숫자 영(0)과 일(1, 一)과 자연수가
만들어지는 원리
고대동서양인들의 수학적 논리는 훈민정음과도 매우 깊은 연관이 있으며 그 외 종교, 건축, 기하, 언어, 문자 등등의 모든 고대의 학문적 논리들과도 연계된다고 보는데 이러한 고대인들의 흔적을 만들어낸 근본 우주론이
갑골(은문)천부경의 우주론이라 보기에 갑골천부경의 우주론을
통하지 않고는 고대동서양인들이 남긴 여러 흔적들을 통합해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을 강조하며 훈민정음의 자모음기호들은 갑골천부경의
우주론과 매우 깊은 연관이 있음을 상기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전에 올린 글을 다시 올려 봅니다.
고대한국학은 정신과 물질은 다른 것이 아니며 상호 보완적으로 함께 한다는 지금의 대부분의 동서양학과는
완전히 다른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보는데 우주정신의 발현이 곧 물질적 양태이고 물질적 양태가 곧 우주정신의 표상이라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본다.
ㅡ<리기(理氣)론에서 리(理)는 우주정신을 기(氣)는 물질적
양태를 의미>ㅡ
이러한 우주정신과 관련된 숫자가 영(0)과 일(一,ㅣ)로 오늘날 현대 수학에서 영(0)과 일(一,ㅣ)의 숫자가 빠지면 성립이 안 될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으나 현대 수학은 영(0)과 일(一,ㅣ)의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 지를 우주론과 연계시켜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는데 막연하게 고대 인도인들이 처음으로
영(0)의 숫자를 만들어내었을 것이라는 추측만 할 뿐 현대 물리학과 연계시켜 우주론적 논리로 영(0)과 일(一,ㅣ)의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에 대한 정의조차 명확하게 내리지 못하고 그냥 계산적인 수학으로만 쓰고 있다고 본다.
그러나 고대한국학에서는 숫자 영(0)과 일(一,ㅣ)의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지게 되는지를 우주론적 논리로
확실하게 정의를 내리고 있다고 보는데 은문천부경의 문자배치도에서 정 중앙에 쓰인 육(ㅜ)이 정신적인 숫자 영(0)과 일(一,ㅣ)의 개념을 ㅡ<삼신상제, 리(理)>ㅡ나타내고 있고 첫 문장과 끝 문장에 쓰인 두 개의 무( , )자는
물질적인 숫자 영(0)의 개념을 나머지 일(一)자들은 물질적인
숫자 일(一,ㅣ)의 개념을ㅡ<하늘과 땅, 기(氣)>ㅡ 나타내고 있다고 본다.
삼일신고에서는 대일신(大一神)으로 숫자
영(0)에 대한 개념을 나타내고 있는데 일신각(△), 일신, 삼신, 하나님, 지일, 인일, 영혼(靈魂), 솔로몬의
별 등등 우주정신과 관련된 여러 표현들은 말만 다를 뿐 모두 숫자 일(一,ㅣ)의 개념과 관련된 것으로 종교적으로는 신(神)으로 표현할
수 있고 과학적으로는 물리로 표현할 수 있다고 본다.
좀 더 사설을 늘어놓자면 동서고금을 통 털어 인간이 만들어낸 의사표현수단 중에 가장 정직한 표현수단이
수학이라 본다.
따라서 수학은 고대나 지금이나 표현양식에 거의 변함이 없으나 언어나 문자에 의지한 학문들은 심한 왜곡이
나타날 수 있는데 예를 들면 엄마라는 의미로 쓰이는 말이 처음에는 얼마 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데 지금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언어 수만큼 존재하는
것과 비슷한 이치로 언어나 문자에 의지한 학문적 갈래들은 시대와 민족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다고 본다.
그러나 수학은 이러한 변형이 거의 없다는 것으로 동서고금을 아우르고 연결하는 가장 확실한 공통언어가
수학이라 본다.
따라서 고대로부터 전해진 기초적인 수학에 대한 이해는 동서고대문명에 대한 이해와 함께 지금의 동서
문명의 정신적 통합을 이끌 실마리를 줄 것이라 본다.
까놓고 이야기해서 지금의 동서양학이 고대인들이 만들어낸 숫자 영(0)과
일(一,ㅣ)과 자연수의 구체적 개념과 학문적 쓰임에 대한 용도를 갑골(은문)천부경의 우주론을 통하지 않고 제대로 이해하고 설명할 수 있는가?
