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유지소 / (주)함께하는출판그룹 파란 / B6 / 160쪽 / 2016년 1월 1일 발간 / 정가 9,000원
ISBN 979-11-956331-2-8 04810 / 바코드 9791195633128 04810
신간 소개
유지소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가 2016년 1월 1일, ‘(주)함께하는출판그룹 파란’에서 발간되었다. 유지소 시인은 1962년 경북 상주 출생이며, 2002년 <시작>을 통해 시인으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 <제4번 방>이 있으며, 2012년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상을 수상한 바 있다.
유지소 시인의 이번 신작 시집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는 일단 유쾌하다. 첫 시부터 마지막 시까지 정말이지 한자리에 앉아 단숨에 읽을 수 있는 시집이다. 그것은 무엇보다 유지소 시인 특유의 활달한 어법과, 행간을 순식간에 훌쩍 도약하는 상상력, 그리고 문장과 구절과 단어의 반복과 그 반복이 점차 굴절되고 확장되면서 이루어내는 도저한 리듬감에 힘입은 바 크다. 그렇다. 유지소 시인의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는 지면 도처에서 시를 읽는 쏠쏠한 재미를 만끽할 수 있는 시집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유지소 시인의 이번 시집을 단지 스타일이나 형식상의 차원에서 주목하고 말 일은 아니다. 자, 한번 보라!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작아지려고 자꾸 발끝을 벼랑 위에 세우는”(「그 해변」) 유지소 시인의 저 숭고하기까지 한 결행을! 자기 자신을 “드디어 아무것도 아닌 사람”(「드디어 아무것도 아닌 사람」)으로까지 밀어붙이는 유지소 시인은 이미 죽음을 생짜로 경험한 자(「생일」)라 말해도 무방할 정도다. 그런데 흥미로운 사실은 이 시인에게 생이란 따라서 한낱 비루하거나 보잘것없는 혹은 한편으로 슬쩍 제쳐 두어도 될 그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더 이상 의심할 수 없”는 “꽃부리”로 스스로를 결연히 재구축한다는 점이다.(「영(霙) 우(雨) 설(雪)」) 그러니 “울고 싶을 땐/그냥 울어라”(「고슴도치선인장」)와 같은 간명한 문장마저도 실은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생의 곡진함과 절절함이 그 음절 하나하나마다 빼곡히 가득 찬, 스스로의 절명마저도 넘어선 선언이라 말해도 가히 지나치지 않다.
요컨대 유지소 시인의 상쾌하고 발랄한 시작법은 죽음까지도 딛고 일어선 자의 그것이다. 그러니 감히, 그러나 사심 없이 말한다. 유지소 시인의 두 번째 신작 시집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는 이천년대 이후 한국시가 “비로소 완전한 나무”(「y거나 Y」)로 우뚝 서는 장관, 바로 그것이다.
추천사
이 시인, 유쾌하다, 냄새가 짙다. 이 시인, 부드럽다, 몸이 빠르다. 이 시인, 분분(芬芬)하다, 마음이 두껍다. 벚꽃 잎 같은 기억의 세계에서 맥박 세차게 몰아치는 우리 삶의 징그러운 몸뚱이까지 아우르는 이 시인의 발화(發花)는 현실과 몽환, 어제와 오늘,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육친과 애인, 거울과 미로, 독백과 진술, 1인칭과 2인칭, ‘-이다’와 ‘- 아니다’를 관통한다. 동시에 노래한다. 목구멍 너머, 심장 가까운 곳에서 출발하여 정수리를 뚫고 나오는, 저 먼 알타이에서 단번에 이곳에 도달하는, 바람과 하늘과 대지의 음성을 육체의 진동으로 노래하는, 이 시인의 시가 품고 있는, 더 넓어지는, 더 깊어지는, 더 어두워지는, 흐미. 