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천부경 해석의 기본 틀
1)개요
천부경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그렇게 어려운 경전이 아니라고 본다.
그 해석방법만 알면 우주의 진리를 너무나 쉽고 간단한
원리로 고도로 압축해 놓은 매우 아름답고 정교한 경전임을 알게 된다고 본다.
따라서 이를 통해 보편적인 해석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면 한자식 기록형태의 천부경에 대한 그 동안의
여러 논란들을 불식시키며 보편적인 해석의 기본방향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으로 나는 판단하는데 그 길이 농은 유품 기록본의 천부경의 해석이라고
본다.
고조선 계열의 문자로 설계된 것으로 보이는 은문(갑골)천부경은 한자식 기록형태와는 달리 문자적 배열을 통해 여러 가지 의미들을 건축도면처럼 정교하게 압축해서 설계해
우주론적 원리를 담아내고 있다고 본다.
그 첫 번째가 문자의 배열을 통해 나타내고 있는 도형적 의미에 숨겨진 우주론적 원리이고 그 두 번째가
문자배열로 나타나는 우주론적 원리이고 그 세 번째가 고대문자가 가진 의미라고 보는데 이 세 가지 기본적인 해석의 틀이 완전히 무시된 상태에서 전해진 81자의 문자수만 같은 한자식 천부경이 제대로 해석이 될 리가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81자를 통해 고도로 압축되어 설계된 우주론적
원리에서 문자하나만 달라져도 그 의미가 상당히 어긋날 수도 있는데 문자 하나만이 아니라 세 가지 기본적인 원리적 큰 틀을 완전히 무시하고 기록된
한자식 천부경이 오늘날 제대로 해석이 될 리가 없다고 본다.
그동안 여러 종류의 천부경 해석서가 나온 것으로 아는데 아직까지 이렇다 할 이슈를 만들어 내지 못하며
여러 가지 주장들만 나오게 되는 근본 이유들이 너무 문자적 의미에만 집착함으로서 문자에 가려진 숨은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했기에 생겨난 결과라
본다.
화두 하나에 온 우주를 보았던 선승처럼 천부경 또한 화두와 같은 것으로서 화두 속에 숨겨진 진정한
의미를 제대로 보지 못하므로 인해 생겨난 어설픈 지식인들의 말장난이 만들어낸 결과들이 천부경에 대한 일반인들의 접근과 오해를 더욱 부추기는 결과를
낳았다고 본다.
그런 여러 이유들이 합쳐져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천부경과 한단고기 자체가 후대에서 조작한 형편없는 위서라는
참담한 주장들까지 나오게 되는 원인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본다.
어설프게 아는 것 보다는 차라리 모르는 게 나은 것으로 제대로 알지 못하면 최소한 자신의 무지함을
솔직히 고백하고 내가 아는 한 이렇다는 말을 밝혀 기본적인 학문적 양심만은 지켜야하나 시중에 나온 해석서 들에 대한 대중들의 반응이 여러 가지
형태로 갈라지고 심지어는 가짜라는 주장들까지 나오는 것으로 보아 제대로 된 해석서 들은 나오지 않았다는 것을 반증하고 있다고 본다.
앞으로는 이런 가짜들이 사라지길 간절히 바라며 이 사람 또한 그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이 글을 대해주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원리가 배제된 개인적 주장들이 글속에 보이면 그 부분은 무시해 주기를
바란다.
이 글은 천부경을 다루기 위해 글쓰기 훈련 겸 연습 삼아 한번 써 보았던 글인데 다시 글을 쓰기도
그렇고 그냥 버리기 아깝다는 생각이 들어 약간의 수정을 통해 그대로 기록할 생각이다.
고대한국인들은 오른쪽을 바른쪽으로 왼쪽을 바른쪽이 아닌 것으로 이해하고 있었다고 보는데 무엇을 근거로
그런 개념적인 이해가 생겨났는지 궁금해 지리라 본다,
지금도 이런 흔적은 우리말에 더러 남아 있다고 보는데 바르다는 의미를 붙여 오른손을 바른 손이라고
표현하고 있는 것이 그 예라 본다.