있다면 어디 말해보라.
숫자 영(0)과 일(一,ㅣ)은 우주를 표현하던 고대 한국인들의 가장 중요한 기본적인 숫자적 개념들로 이러한 숫자적 용도와 쓰임에 대한 개념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동서양학은 자신들의 뿌리인 동서고대인들의 우주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반쪽짜리라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숫자 백(100)의 개념이나 삼진수, 이진수, 십진수의 개념도 마찬가지라 본다.
20세기가
학문적 분업화를 통한 각 분야별 전문성을 추구하던 분열의 시대였다면 21세기는 학문적 통합을 통한 각
학문적 분야의 유기성을 추구하는 종합의 시대가 될 것으로 보기에 이러한 시대적 흐름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문이나 학자들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학문에 뜻을 둔 젊은이들은 깊이 생각해 주기를 바란다.
이는 시대적인 대세로 앞으로 매우 빠른 속도로 진행될 것이라 보는데 이미 산업분야에서는 이러한 개념이
일부 도입되어 응용되고 있는 상태로 고대한국학의 핵심적인 가르침과 동일한 형태로 진행되고 있다는 사실이 나는 무척이나 자랑스럽다.
당장은 이 사람의 말이 이해가 잘 안되겠지만 빠른 시일 내에 이런 흐름을 확인할 수 있는 세계사적
변혁이 생겨날 것이라 본다.
따라서 21세기 세계학문의 중심은 고대한국학임을 하루 빨리
깨달아 새 시대를 준비하는 사람이 되어 주기를 우리의 젊은이들에게 간절히 바란다.>ㅡ
그리고 숫자 백(100)이 왜 동서양을 불문하고 완전함이나
전체적인 의미로 쓰이고 있는지에 대해 전에 설명했는데 은문(갑골)천부경의
설계에 쓰인 숨겨진 도형을 이루고 있는 백(100)개의 꼭지점(·)이
그것으로 우주를 이루는 정신적 물질적 순수 질료의 전체적인 총량을 나타내는 개념이 백(100)개의 꼭지점이고
이는 우주가 어떻게 변화하든 우주를 이루는 에너지와 질량의 총화는 일정하다는 열역학 1 법칙을 의미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대물리학에서 말하는 열역학 1 법칙과 같은 개념으로
고대인들이 쓴 숫자적 의미가 백(100)이라고 본다.
따라서 숫자 일(一,ㅣ)은 본체인 영(0)의 우주정신이 분화해 쓰임으로 나타나 자리 잡음으로
모든 땅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개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일에서 십까지의 자연수의 개념은 숫자 일(一,ㅣ)이 의미하는 우주정신이 발동함으로 그를 중심으로 영(靈)의 우주정신이
주도하는 존재들의 사회인 땅천이 생겨나고 변화하게 되며ㅡ<태양계나 은하계, 자연계나 인간집단 같은 것>ㅡ혼(魂)의 우주정신이 주도하는 개별적 존재들인 땅지가 생겨나고 변화하게 된다는 것을ㅡ<별이나 개별적 생명 같은 것>ㅡ개념화 시킨 숫자가 자연수의
개념이 된다.
즉 숫자 영(0)은 우주정신이 나온 본체를 의미하고 숫자
일(一,ㅣ)은 본체에서 갈라져 나온 리(理)의 정신을
말하는데ㅡ<삼신하나님, 영혼(靈魂>ㅡ 자연수는 우주정신을 의미하는 일(一, ㅣ)을 중심으로 생겨난 물질적 양태인 땅과 땅의 변화를 나타내는 숫자적 개념이 된다.
ㅡ<창조와 소멸의 과정과 모임과 흩어짐의 과정>ㅡ
십진수와 삼진수, 이진수의 개념은 숫자 일(一,ㅣ)이 의미하는 영혼(靈魂)의 하나님이
주도하고 있는 땅의 변화와 관련된 개념에서 나온 것으로 보면 된다.
땅으로 나타난 모든 천지의 변화를 만들어내는 중심이 일(ㅡ,ㅣ)의 숫자가 의미하는 리(理)라는 영혼 (靈魂)의 우주정신이고 그로부터 기(氣)라는 물질적인
천지가 시작되고 완성되며 이지러지며 끝난다는 의미가 곧 은문(갑골)천부경의
첫 문장과 끝 문장의 의미가 되며 은문(갑골)천부경의 중앙에
배치된 육(ㅜ)의 의미가 된다고 본다.