이 시집을 열면 들려오는 음악을 듣기 위해, 이 시인의 영육을 알기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 “凡於事”(「범어사」)를 통과하여 살아 낸 후에 거울 앞에 서서 ‘내’가 ‘나’의 얼굴을 쳐다보는 일, “쓸어내리는 와이퍼처럼” 유리에 얼룩 진 ‘나’를 “하룻밤에도 아흔아홉 번씩”(「맹독」) 지워 내는 슬픔의 근원을 알아내는 일, “깜깜한 찔레 덤불 속에서”(「뱀」) 시인을 끌어안고 생살을 어루만지는 일. 뜨거운 연애가 시작된다. 우리의 입술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갈 때 떡갈나무 숲에서는 총알이 퓡― 퓡― 퓡― 날아다”(「폭염」)닌다. 총알이 우리 몸을 통과하는 그때, 우리는 이렇게 말할 것이다. “마지막으로/몸을 바꾸는 것이 삶이란다”(「우리 동네 뻐꾸기가 우는 법」)라고. 변신하여 새로운 삶을 살게 되는 쾌락, 이 시집이 우리에게 주는 것. 이 시인, 유지소의, 바나나 아닌 바나나 같은, 바나나를 먹기 위해 껍질을 깐다. 희고 길고 부드럽고 달콤한 몸을 읽는다, 나와 ‘나’에게 밀어 넣는다. 우리는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우리는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나나나. 왼 눈으론 웃고, 오른 눈으로는 울며, 울다가 웃으며 “눈물도 찰싹/웃음도 찰싹/희망도 찰싹”(「이런, 뭣 같은!」) ‘쓰레빠’로 뺨을 갈긴다. “달려라, 콩./멈추면 죽는다, 콩.”(「콩? 콩! 콩.」) 실행될 수 없는 명령을 명랑하게 수행한다. 유지소의 사랑의 노래가 끝날 즈음, 우리가 발견하게 되는, 벨벳에 싸인 따스한 어둠. “너의 손가락이 한없이 길어지던 그 골목” 끝에서, 우리는 “사랑도 아니고 혁명도 아니고, 겨우 말라비틀어진 탱자 하나 때문에, 너를 닮은 탱자 하나 때문에, 누군가는 피를 흘리고 누군가는 죽을 듯이 비명을 지르던 그 세계”(「해충의 발생」)를 영원히 빠져나갈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하지만 다시 시작될 것이다. 유지소를 빠져나왔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제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가 넘어지는” 세계에 도달한다.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가까이 세계의 끝”(「그 해변」)으로 달려간다.
―장석원(시인)
유지소의 두 번째 시집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에 실린 시 「의학용어사전」에서 우리가 특별히 관심을 가져야 할 단어는 “사람”과 “시”이다. 그의 ‘한글 사전’에서 ‘ㅅ’ 계열의 단어들은 중심점을 이루고 있다. 아마도 그는 두 번째 시집에서 ‘ㅅ’을 집필하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질문은 이렇다, 왜 “사람”과 “시”는 “사람기호성”과 “낙태시술자”라는 의학 용어로 설명되는가? 이는 그가 “사람”과 “시”를 일종의 질병의 차원에서 바라보고 있음을 암시하는가? 그에게 시는 생명의 지체를 분절하는 자이다. 그것이 ‘나’의 지체이든 ‘그’의 지체이든, 아니면 ‘사랑’의 지체이든, 그의 시는 그로부터 생명의 지체를 분리한다.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원하든 원치 않든, 이러한 사태는 “사람”이 “사람기호성”이라는 사실에서부터 발생한다. 어쩌면 그의 “사람기호성”의 기저에는 ‘사랑기호성(sophiapophilism)’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리하여 시가 “낙태시술자”가 아니라 ‘생의 산파(midwife)’가 되는 날, 그의 ‘나무(無)’와 ‘나비(非)’는 ‘사랑’의 불가능의 징표에서 비상하는 ‘새’로 태어날 것이다. 하여 ‘생’과 ‘신’의 사이에서 한 마리 ‘새’로 날아올라 ‘한글 사전’의 첫머리에 등재되어도 좋다.
―장철환(문학평론가)
저자 약력
유지소
1962년 경북 상주 출생.
2002년 <시작>을 통해 시 등단.
시집으로 <제4번 방>이 있음.
2012년 웹진 시인광장 선정 ‘올해의 좋은 시’ 상 수상.
