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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집에는
짐승이 뛰놀던 터가 있다
평상(平床)에 누워 있으면
살살 발가락을 핥아대던 짐승
초등학교 때 염소를 쳤다
다섯 마리가 불어서
삼십 마리가 넘은 적이 있다
등교할 때 냇둑에 풀어놓았다
느닷없이 소나기가 퍼부은 날
우루루 학교로 몰려와
긴 복도에서 서성거렸다
비 그치고 내가 앞장을 서니까
염소들이 새까맣게 하교를 했다
염소는 수염이 멋있었다
암컷도 살짝 수염이 나 있었다
사실 염소는 새까맣고
주둥이는 툭 튀어나왔고
울음은 경운기처럼 털털거리고
아무거나 먹어치우고
두엄에도 잘 올라가는 천방지축이었다
얼룩을 좋아하고
뿔도 삐뚤어졌고
농작물도 닥치는 대로 뜯어먹고
신발 끝도 씹어 먹으며
나쁜 짓을 골라서 하는 골목대장이었다
하지만 먼 곳의 소리에 귀 기울이고
높은 바위를 잘 타며
구름 속 비 냄새를 맡을 줄도 알고
꽃도 열심히 따 먹고
가시 달린 찔레순도 찔리지 않고 잘 씹어먹었다
무엇보다도 눈썹이 길어
눈가에 하늘거리는 멋진 그늘을 가졌고
뿔은 온순한 고집이었다
염소도 식구였는데
지금은 터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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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소. 이렇게 온순한 뿔을 가진 짐승을 가만히 눈 여겨 본적이 있는가. 이 시속 염소를 좇아가다 보면 어느새 웃음이 저절로 입가를 맴돌게 한다. 어디 이 천방지축, 천진난만한 염소에게서 불신, 협박, 갈취, 음흉한 악의를 한 터럭이라도 찾아볼 수 있겠는가. 게다가 '눈가에 하늘거리는 멋진 그늘'마저 가진 이 염소들이니, 온순한 뿔을 가진 염소 떼 노니는 모습이 어느새 생생한 한 장면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신지혜 시인>