이 사람이 기억하기에도 35년 전 쯤에는 이 말이 일상적인
생활언어로 흔히 쓰이고 있었다고 보는데 오죽했으면 당시 담임선생님이셨던 분이 아이들이 일상적으로 양손을 가리켜 바른 손 왼 손이라고 쓰니까 국어
순화차원에서 오른 손 왼 손이 표준어니까 앞으로는 바른 손 대신 오른 손을 써야한다고 신신당부하며 아이들에게 몇 번이나 주의를 주며 교육을 시켰겠는가?
지금은 바른 손이라는 말 대신 거의가 오른 손이라고 쓰고 있다고 보나 35년 전 쯤에는 바른 손이 일상적인 언어였던 것으로 나는 분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또한 농은유품 속의 은문(갑골)천부경의 서술방식도 오른 쪽에서 시작해 왼 쪽으로 가고 있고 밝을 명( )자에서도
한문의 형태와는 달리 지구를 의미하는 날일( )자를 오른쪽에 배치한 것과 밝을 양( )의 문자에서 해를 의미하는 ( )자를 오른쪽에 배치한 것은 지정학적인
문제도 있겠지만 오른쪽을 왼쪽보다 더 중요하게 인식하고 있었던 고대한국인들의 유난스런 특색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고 본다.
ㅡ[태양(太陽)을 의미하는
문자아래에 일신(一神)을 의미하는 육(ㅜ)이라는 숫자를 결합해 쓰고 있음에 주목하기를 바라며 고대문자를 표기하기 어려워 괄호 처리하니 농은유품
기록본의 고대 문자를 참조하기를 바란다.
<제2부>에서 다룰 천부경의 해석이 이루어진다면 여러 사소한 문제는
해소되리라 보나 아쉽지만 해석의 기본 틀만 잡아보는데도 벌써 많은 분량의 글이 소모되었기에 이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천부경의 우주론을 해석하기에 앞서 천부경의 우주론이 인류문명의 뿌리임을 먼저 증명하지 않고서는
해석에 대한 논란만 가중시킬 뿐이라 보기에 해석은 다음으로 미룰까 한다. ]ㅡ
이러한 이유는 지구의 자전(自轉)과 공전(空轉)에 관계된 이해에서 나왔다고 보는데 고대한국인들은 지구가 태양(太陽)을 중심으로
공전(空轉)과 자전(自轉)을 하고 있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는 것으로서 현상계에 나타난 일신(一神)의 하느님과 같은 개념으로 해를 이해하고 있었던 고대한국인들에게 해는 당연히 고마운 우러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인간이 해를 마주하고 설 때 지구의 자전과 공전방향은 오른쪽이 된다.
그것을 알았기에 오른쪽을 바른쪽이라 생각했으리라 보는데 만약 지구의 자전과 공전방향이 하루아침에 왼쪽으로
향한다면 인간세에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것이 아니겠는가?
왜냐하면 일 년 농사일이 국가사적인 중대사였던 고대농경사회에서 늘 그러한 변함없는 지구의 공전과 자전방향에
변화가 생겨난다면 이보다 더 큰 재앙은 없을 것으로 이해했기 때문이라 본다.
그런 연유로 오른쪽을 바른길로 이해했으리라 보는데 이런 흔적은 찾아보면 지금도 더러 남아 있으리라
본다.
ㅡ<어렸을 적 동네 할머님들은 동네아이들 중 간혹
왼손잡이가 있으면 오른손잡이가 바른 것이라며 왼손을 쓰지 못하게 자꾸 나무라던 기억이 난다.>ㅡ
우리는 고대 선조들의 천문학적인 지식수준을 너무 얕잡아 보고 있다고 보는데 아무리 낮게 잡아도 최소한
청동기시대로 추정되는 고조선시대에는 태양계(太陽界)의 운행원리를
알고 있었다고 본다.
