시집으로 <서벽 당집> <겨울섬> <삶, 거듭 살아도>(시선집) <우리 이웃 사람들> <다시 고향에서> <황사바람 속에서> <자화상을 위하여> <우연을 점 찍다> <홍신선 시전집> <마음經>(연작시집) <삶의 옹이> 등이 있으며, 산문집으로 <실과 바늘의 악장>(공저) <품 안으로 날아드는 새는 잡지 않는다> <사랑이란 이름의 느티나무> <말의 결 삶의 결> <장광설과 후박나무 가족> 등이 있고, 저서로 <현실과 언어> <우리 문학의 논쟁사> <상상력과 현실> <한국근대문학 이론의 연구> <한국시의 논리> <한국시와 불교적 상상력> 등이 있다.
녹원문학상, 현대문학상, 한국시협상, 현대불교문학상, 김달진문학상, 김삿갓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 차례 ❚
책머리에 ― 5
제1부
가을 맨드라미 ― 19
오래된 미래 ― 20
누가 주인인가 ― 22
망월리 일몰 ― 23
겨울섬 ― 24
겨울꽃 ― 26
냉이꽃 ― 28
시월의 숲길에서 ― 29
정선 장날 ― 30
첫겨울 비 ― 32
처서 근방 추전역 ― 34
백두산 ― 36
제2부
부도(浮屠) ― 41
불사(佛事)를 하는 절에 가서 ― 42
박운(薄雲) ― 44
석산꽃 필 무렵 ― 45
이름이 불당골이라는 ― 46
청매(靑梅) 꽃 ― 48
몸이 세상 놓을 때는 ― 49
여름 장례 ― 50
경주 남산에서 ― 52
오래전 종이로 등(燈) 하나 만들어 ― 54
어떤 가야산 ― 57
우연을 점찍다 ― 60
제3부
그걸 무어라 하나요 ― 65
혼자 부르는 이름 하나 ― 66
작은 고통의 노래 ― 68
있는 것 사르고 ― 70
혼자 가는 길 ― 71
어느덧 아내와도 헤어지는 연습을 ― 72
자운영 ― 74
봄날 ― 75
성인용품점 앞에 서다 ― 76
광화문 골목길에서 ― 78
작별 ― 80
제4부
황사 바람 속에서 ― 83
아, 그 나라 ― 86
어딘가에 무엇이 ― 88
추석날 ― 89
수원 지방 ― 92
불볕 ― 94
내기 장기 ― 96
참회록 ― 97
사람이 사람에게 ― 98
시인의 초상 ― 99
그날이 오면 ― 100
제5부
자목련 꽃 피다 ― 103
자화상을 위하여 ― 104
늦여름 오후에 ― 106
죽음놀이 ― 108
아버지 ― 110
매화 ― 112
큰 눈 떼들 옆의 어린 눈같이 ― 114
소한(小寒) 무렵 ― 116
겨울 절창 ― 117
시인 운보, 모년 모일 ― 118
산꿩 소리 ― 120
유적 ― 121
여름, 책 읽다 ― 122
제6부
마음經 9 ― 125
마음經 13 ― 127
마음經 38 ― 128
마음經 43 ― 129
마음經 45 ― 130
마음經 46 ― 131
마음經 47 ― 132
마음經 53 ― 133
마음經 58 ― 135
마음經 60 ― 137
제7부
희랍인의 피리 ― 141
비유를 나무로 한 나의 노래는 ― 145
이미지 연습 ― 147
해설
기혁 시랍(詩臘) 50년, 말(言)의 절(寺)에 들앉아 우연을 점찍다 ― 149
❚ 시집 속의 시 세 편 ❚
사람이 사람에게
2월의 덕소(德沼) 근처에서
보았다 기슭으로 숨은 얼음과
햇볕들이 고픈 배를 마주 껴안고
보는 이 없다고
녹여 주며 같이 녹으며
얼다가
하나로 누런 잔등 하나로 잠기어
가라앉는 걸
입 닥치고 강 가운데서 빠져
죽는 걸
외돌토리 나뉘인 갈대들이
언저리를 둘러쳐서
그걸