실제적으로도 은하와 별을 의미하는 천지는 동시에 생겨나 변화하고 있다고 본다.
그러므로 그 변화를 주도하고 있는 것이 숫자 영(0)이
의미하는 본체인 유일의 하느님과 숫자 일(一,ㅣ)이 의미하는 객체인 다신(多神)의 삼신(三神)하나님이라는 것으로 땅으로 들어난 물질적 세계가 생겨나 하늘로 돌아가기까지의 변화의 단계들을 나타내는
것이 일에서 십까지의 자연수의 개념이 된다.
그러므로 자연수는 변역(變易)의 원리를
담고 있다고 본다.
ㅡ<직감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면 지금쯤은 바둑판이나
훈민정음이 은문천부경의 또 다른 표현이라는 것을 느끼고 있을 것이라 본다.>ㅡ
따라서 은문천부경과 마찬가지로 훈민정음이 만들어지는 원리에는 철학,
기하학, 수학, 종교학, 물리학, 인문학, 천문학
등등 인간문명의 대부분의 학문적 요소들이 관련되어 있다는 것으로 전에도 언급했지만 문창살이나 인간의 구강구조를 본떠서 만들어졌다는 저차원적인 시각으로
훈민정음을 대하는 것은 선조들에 대한 모욕임을 꼭 명심해 주기를 바란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서로 마주보며 이야기를 전개해야 이 사람이 미처 설명하지 못한 부분에 대해서 확실한
설명을 해가며 이해를 도울 수 있을 것이나 일방적인 이 사람만의 논리전개에 의존하다보니 다른 분들이 알아먹을 수 있을 만큼 충분한 설명을 했는지
몰라 안타깝다.
참고삼아 숫자 일(ㅡ)과
일(ㅣ)은 영혼을 의미하는 것으로 리(理)의 특성도 둘로 나타난다는 것으로 동양에서 쓰는 일(ㅡ)은 생리적인 혼(魂)의 정신과
관련된 자연수의 개념이고 흔히들 아라비아 숫자라고 하는 서양에서 쓰는 일(ㅣ)은 영(靈)의 정신과
관련된 자연수의 개념이라고 본다.
영혼(靈魂)의 개념과 관련된 알파벳의 고문자기호가 알파와
오메가라고 본다.
즉 수직적 개념에서 만들어진 것이 오메가이고 수평적인 것과 관련되어 만들어진 것이 알파라 본다.
참고로 알파와 오메가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를 추가 한다면 알파의 기호는 (ㅇ)과 (<)의
기호가 결합된 형태로 이차원 평면상태로 전개되는 수평적 음양운동과 관련된 의미라 보는데 만물이 상대적인 연기적 관계를 통해 형성되는 것이 기억으로
인간이 의식상태에서 추구하는 모든 가치적 특색들은 서로간의 상대적 관계를 통해 만들어지는 기억을 통해서라고 본다.
즉 의식상태에서 나타나는 것이 인간적 모든 가치관들로 영(靈)의 정신과
관련되는데 우리말 “알” “얼” 등도 영(靈)의 정신과
관련된 개념으로 만들어진 말이라 본다.
실제 알파, 알, 얼
등에 쓰이는 말들에는 서로가 상대적인 연기적 관계를 통해 만들어내는 수평적 울타리를 의미하는 자음 (ㅇ)의 기호와 수평적 음양운동과 관련된 모음 (ㅏ, ㅓ)의 기호가 공통적으로 쓰이고 있다.
ㅡ<알파의 기호에서
(ㅇ)은 공동체적 울타리를 의미한다고 보며 (<)의
기호는 모음 (ㅏ)와 동일한 의미로 사방으로 퍼지는, 안에서 밖으로 등등의 의미라 본다.>ㅡ
따라서 서로가 한 울타리안에서ㅡ<ㅇ>ㅡ사방으로 표출하는 행동들을 통해ㅡ<<>ㅡ만들어지는
무엇은 기억을 바탕으로 한 정신 즉 영(靈)의 정신이
된다.
그리고 오메가는 모음 (ㅡ)의 변형으로 보임과 숨겨짐의 경계, 아래와 위의 기준 등을 의미하는
뜻으로 여기서는 쓰인다고 보는데 만물이 생겨나고 숨겨지는 즉 창조되고 소멸하는 기준을 극으로ㅡ<ㅡ>ㅡ 혼(魂)의 정신이 주도하고 있는 창조와 소멸의
무의식적인 수직적 음양운동을 하고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 모음 (ㅡ)를 위로 올려 변형시킨 오메가 기호라 본다.