천간(天干)과 지지(地支)라는 문자적 형태를 사용해 육십갑자(六十甲子)가 만들어지게
된 배경이 태양계(太陽界)라고 보기에 태양계의 운행원리를
알지 못하고는 육십갑자(六十甲子)를 만들어낼 수 없다고 본다.
그러므로 우리가 상식적으로 알고 있는 것과는 달리 천문학적인 지식이 당대에는 누구도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높은 수준에 있었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본다.
또한 수학과 기하학에 대한 이해도 상당한 수준을 확보하고 있었음이 한단고기 기록에 나타난다 보는데
천부경의 우주론을 바탕으로 한 과학지식을 사용해 단군왕검께서 천하를 다스렸다는 기록이 그것이다.
王儉氏 承經 一周 三匝四之機
<왕검씨 승경 일주 삼잡사지기>
專用王道 而 治天下從之
<전용왕도 이 치천하종지>
이 내용은 단군께서 360이 의미하는 땅의 세계인 전체적인
천하(天下)를 다스렸다는 내용으로 원주율을
삼잡사지기(三匝四之機))로 표현하고
있다고 본다.
또한 중국의 무씨사당에 그려진 단군그림에서 컴퍼스와 자를 들고 있는 모습은 이 기록을 뒷받침하고 있다고
본다.
그 밖에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 전통 마을의 구조나 민속 등등에서 고대한국학의 영향력이 그대로
간직된 살아 있는 화석과 같은 흔적들이 상당수 남아 있으리라 본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늦기 전에 현대문명 속에서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는 옛 흔적들을 찾아내어 고대한국학을
이해하는 자료로서 영상물이나 기록물 같은 것으로 남겨두어 고대한국학을 연구하는 소중한 기초적인 자료로서 활용해야 한다고 본다.
오른손을 바른손으로 표현한 예가 단군세기 3세 단군 가륵
제위 때의 기록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러한 언어 사용의 전통은 매우 유서가 깊다고 본다.
그 기록에 따르면 단제께서 삼랑 을보륵을 불러 신왕종전의 의도를 물으시니 보륵은 엄지손가락을 교차시켜
바른손을 올려놓아 하느님께 삼육대례를 행한 다음 나아가서 말했다 하는 기록이 있는데 오른손을 가우수(加右手)로 표현하는
구절이 있다.
문자 뜻 그대로 풀면 바른 오른손이니 언어사용상 오른쪽이라는 의미는 생략되어 바른손이라는 언어로 굳어지게
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불과 35년 이전까지만 해도 이러한 언어사용의 풍습이
상당부분 그대로 전승되어 전해지고 있었음을 증명하는 사례 중의 하나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시골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었던 바른손이라고 본다.
따라서 이 기록은 그냥 스쳐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커다란 의미를 담고 있는 중요한 기록이라 보는데 3세 단군 가륵 제위 때라면 단군조선 건국초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올해가 단기
4345년이니 약 사천년 쯤 전이다.
또한 단군조선 건국초기이니 한웅신시 때와 같은 치세를 다 회복하지는 못했다는 것으로 보는데 이것은 3세 단군 가륵 제위 때의 기록에 그대로 나타난다고 본다.
예를 들면 신지고글에게 명해 배달유기라는 한웅신시(배달국)의 역사서를 편찬하게 한 것이나 풍속이 하나같지 않고 말도 잘 통하지 않아 정음 38자를 만들었다는 것이나 신시를 이루던 구한의 백성들이 제위 후 한참 뒤에 다 복종하고 따르게 되었다는 내용들은
아직 한웅신시 때와 같은 위상을 제대로 회복하지 못하고 어수선한 상태 였음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구한으로 갈라진 한웅신시 배달국의 옛 백성들을 하나로 결속시키며 배달국신시의 옛 위상을 회복해야하는
절실한 시대적 사명이 3세 단군 가륵제위 초기에 대두되었을 것으로 보기에 삼랑을보륵은 구한의 백성들을
통합할 수 있는 방법을 잘 알고 있었던 한웅신시의 옛 역사적 핵심을 꿰뜰고 있던 요즘으로 치면 수도인이나 대학자 였을 것으로 본다.