외면하고 막아 주는
한가운데서
보았다
강물이 묵묵히 넓어지는 걸
사람이 사람에게 위안인 걸. ■■
황사 바람 속에서
너와 나에게 젊음은 무엇이었는가
수시로 입안 말라붙던 갈한 욕망은 무엇이었는가
아직도 눈먼 황소들로 몰려와서는 노략질하는 것, 짓대기다 무릎 꿇고 넘어지는 것, 나둥그러지기도 하는 것,
낡은 집 고향의 쓸쓸한 토방에서 내다보는 황사 바람이여
오늘은 너의 자갈 갈리는 목쉰 사투리들이 유난히 거칠다
깨진 벽 틈 속 실낱의 좀날개바퀴 울음은 들리지 않는다
그 소리들은 외침들은 왜 그리 미미한가
쥐오줌 얼룩 든 천정(天井) 반자들이 무안한 듯 과거로 내밀려 앉아 있다
너는 삭막한 하늘 안팎을 뉘우침처럼 갈팡갈팡 들락이는데……
척추 디스크를 앓는 아내와
지방에 내려간 자식은
멀리 네 옷깃에 지워져 보이지 않는다
씨앗에서 막 발 뺀 벽오동나무의 발뿌리에다 거름똥 채워 주고
연탄재 버리고 깊은 낮잠 한 잎.
내일 모레쯤
살 속에 밤톨만 한 멍울을 감춘 박태기나무들이
종기 짜듯 화농한 꽃들을 붉게 짜낼 것이다
나이 늘어 심은 어린 나무들이 한결 처연하다
낙발(落髮)처럼 날리는 센 햇살 몇 올, 저녁 해가 폐광처럼 비어 있다
운명은 결코 뛰쳐나갈 수 없다는 것
장대높이뛰기로도 시대의 담벽은 넘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까지는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가
그렇게 생각 안채로 들여보내고 하루를 네 귀 맞춰 개어 깔고
무심히 흑백 TV의 풀온을 당기면 떠오르는 화면,
꼿발 딛고 아득히 넘겨다보는
흐린 화면 너머의 더 흐린 화면 그곳엔 무엇이 있었는가
황사 바람이여 지난 시절 그 4.19 5.16 5.18 속에
누가 장대높이뛰기를 하였는가
나는 어디에 고개 묻고 있었는가
비닐 씌운 두둑에 고추모 옮겨 심고 멍석딸기꽃 밑에 마른 짚 깔기
젖먹이 기저귀 갈아 주듯 깔아 주며
언젠가 풋딸기들이 뾰족한 궁둥이로 편히 주저앉을 것을 생각하는
나날의 이 도(道)와 궁행(躬行)은 얼마나 사소한가 거대한가
풀 먹여 새옷 입듯이
마음 벗고 껴입는. ■■
우연을 점찍다
사창굴이 따로 있는가 아파트 단지 뒷길 화단에
때늦은 쪽방만 한 매화들 몸 활짝 열었다
무슨 내통이라도 하는지 앵벌이 한 마리 절뚝절뚝 한쪽 발 끌며
꽃에서 꽃으로 방에서 방으로 점, 점, 점 찍듯 들렸다 날아간다
날아가다 또 들른다
무저갱 같은 꽃들의 보지 속에서
반출 금지된 자손이라도 비사입(秘私入)하는가
눈먼 거북이가 바다에 떠도는 널빤지 구멍 속으로
모가지 한 번 내미는 것이
목숨 점지되는 인연이라는데
쪽방촌 성폭행범처럼 점점점 씨를 묻으며 드나드는 저 앵벌이 선택은
인연인가 우연인가
매화들 뭇 가지에서 가건물처럼 철거된 빈자리
곧 거북이 모가지만 한 열매들 불쑥불쑥 내솟고
그즈음 앵벌이는 또 사창굴 여느 꽃의 곪아 터진 몸 찾아다니며
가장자리 나달나달 핀 종이쪽지 구걸 사연이라도 돌리는가
이 꽃의 음호 속에 저 꽃의 치골 위에
점, 점, 점 우연을 점찍는가 ■■
❚ 펴낸곳 (주)함께하는 출판 그룹 파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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