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시집 『꽃들의 이별법』은 어둠으로 가는 존재의 비의(悲意)와 성찰로 가득하다. 어두워진다는 것은 밝음과 멀어진다는 것이다. 빛의 시간으로부터, 꽃의 절정으로부터, 짙은 향기로부터 떠나는 길이다. 그리하여 시집의 시들은 온통 저무는 자연과 몸에 대한 웅성거림으로 가득하다. 시인의 눈은 자연에 닿고, 자신의 몸에 자연을 들인다. 멀리 있던 자연은 어느새 시인 안에 머물고, 스민 풍경은 어느 사이 “닿지 못한 곳까지” “아주 멀리 갔다가 오”(「늑대」)는 것이다.
시인은 세계와 투쟁하지 않는다. 더 정확 말하면 그가 세계와 대결하는 방식은 경쟁과 싸움이 아니라 소통과 나눔이다. 잡지만 놓는 것이고 버리는 자세다. 그것은 마치 중용의 도(道)처럼 한쪽으로 치우치치도, 넘어가지도 않는 절묘한 균형과 통제를 요구한다. 이 아슬아슬한 ‘줄의 길’을 건너왔고 건너가고자 한다. 사물과 사물, 인간과 인간, 자연과 세계가 서로 절묘한 조화와 질서를 유지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욕망’에 대한 이해와 성찰에서 기인하기에 시인은 탈속(脫俗)으로도 비속(卑俗)으로도 치닫지 않는다. 자연은 그에게 존재의 감옥을 벗어나는 도피처가 아니라 존재의 욕망을 성찰하고 닦아내는 또 다른 몸인 것이다.
“내 발바닥이 비어 더는 걸을 수가 없”을 때까지 그는 “꽃이 되는, 햇빛도 바람도 그만큼 있어야 살 수 있다는, 그곳”(우추프라카치아)으로 길을 떠난다. 그 고단한 어스름을 향한 여정에 꽃의 시간이 출렁이기를, 바람의 온기가 숨쉬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