그러므로 이런 사람을 불러 그 조언을 구하는 기록중에 나타나는 가우수(加右手)라는 기록은 그냥 스쳐지나가기에는 너무나 중요한 역사적인 증거를 내포하고 있다고 본다.
따라서 신시를 이루고 있던 구한의 백성들을 통합할 수 있는 정신적인 구심점이 한웅신시 때의 종교적인
제례라고 판단하고 있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라 보는데 하느님께 올리는 옛 신시의 제례를 설명하는 과정 중에 가우수(加右手)라는 말이 나왔다는 것은 곧 신시시대 때부터 바른손이라는 언어가 사용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기록이라고
본다.
참고삼아 오른쪽과 바르다는 복수의 의미를 함께 품고 있는 언어중에는 영어의 라이트 독일어의 레히트
프랑스어의 드르와 등이 있는데 모두 오른쪽과 옳다의 뜻을 함께 가지고 있고 이는 크게 동서양을 불문하고 오늘날 오른쪽은 좋은 의미로 왼쪽은 나쁜
의미로 쓰이고 있음은 인류사의 문화적 뿌리가 하나의 원류에서 갈라졌을 수도 있다는 중요한 단서를 보여주는 예 중의 하나라 보며 아무도 왜 오른쪽을
좋은 의미로 왼쪽을 나쁜 의미로 쓰게 되었는지 모르는 오늘날 그 비밀의 열쇠가 될 수 있는 것이 가우수(加右手)라는 짧은
기록과 우리말 바른손이라 본다.
그러므로 말에도 그 민족 나름의 오랜 전통과 기원의 비밀이 녹아 있다는 것으로 우리말 사투리의 복원과
연구는 우리 정신의 뿌리를 밝혀내는 중요한 단서를 제공하리라 본다.
적어도 오늘날의 표준어라는 말 보다는 우리 정신이 깊이 녹아있는 매우 아름답고 유서 깊은 정감어린
언어가 사투리라 본다.
그리고 말이 나온 김에 삼육대례의 예를 말하는 중에 신왕종전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신시때에
한웅들께서 삼신상제의 하나님께 올리는 삼배와 여섯갈래의 성스런 기운을 육배로 하는 우리전통 신교에서 행한 하나님에 대한 예법이었다고 본다.
이는 유일신(唯一神)관과 다신(多神)관이 하나로 녹아 있는 예법이라 판단한다.
그러므로 삼일신고의 제목풀이도 제목 그대로 쓰임으로 나타나면 셋인 삼신과 쓰임을 다하면 본체의 하나인
대일신으로 존재하는 삼일(三一)의 하느님께 고함이라는 뜻으로
해석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한국사와 한국사회의 변화를 위해 노력하는 보든 분들에게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 내가 억울한
일을 당했다고 정말 억울한 것이 나라고 증거가 빈약한 주장만으로 핏대를 세운다고 그게 먹혀들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 보다는 아무리 작은 증거라도 내 억울함을 증명할 수 있는 자료와 논리적인 근거를 확보하는 것이
더 현실적이고 훨씬 생산적인 일이라는 것이다.
다시 말해 국내에서 조차 제대로 먹혀들지 않는 주장으로 세계인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겠는가?
차이나와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국가적인 차원에서 그것이 진실이든 거짓이든 엄청난 지원을 해가며 자신들의
입맛에 맞춘 치밀한 논리적 근거와 증거들을 차곡차곡 구축해 왔는데 한국은 국가적인 차원은 고사하고 민간에서 조차 극히 소수의 사람들외에는 관심조차
없는 상태다보니 그에 대응하기에는 너무나 빈약한 증거자료와 어설픈 논리외에는 ㅡ<물론 간혹 훌륭한
논문들과 증거 자료가 개인적인 노력을 통해 있기는 하나 차이나와 일본에 비해서는 너무 빈약하다.>ㅡ
별 도움도 되지 못하는 개인적인 감정풀이 밖에 되지 못하는 주장만 가득한 지금의 한국의 현실에서 이해 당사국인 차이나와 일본과 북한을 포함한 남한을
보며 이해당사국의 역사에 대해 거의 모르거나 별 관심도 없는 제 삼자들인 나머지 세계인들은 과연 누구의 주장에 손을 들어 주겠는가?