시인의 말
신은 시보다 뒤에 있고 생은 시보다 앞에 있다
한글이 그렇다
나는 한글을 쓰는 사람이다
차례
시인의 말
제1부
그 해변 ― 13
다정한 모자 ― 14
쇼 605 ― 18
한여름 밤의 인터뷰 ― 20
캔디의 계절 ― 22
의학용어사전 ― 24
0.5℃ ― 26
패총 ― 28
텔레비전요리프로그램 ― 29
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 30
콜라주 20081224 ― 32
질투 수업 ― 33
우리테니스교실 ― 36
나비 ― 38
제2부
낮달 ― 41
태양 표절자 ― 42
콩? 콩! 콩. ― 44
선물용 과일 바구니 ― 46
해충의 발생 ― 48
운동하러 가자 ― 50
그 밤, 백리사탕 ― 52
너는 개구리 ― 54
썰물 ― 56
폭염 ― 58
수국의 세계 ― 60
꽃나무 ― 61
제3부
생일 ― 65
나의 애인은 ― 66
드디어 아무것도 아닌 사람 ― 68
이런, 뭣 같은! ― 71
어디에 묻혀 있나, 나는 ― 74
범어사 ― 76
우기 ― 78
찔레꽃 ― 81
먹물을 들였더니 ― 84
할머니 찾아가기 ― 86
가을이 오면 ― 88
감, 감, 감 타령 ― 90
맹독 ― 92
제4부
임종 전야 ― 97
영(霙) 우(雨) 설(雪) ― 98
이런 밤이 좋다 ― 100
우리 동네 뻐꾸기가 우는 법 ― 101
십자드라이버 ― 104
고슴도치선인장 ― 106
제5부
y거나 Y ― 109
우리는 행진했다 ― 112
이젠 ― 114
넝쿨들 ― 116
또오옹또오오옹 ― 118
나쁜 병 ― 120
절을 하면서 튤립의 모양을 흉내 내었다 ― 122
거품벌레 ― 123
완주 ― 124
그림자들 ― 126
매일매일 홈쇼핑 ― 129
내 방에 매달린 벽시계가 1초마다 말씀하시길 ― 130
우리 집에 살던 귀뚜라미 한 마리가 죽을 때까지 하신 말씀이 ― 131
새로 세 시, 24시 돼지국밥 집에서 ― 132
루어와 고백과 나 ― 134
뱀 ― 135
해설
장철환 잃어버린 ‘단어’를 찾아서 ― 136
시집 속의 시 세 편
그 해변
그 해변에서는 가벼운 화재도 사소한 싸움도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도대체 살아 있는 사람이 도착하지 않는 것이다
그 해변은 지루해서 지루해서 지루해서 작은 모래알은 더 작은 모래알을 질투하는 것이다 더 작은 모래알보다 더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작아지려고 자꾸 발끝을 벼랑 위에 세우는 것이다 벼랑이 먼저 무너지는 것이다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를 넘어 모래가 넘어지는 것이다 그 해변은 그렇게 더
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더 가까이 세계의 끝으로 다가가고야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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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바나나가 아니다
이건 바나나 같아
바나나처럼 길고
바나나처럼 노랗고
바나나처럼 쭈욱 껍질이 찢어지고……
이건 바나나가 확실해
바나나처럼 약간만 휘어지고
바나나처럼 조금만 달콤하고
바나나처럼 우리 집 정원에는 없고……
이건 100퍼센트 100퍼센트 바나나야
바나나처럼 털도 없고
바나나처럼 카페인도 없고
바나나처럼 망고주스를 만들 수도 없고……
이건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바나나
너를 유혹하고
너를 넘어뜨리고
너의 바나나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이건 바나나가 아니면, 그래도 바나나야
바나나처럼 바나나 옆에 척 붙어 있고
바나나처럼 바나나 반점이 돋아나 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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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테니스교실
우리가 탓이라고 부르는 공이여
사랑하는 여인을 찾아 황야를 떠도는 외로운 총잡이의 가죽 부츠 냄새가 나는 공이여
탓, 하고 탓이 당신에게 날아가고 탓, 하고 탓이 당신 앞에 떨어지고 탓, 하고 탓이 출렁 당신의 그물에 걸리고
아아아름다운 저녁입니다
만약 내가 오른쪽 구두였다면 분명히 왼쪽 구두를 질투했을 것입니다 오 분에 한 번씩 당신을 향하여 탓, 하고 탓, 탓, 꺾이는 내 왼쪽 발목이여
만약 내가 강철 태엽을 가졌다면 나는 곧 행복한 자동인형입니다 삼 초에 한 번씩 당신을 향하여 탓, 하고 탓, 탓, 탓, 돌아가는 내 얼굴이여
이이이런 기분 처음입니다
당신은 두 팔을 지구의 반 바퀴나 휘두르며 이것은내탓이아닙니다, 하고 당신의 탓을 나에게 넘기고 탓, 하고 탓이 나에게 돌아오고
그그그러니까 말이죠 스트레스 날리는 데는 테니스가 최고라니까요
우리는 땀을 뻘뻘 흘리며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쓸어 올리며 역시 당신 실력은 짱이에요 엄지손가락을 벌떡 치켜세우며
그러니까 어어어디까지나 사랑입니다
영화의 엔딩 자막처럼 위로 위로 위로 떠오른 공이 다시 내려오지 않을 때까지 우리가 가진 공이 하나도 남지 않을 때까지
우우우리는 점점 깊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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