실제 혼(魂), 오메가
등의 말들에는 수직적 음양운동과 관련되어 무엇이 생겨나거나 올라오는 속에서 겉으로 등의 의미가 있는 모음 (ㅗ)를 공통적으로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알파와 오메가라는 그리스로마 말과 기호는 정신과 관련되어 만들어진 말과 기호라 보는데 실제
기독교에서는 우주정신과 관련되어 하나님을 다른말로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고 하고 있으니 우주정신과 어떤 식으로든 관련된 말이고 기호라 본다.
나아가 동양문명 특히 천부경의 우주론과 관련된 세력과 그리스로마인들 사이에는 어떤 식으로든 매우 밀접한
연관이 있음이 이를 통해 들어나고 있다고 본다.
은문(갑골)천부경의
설계구조에서는 일시무시일에서 일종무종일까지의 과정에서 양(陽)적 팽창(창조)과 통합에 대한 자연수의 개념이 만들어지고 일종무종일에서 일시무시일까지의
과정에서 음(陰)적 수축(소멸)과 분열의 자연수의 개념이 만들어지게 된다.
ㅡ<삼진수와 이진수는 통합과 분산에 대한 덧셈과 뺄셈의 원리에서 만들어지게 되는데 땅으로 들어날 수 있는 최대한의
삼진수의 자리는 27자리가 된다.>ㅡ
참고로 가운데 중심에 배치된 육(ㅜ)이 정신적 숫자 영(0)과 일(ㅣ, ㅡ)을 나타낸다면 일시무시일에서 무는 물질적 숫자 영(0)의 개념을 일시에서 일은 이차원 평면운동과 관련된 물질적 숫자 일(ㅣ)의 개념을 시일에서 일은 삼차원 입체운동과 관련된 물질적 숫자 일(ㅡ)의 개념을 나타낸다.
따라서 일종무종일에서 무는 물질적 숫자 영(10, 으)의 개념을 일종에서 일은 이차원 평면운동과 관련된 물질적 숫자 십(10)의
개념을 종일에서 일은 삼차원 입체운동과 관련된 물질적 숫자 십(으)의
개념을 나타내는 것으로 특히 동양학에 나타나는 수리적 논리가 만들어지는 근본이 은문(갑골)천부경임이 이로서 들어난다고 본다.
물론 은문(갑골)천부경의
논리와 비교해보면 빈틈이 많이 들어나기는 하나 어떤 논리적 근거에서 동양학의 수리적 논리가 나오게 되었는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은문(갑골)천부경의 설계구조라 본다.
그러므로 고대한국학에서는 정신과 물질적 숫자에 대한 개념적 정리와 구분을 확실하게 했다는 것으로 인간문명의
가장 기본적인 삶의 철학이 나오는 정신과 물질에 대한 확실한 개념적 정리와 구분도 없이 모호하게 처리하고 있는 오늘날의 동서양학의 상태로는 인간문명의
질적 상승과 화합하는 인류문명을 만들어낼 수 없다고 본다.
어떤 것이 참이고 어떤 것이 거짓인지를 구분할 수 있는 기본적인 잣대가 모호하니 인간문명의 혼돈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는 것으로 기본적인 잣대가 확실하게 선다면 누가 감히 공개적으로 거짓을 참으로 꾸밀 수 있겠는가?
결국 인간 개개인들의 정신적 성숙과 문명적 차원의 상승을 일구어내려면 고대한국학의 핵심을 통해야 한다는
것을 은문(갑골)천부경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육(ㅜ)은 일시무시일에
적용될 때는 정신적 숫자 영과 일을 나타내나 일종무종일에 적용될 때는 표현하기가 좀 애매하나 땅으로 자리잡은 일신의 정신수가 빠지고 남은 우주정신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일시무시일에 쓰인 무는 물질적 순수질료를 의미하는 것으로 숫자로는 백으로 나타낼 수 있고 일종무종일에
쓰인 무는 땅으로 들어나고 남은 순수질료를 의미하는 것으로 숫자로는 19로 나타낼 수 있습니다.
조금은 복잡하나 이런 개념적 차이를 잘 이해해주셔야만 천부경에 대한 이해가 깊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