따라서 설득력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어설픈 감정적 주장들을 앞세워서는 거짓말쟁이나 허풍쟁이라는 오해의
소지를 세계인들에게 심어주는 역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깊이 생각해 보아 보다 효과적인 방법을 다 같이 힘을 모아 모색해 보는
것이 현명한 일이 아닌가 생각한다.
고대한국인들의 신관이 치산치수 법을 배우기 위해 고조선을 찾아온 우사공의 삼육(三六)구배(九拜)의 예법에
그대로 들어난다 보는데 깨달은 이가 최고의 인격신이라는 의미가 ㅡ<한인, 한웅, 단군, 그리스도, 부처 같은 개념>ㅡ 후대로 오며 황제나 왕이 하나님의 자손이라는
신분계급적인 형태로 변질되어 나타나게 된다고 본다.
그러므로 수출서물이라는 역(易)을 만들어내는
중심자리로서의 자격이 없는 인물이 하늘과 땅을 대신해 천자(天子))노릇을
하려고 하니 당연히 총과 칼이라는 폭력적인 수단이 동원될 수밖에 없게 되고 하느님의 말씀의 진리인 천부경의 논리는 강제적으로 사장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고 본다.
한국의 고대 역사가 오늘날 흔적조차 남기지 못하고 완전히 사라져버린 주된 이유라 보는데 자신들의 의지와는
정면으로 대치되는 천부경의 진리를 용납하기 힘들었던 권력층의 음모가 그 배경이 된다고 본다.
마지막 단군의 제위를 끝으로 고대한국의 역사가 말살되어 신화적인 형태로만 남게 되고 천부경의 근본원리가
사장된 이유들도 이 때문이라 보는데 고구려를 포함한 대조영장군이 건국한 대진국ㅡ<발해>ㅡ의 역사조차 거의 지워져 버린 주된 이유이기도 하리라 본다.
동양학은 이때부터 천부경이라는 근본 뿌리를 잃어버림으로 조금의 진보도 없이 제각각 흩어져 답보 상태로
오히려 퇴보하는 기현상을 만들어내게 된다고 본다.
오늘날 서양학의 공세 앞에 무기력하게 몰락해버린 근본적인 원인이 되었다고 본다.
역대 단군님들과 단군님을 보필하던 밝은이들이 천부경의 원리를 알고 물질문명인 상극오행의 기술문명이
먼저 완성된 뒤 정신문명의 상생오행의 원리가 발동하여 물질과 정신이 조화를 이루는 지상천국이 도래할 것임을 미리 알았기에 모든 안배를 마친 뒤
조용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져 줌으로서 가능했던 일이라 보는데 그 이후는 잘 알다시피 동서양이 상극의 투쟁을 통해 기술의 진보를 만들어내었으며
그 진행이 극에 이른 오늘날 정신문명의 기틀이 마련될 수 있도록 안배해 두었던 천부경의 원리가 부활하여 서로가 상생하며 살아가는 바른 이치가 세상을
주도하는 지상천국의 도래를 위한 준비를 이 민족으로 하여금 맡게 했다고 본다.
우주적인 하느님의 섭리를 훤하게 꿰뚫어 보셨던 밝은 조상들께서는 먼 훗날을 예견하고 웃으면서 역사의
무대에서 잠시 물러나 있었던 것이라 보며 알게 모르게 후손들의 일상 속에 정착시켜 두었던 여러 안배들은 이제 화려한 비상을 꿈꾸며 역사의 무대
위로 복귀하려는 부활의 날개 짓을 준비하고 있다고 본다.
이것을 암시하는 예가 격암유록에 나타나고 있다고 보는데 천부경의 진리가 다시 부활하여 천국의 질서가
태동하게 됨을 말하고 있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