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두 가지 목표를 가지고 왔슴돠.
딸 찾으러 왔슴다.
돈 번다고 한국 갔다가 일 년 전부터 연락이 끊이구, 지금까지 종무소식이오.
아들 수술비 벌러 왔슴다.
한국에 돈 벌겠다구 갔다가 다리만 다쳐서 돌아 왔소.
걷지도 못하고 집에 누워만 있소.
일 년 안에 수술을 받지 못하믄 다리를 잘라야 할지도 모름다.
수술비가 한국 돈으로 천만 원이오.
- 복길순 대사 中
한국의 부유한 중산층 아파트에서 가정부로 일하며 딸을 찾아 일 년간 전국 각지를 헤매는 복길순. 그런 그녀가 맞닥뜨리는 것은 물질만능주의와 향락주의에 빠진 한국 사회의 여실한 민낯이다. 한국 사람이든, 연변 사람이든 하나같이 돈 때문에 멍들고, 깨지고, 일그러져 있다. 결국, 딸은 찾지도 못한 채 “수감 번호가 찍힌 파란색 추리닝”을 입고 외국인보호소에 당도하게 된 복길순. 그녀, ‘연변 엄마’의 조금은 낯선 시선, 낯선 행적을 통해 우리는 도시와 자본의 가치관에 사로잡힌 우리네 병든 삶을 새삼 돌아보게 된다.
극작가 김은성은 『연변 엄마』를 통해 우리 시대의 문제의식을 날카롭게 직시한 것은 물론, 그것을 작가만의 고유한 언어로 생동감 있게 그려내고 있다. 특히, ‘입말의 생생함’ 그대로 대사를 직조하는 능력은 그의 특장이라 할 만한데, 연변 사투리를 가져온 이번 작품에서 그 역량은 매우 탁월하게 드러났다.
“말을 하라! 나한테 혼 좀 나보겠니?”
“돈이 문제가 아니다. 그런 걱정은 말고. 몸 상하지 않게 뭐이든 꽝꽝 먹어라.”
원시성을 띤 이 같은 대사는 말 본연의 맛을 살리는 것과 함께, 자본주의 문명에 맞서 버티며 겨루는 인물의 내적 의지를 상기시킨다. 이는 다름 아닌, 스토리와 언어에 대한 작가적 탐구의 결과일 것이다. 극작가 김은성이 ‘우리 시대의 화자(話者)’로 불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작가의 말
연변 엄마는 2011년 초연되었고 2016년 재공연되었다.
이 책에 실린 대본은 재공연을 앞두고 초연 대본을 수정한 작품이다.
다시 고쳐쓸 수 있도록 격려와 도움을 준 달나라동백꽃 부새롬 연출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연변 사람들의 행복을 빈다.
[차례]
1. 연변에서 온 사람들
2. 그들이 사는 집
3. 용정에서 온 장은숙
4. 아빠의 작전
5. 화룡에서 온 지병례
6. 엄마의 녹즙
7. 연길에서 온 청년들
8. 전 씨 삼대
9. 도문에서 온 천경자
10. 아들과 딸
11. 화룡에서 온 마학봉
12. 할아버지의 똥
13. 훈춘에서 온 문홍화
14. 엄마!
15. 연변에선 온 복길순
[작가 소개]
김은성
극작가. 보성에서 태어나 서울에서 자랐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 연출과를 졸업했다. 200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동라사」가 당선되어 데뷔한 이후 「썬샤인의 전사들」 「목란 언니」 「함익」 「달나라 연속극」 「뻘」 「순우 삼촌」 등을 발표했다. 차범석희곡상, 두산연강예술상, 동아연극상 등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